(7) ‘윤수일 밴드’의 《아파트》(1982년)
처음 인천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을 2010년대 중반 즈음엔 자전거를 많이 탔습니다. 그땐 물정에 어두워서 혼자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엔 많은 게 낯설었고, 교통비를 아끼려는 의중도 있었으나, 자전거 타는 행위가 저에게는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도시의 실체를 직접 마주해보려는 나름의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동인천에서 송도까지의 동선을 좋아했는데, 한 도시 여러 풍경이 그토록 극적인 대비를 이룰 수 있다는 데에서 놀라운 인상을 받았던 것 같아요. 깜깜한 밤. 건물이 낮고 근대적인 분위기의 원도심을 지나 다리를 건너고 갈대밭을 보며 달리다가 송도 신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보이기 시작하면 마치 이 도시가 꾸었던 꿈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1851년 영국에서 개최된 첫 만국박람회, 크리스탈로 둘러싸인 수정궁을 배경으로 진열된 갖가지 진기한 상품들을 보는 사람들은 마치 마법에 빠진 듯 놀라워했다고 하죠. 1889년 파리에서 개최된 제5회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에펠탑은 파리의 낮고 복잡한 골목 어디에서든 보이는, 당시로선 세계에서 가장 높이 세워진 건축물이었고, 감탄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1900년대 초 미국에서 뉴욕의 높은 건물들이 지평선 위에 윤곽을 그리며 도시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아감에 따라 뉴욕이나 파리 등 대중적으로 상징화된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이후 수많은 도시 계획에 있어 모방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죠.
이제 우리는 맨하탄의 스카이라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뉴욕을 소비할 수 있습니다. 상품의 진열을 돋보이기 위해 번쩍이는 수정궁을 떠올린 만국박람회의 기획자들이 그랬듯이, 에펠탑이 ‘파리’를 상징하게 되었듯이, 아파트도 그럴듯한 환상으로 포장된 하나의 상품으로서 기획되지요. (제 본질과 거리라도 두려는 듯) ‘국제도시’를 표방하며 뉴욕 센트럴파크를 모방한 랜드마크와 스카이라인을 구축한 송도 신도시도 그에 대한 예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윤수일 밴드’의 <아파트>를 들을 때마다, 이 곡이 묘사하는 (서울에 아파트 개발 이 한창이던 80년대와 그 이전) 도시의 이미지 위에 제가 자전거를 타며 보았던 송도 신도시에 풍경이 겹쳐서 떠오르곤 합니다.
<아파트>의 화자는 왜 다리를 건너고, 갈대 숲을 지나 아파트를 향했던 걸까. 그는 어떤 속삭임을 들었으며, 왜 그 목소리를 그리워했던 걸까. 그가 놓친 것, 그가 바보처럼 미련을 갖고 다시 찾게 되는 ‘아파트’라는 대상이 사실은 이 도시가 쫓았던 실체 없는 꿈과 환상이 아니었을까, 리드미컬한 로큰롤 트랙인 <아파트>에서 도시의 공허함을 들었다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면서요.
170여 년 전 첫 만국박람회에서 사람들은 반짝이는 크리스탈 궁전 안에 진열된 상품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제가 자전거를 타고 신도시의 풍경을 향해 달리면서 했던 생각과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여러분은 도시와 아파트의 모습을 통해 무엇을 보십니까. 어쩐지 80년대를 대표하는 윤수일 밴드의 ‘시티 뮤직’이 저에게는 여전히 헛헛하게만 들리는 건 왜일까요.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 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그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
언제나 내게 언제나 내게
속삭이던 너의 목소리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 버린 너를 못 잊어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 ‘윤수일밴드’ <아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