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주체로 우뚝 선 '개딸'과 다시 만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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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주체로 우뚝 선 '개딸'과 다시 만난 세계
  • 박교연
  • 승인 2022.04.19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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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하는 거야. 다시 만난 우리의 세계.”

 

지난 3월 24일 여의도대로에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이 장면은 2016년 7월 30일 이화여자대학교 미래라이프대학 신설 반대 시위 당시, 1600명의 경찰을 투입하여 고작 300명 학생들을 진압하려던 장면을 연상시켰다. 시위 현장에서 민중가요도 아니고, 대중가요를 단체로 부른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후 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정치권에서 외면 받던 2030여성들이 얼마나 마음의 불꽃을 품고 있었는지는 노랫소리만 들어도 명료했다.

20대 대선에서 젠더갈등은 당락을 결정지을 만큼 주요한 쟁점이었지만,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몰아 받은 건 2030 여성이 아닌 ‘이대남’이었다. 안티페미니즘은 이퀄리즘으로 둔갑했고, 여성의 억압적 지위를 타파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책은 역차별로 여겨졌다. 심지어 당선인의 주요 공략 중 하나가 ‘여가부 폐지’였으니 여성이 이번 대선에서 얼마나 무관심의 대상이었는지는 이루어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2030 여성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건 6년 전 이대에서 촉발된 불꽃덕분이기도 했지만, 2018년 1년 내내 불법촬영에 저항하며 6차례나 시위를 이어간 내공 덕분이기도 했다. 마지막 ‘불편한 용기’ 시위에는 25만 명 이상이 결집했을 정도로 시위는 거대한 규모였고, 그런 규모의 시위를 잡음 없이 진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정치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2030 여성은 SNS를 매개체로 어떻게 결집하고, 어떻게 조직하여, 어떻게 일을 수행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경험을 얻었다. ‘불편한 용기’ 시위는 신생여성 정치세력화의 산실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그렇기에 역대 최소 표차인 0.7%로 당락이 결정된 다음 날부터 민주당에는 입당 러시가 쏟아졌다. 그리고 일주일간 새로 입당한 13만 중, 여성은 과반인 8만 명이 훌쩍 넘었다. 지난 3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선거 이후 2030 여성들의 민주당 입당 의미와 과제’ 토론회는 이런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리고 이 토론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한 2030세대 여성들은 “우리는 진보의 치어리더가 아니다”며, “2030 여성을 관람객이 아닌 경기장에 내려온 플레이어로 인정하라”고 선언했다.

현재 개혁의 딸들, 일명 ‘개딸’이라 일컬어지는 2030 여성들은 언론과 검찰개혁인 ‘언검개혁’을 요구하는 중이다. 이들은 가장 많은 의석수를 가진 민주당이 앞장서서 개혁과제를 서둘러 진행해주길 바라고 있다. 개딸들이 기성세력과 다른 점은 이를 독려하기 위해 투쟁이나 비판대신에 “민주당은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위를 만들어나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검찰 정상화’라는 표현이 있다. ‘밭갈이 시위’를 주체하고 있는 김학현 대표는 “과거 586이 주도했던 과거 집회에서는 투쟁, 개혁 등을 핵심 단어로 썼지만, 2030들이 되도록 긍정의 언어로 표현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초반에 집회를 진행하면서 나온 “검찰이나 민주당이나 다 갈아엎자”는 주장을 듣고, 개딸들은 “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자”고 표현했다. 결국 주최 측은 뜻에 공감하며 ‘개혁’과 ‘정상화’를 같이 구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개딸들은 문자독려나 1000원 릴레이 후원, 파란 장미를 전달하는 등 의원 개개인에게 접촉하여 좀 더 개혁의 뜻을 강력하게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권리당원의 3%가 동의하면 의안을 제출할 수 있다는 당규를 찾아내어 각종 SNS에 알리고, 의원총회를 열기 위해 온라인 서명 플랫폼을 공유하며 참여를 독려했다. 김학현 대표는 “나도 이런 당규가 있는지도 몰랐다”며 따뜻한 관심으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해줘서 감사하다고 말을 전했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두려워하게 하시고, 기업인들은 사람을 존중하게 하시며, 언론인들은 진실을 말하게 해 주시고, 법조인들은 양심을 지키게 하소서.”

위는 개딸들이 매일 저녁 온라인에서 게시하는 ‘기도스’의 일부다. 기도와 디도스가 합쳐진 주문의 일부만 읽어봐도 2030 여성이 얼마나 한국사회의 개혁을 간절히 염원하는지 알 수 있다. 오현철 전북대 교수는 2030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평가하며, “개딸은 노 전 대통령의 거듭된 낙선을 보고 자발적으로 모였다는 점에서 ‘노사모’와 유사하지만, 정치인 개인에 대한 지지를 넘어 민주당 안에서 자신들의 정치세력화를 조직했다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개딸들이 있기에 두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도 격동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20대 대선은 끝났지만 희미한 빛을 쫓아가는 개딸들의 정치여정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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