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유치장은 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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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유치장은 만원
  • 이세기
  • 승인 2022.03.31 15: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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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손바닥소설 - 북창서굴]
(3) 방화범
3월부터 이세기 시인의 장편(掌篇)소설 '북창서굴'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손바닥 크기 분량의, 산문도 되고 소설도 되는 '이세기의 북창서굴'은 격주로 연재하지만 매회 독립적인 내용으로 엮어갑니다. 인천의 도시 골목에서 일어나는 애잔하고 쓸쓸하며, 때로 아름답기도 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입니다. 

 

 

방화범

 

내가 뭔 죄를 지었어!

사내는 연신 입을 씰룩거렸다.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억울하고 죄인 취급 받는 것이 참을 수 없다는 모양새다. 그러니까 좀 전에 벌어졌던 일이 자기로서는 도무지 인정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억울하다니까.

말 더럽게 많네, 잠자코 있어!

시원히 설명을 해줘야 하잖소?

야, 그래 여자 하나 때문에 친구끼리 싸움질이냐?

그게 뭔 말씀이요? 그놈이 먼저 내게 칼을 휘둘렀다니까.

조용히 해! 사내대장부로 태어나서….

경찰서 수사실 유치장 안은 바야흐로 금요일 이른 저녁인데도 만원사례다. 나 역시 공무집행방해로 긴급체포 되어 경찰서에 들어온 터이고, 유치장 안에는 음주운전, 폭행, 강간치사, 사기, 절도죄로 들어온 자들로 가득하다.

불나네, 불나. 오늘 무슨 날인가?

당직 형사들의 목을 치켜세운 고압적인 언성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수사계는 온통 형사와 피의자 간에 윽박지르고 물어뜯는 소란스러운 언쟁으로 그야말로 맹수를 가둬놓은 사육장에서나 볼 수 있는 아수라장이다.

형사에게 핀잔을 들은 사내가 유치장으로 들어왔다.

사내가 들어오자 이른 저녁부터 음주운전으로 들어온 별이 다섯 개나 된다고 행세깨나 하던 자가 험험, 하며 헛기침으로 시선을 끌더니 다짜고짜 사내에게 수작을 걸었다.

여기 왜 들어왔어?

글쎄, 저놈이 친구가 아니라 원수라니까, 나 모르게 계집년을 만난 것을 내 어찌 알았겠소.

사내는 얼굴 가득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칼을 휘둘렀던 친구라는 사내는 멀찍이 떨어져 유치장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별 다섯은 사내를 향해 힐끗 보며,

그 계집년이 네 마누라냐? 아니지?

별 다섯은 무슨 확신이 섰는지 허세를 부리며 심문 투로 물었다.

사내가 뜸을 들이자 별 다섯이 한마디 더 했다.

계집년 하나 가지고 싸웠구만? 그렇지?

하고 우쭐거리며 말을 내뱉더니, 유치장 입구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사내에게 냅다,

이봐, 이리 좀 와봐!

별 다섯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칼을 휘두른 사내를 불렀다.

이 친구 말을 듣자 하니 당신 아주 저질이더구만. 여자 때문에 칼을 써?

뭐요?

어렵죠, 이놈 봐라. 시치미를 떼네.

별 다섯은 냅다 반성하는 기미 하나 없다며 사내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야, 서로 악수하고 화해해.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두 사내는 서로 등을 돌린 채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야, 안 해? 보자 하니 인간이 덜된 놈들이구만, 야, 밴댕이 속 창자냐? 악수하라니까!

조용히 못 해!

버럭 냉혈 섞인 호통 소리가 수사실에서 날아왔다. 순간 유치장은 무덤 속같이 조용해졌다.

잠이나 자, 입들 닥치고!

허, 지랄하네. 야, 담요 좀 깔아 봐.

별 다섯은 혀를 차며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사내가 깐 담요에 벌떡 드러눕자 이내 코를 골았다.

자정이 지났을까.

웬 사내가 석유통을 들고 수사실에 들어왔다. 이십 대 정도로 보이는 사내는 체육복 차림에 어디인지 모르게 행동거지가 어눌했다. 인수인계하러 온 경찰이 무언가를 귓속말로 수사관에게 전하곤 나갔다. 수사관은 연신 자기 콧등을 비벼대며 큰 사냥감이라도 잡은 듯,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 묘수를 찾는 듯했다. 심문이 시작됐다.

이 안에 든 게 뭐야?

….

벙어리야? 이 안에 든 게 뭐냐니까?

….

이 안에 든 게 뭐냐니까!

….

그래, 이걸로 확 불 지르려고 했어?

그냥….

그래, 그냥, 확 너 죽고 나 죽자였구만?

그게….

사내는 고개를 숙인 채, 그저 말이 없다.

뭐가 아니야, 넌 방화범이야, 방화범!

….

방화범이 얼마나 큰 죈 줄 알아? 한 오 년은 콩밥 좀 먹어야 정신 차리겠구만.

사내는 어찌 된 영문인지 수사관의 심문에 묵묵부답이었다. 수사관은 답답한 지 책상을 쳤다. 험상궂은 표정으로 윽박질러도 통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자, 결국 인수인계를 한 담당 파출소로 전화를 했다. 한참 후 인계한 경찰이 왔다.

이 방화범 어떻게 해서 데려온 거요?

아, 이 친구가 휘발유 통을 들고 애인 집 안방으로 쳐들어간 모양이에요.

그런데요?

저도, 그 정도밖에는….

경찰은 할 말이 더는 없었는지 무겁게 침묵이 내려앉았다.

수사관은 경찰을 데리고 나가더니 잠시 후 다시 나타났다.

어이, 방화범, 큰일 했구만. 그래 사내놈이 애인하나 구워삶지 못하고…그래, 이 야심한 밤에 애인 부모 집 안방 침입까지?

….

주거침입죄까지 추가되는구만.

근육질의 사파리 점퍼를 입은 수사관은 질타하듯 거친 말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오늘 들어온 놈 중 가장 잔인한 놈이 오셨구만. 흉악범이군. 너 같은 놈을 보고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반사회적 인간이라고 하지. 남의 재산에 불 지르고, 목숨 빼앗고, 거기에다 애인까지 죽이겠다? 사람 목숨이 하찮지? 너 같은 놈은 이 사회에서 발을 못 붙이게 격리해야 한다니까. 수사관은 거들먹거리듯 호기를 부리며 심문을 계속했다.

석유통은 어디서 샀어?

철물점에서….

휘발유는?

….

야, 나도 피곤하고 너도 피곤하잖아, 빨리 끝내자고. 휘발유는….

그게….

이걸 그냥! 어디서 샀어?

수사관은 성난 황소라도 된 듯이 게거품을 물고 밀어붙이며 다그쳤다.

그게…수…도.

야, 지금 너 뭐라고 했어?

…물이요.

뭐? 물?

수사실 유치장은 코 고는 소리로 가득했다. 간혹 입 없는 자들의 한숨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도 곧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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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응식 2022-04-01 15:43:26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이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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