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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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때문에!”
  • 최원영
  • 승인 2022.03.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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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42화

불경 중 하나인 〈벽암록〉에 나오는 운문 스님의 말씀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장웅연)에 나옵니다.

“누구나 원수 한두 명쯤 안고 산다. 주정뱅이 아빠, 바람난 엄마, 돈 떼먹은 친구일 수도 있다.

그들은 분명 병이지만 동시에 약이다. 오기와 집념을 가져다주고, 보다 알차고 슬기로운 인생을 선사하는 덕분이다.

반면교사는 성질이 고약하지만 실은 스승이다. 적개심인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가 동정심인 ‘저렇게 살 수도 있겠구나’로 변화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수행이란 원수의 이름을 하나씩 지워가는 일이다. 그래서 한 생각 내면 병이고, 버리면 약이라는 초연의 극치에 도달한다. 아무런 가식과 치장 없이 그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거리낄 것도 거슬릴 것도 없어진다.”

‘약’과 ‘병’은 사실 하나입니다. 시계추의 한쪽 끝이 ‘약’이고 다른 한쪽 끝은 ‘병’입니다. 약이 지나치면 병이 되고, 병이 지나치면 약을 원합니다. 이렇게 둘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주정뱅이 아빠를 둔 두 아들 얘기가 기억납니다.

한 아들은 의사가 되어 주정뱅이 환자를 치료하고, 다른 아들은 아빠처럼 주정뱅이가 되었습니다. 두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사나요?”

두 아들의 대답은 같았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정호승)에 미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분의 글이 있습니다.

“지난주 지하철 탔을 때의 일이다. 퇴근 후라 피곤한 몸으로 좌석에 기대앉아 있었다. 그런데 두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전동차 안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조용히 쉬고 싶은데 그 아이들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더욱 화나게 한 것은 아이들의 아버지였다. 아이들이 자기 집 뜰에서 뛰어놀 듯이 함부로 행동하는데도 나 몰라라 하는 태도로 무심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자녀 교육을 시킬 줄도 모르는 예의 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 참다못해 그에게 한마디 했다. ‘소음 때문에 쉴 수가 없어요. 아이들에게 주의를 좀 주세요.’”

“그러자 그는 정신이 돌아온 듯 이렇게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제 생각에만 빠져있어서 애들에게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군요. 실은 방금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입니다. 아내가 입원해있는데, 의사로부터 애들 엄마가 암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할 것이란 얘기를 들었어요. 그 생각만 하다 보니…. 미안합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난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거림을 어쩔 수 없었다. 전후 사정을 알지도 못한 채 무조건 그 불쌍한 아버지를 교양 없는 사람으로 판단해버린 내 경솔함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었다.”

똑같은 상황도 이렇게 달리 해석이 됩니다.

처음에 가졌던 ‘분노’가 나중에는 ‘후회’로 바뀌게 된 계기는 뭘까요?

바로 ‘이해’입니다.

이해하려면 먼저 알아야 합니다. 알려면 관찰해야 하고 들어야 합니다. 아니면 ‘저러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런 태도가 중도의 길입니다.

오늘 방송을 시작하면서 전해드린 〈벽암록〉의 내용을 다시 한번 들려드리면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누구나 원수 한두 명쯤 안고 산다. 주정뱅이 아빠, 바람난 엄마, 돈 떼먹은 친구일 수도 있다.

그들은 분명 병이지만 동시에 약이다. 오기와 집념을 가져다주고, 보다 알차고 슬기로운 인생을 선사하는 덕분이다.

반면교사는 성질이 고약하지만 실은 스승이다. 적개심인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가 동정심인 ‘저렇게 살 수도 있겠구나’로 변화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수행이란 원수의 이름을 하나씩 지워가는 일이다. 그래서 한 생각 내면 병이고, 버리면 약이라는 초연의 극치에 도달한다. 아무런 가식과 치장 없이 그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거리낄 것도 거슬릴 것도 없어진다.”

읽을수록 깊은 맛이 나오고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지혜가 번뜩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정뱅이 아버지를 둔 두 아들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똑같은 환경이었는데도 한 아들은 의사가 되었고, 다른 한 아들은 주정뱅이가 되었습니다.

이 사례를 통해 불우한 환경에서도 의사가 된 아들처럼 우리 역시도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의 성공과 행복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은 행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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