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나무와 사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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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나무와 사과나무
  • 최원영
  • 승인 2022.05.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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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51화

 

장터에서 배 묘목을 사다가 심었는데, 사과가 열린다면 무척 당황스럽고 난감할 겁니다. 살면서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참담한 결과를 마주해야 할 때가 많을 테니까요.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묘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묘목을 바꾸면 되겠지요. 그래야 그렇게도 원하던 맛있는 배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류시화)에서 저자는 이청준의 〈미친 사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느 마을이다. 산비탈을 개간해 배나무를 심었다. 배를 많이 수확해 가난에서 벗어나고 자신들도 배를 먹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열심히 물을 주고 거름을 나르며 희망을 쏟아부었다. 해마다 키가 크는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몇 해 뒤, 그 나무들에 열린 것은 배가 아니라 사과였다. 애초에 묘목을 잘못 고른 것이다. 배나무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그들은 실망이 너무 커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그것을 ‘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마을에 이미 사과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에서 사과가 열린 것이다. 기존 사과를 뭐라 부르지? 혼란을 피하려고 그것도 배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래서 이제 그들에겐 사과가 없어졌다.

배를 팔러 시장에 갈 때마다 사과를 배라 부르는 그들을 놀리고 비웃었다. 어딜 가나 조롱을 받았다. 자신들이 기대한 배가 아니라 사과를 매단 그 미친 나무에 대한 배신감과 수모가 극에 달하자, 마침내 그들은 일제히 산비탈로 가서 사과나무 모두를 뽑아버렸다.

그래서 몇 년 동안의 수고는 물거품이 됐다. 마음속엔 극도의 좌절과 분노만 남았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배가 열리길 원하지만, 사과가 열리는 경우는 허다하다.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고통은 마음속에서 상상한 배와 현실의 사과가 일치하지 않을 때다. 누구나 일어난 사건을 즉각 개인화시키고 감정을 투영한다.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더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는 문제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마음에서 온다.

밖에서 날아온 화살은 피하거나 도망치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기 안에서 스스로에게 쏜 화살은 피할 길이 없다.”

팔뚝에 화살이 날아와 상처를 입어 무척 아픕니다. 그런데 같은 자리에 또 다른 화살이 박힌다면 그 아픔은 배가 될 겁니다. 첫 번째 화살은 외부에서 나에게로 온 것이지만, 두 번째 화살은 나의 내면에서 나에게 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화살을 쏜 누군가를 원망하면서 분노하는 내 마음이 곧 두 번째 화살인 셈이지요.

그런데 첫 번째 것보다 두 번째 것이 사람을 더 아프게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밖에서 날아온 화살은 피하거나 도망치면 되지만, 자신이 스스로에게 쏜 화살은 피할 길이 없다고 단언한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찾아야만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다는 이치를 배울 수 있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바로 나의 ‘마음’입니다. 아픔을 겪을 때마다 그 아픔을 직접적으로 제공한 상대를 향해 분노와 원망을 표하기보다는, 사과나무를 없애고 배나무를 심어야 그토록 원하던 배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이미 사과 묘목을 심었다는 첫 번째 화살의 아픔은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 배 묘목을 심어야 합니다.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비로소 평온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 번째 화살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두 번째 화살은 나 자신이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요.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속에 있는 거니까요. 이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이고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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