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 덕분에 행복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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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 덕분에 행복한 날!
  • 허회숙
  • 승인 2022.05.15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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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스승의 날에 - 허회숙 / 전 인일여고 교장

얼마 전 이번에 제23대 인일여고 총동창회장이 된 11기 이명분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이번 스승의 날에는 선생님들을 한 자리에 모시지 못하고, 선생님 댁으로 저희들이 방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11기들은 졸업 30주년 기념 ‘홈 컴잉 데이’행사 이후 지금까지 스승의 날에 인일의 몇몇 은사님들을 모시고 매년 빠짐없이 조촐한 행사를 해왔다. 그러다가 재작년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2년간 모임을 못했는데 이번에 다시 모이려고 보니 몇 분의 선생님들이 너무 연로하시고 거동이 불편하여 나오시지 못하실 형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올 해에는 몇 명씩 팀을 짜서 개별 방문하여 은사님과 잠깐이나마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 한단다.

인일 11기 말고 이렇게 수십년간 사은 행사를 해 온 졸업생들이 또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우리 인일 졸업생들은 1기를 비롯하여 후배 기수들 모두 은사님들과 유난히 돈독한 사랑의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보통 남자 제자들은 평생 동안 은사와의 관계를 유지하지만 여자 제자들은 가르칠 때 뿐이어서 남학생 교육은 외상 장사이고 여학생 교육은 맞돈 장사라는 속설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은사님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깊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나타내며 살아오고 있다. 그래서 어느 은사님께서 ‘잘 둔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옛 말이 그대로 인일 졸업생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씀 하신 적이 있다.

지난 2021년 4월 7일은 인일 개교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 속에서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어 대면으로 만날 수 없는 속에서도 제22대 동창회장이었던 안명옥 총동창회장과 임원진의 강한 리더십과 졸업생들의 가이없는 애교심이 뭉쳐 성공적인 행사들을 치루어 냈다. 인일 갤러리에서의 미술전시회와 내리교회에서의 성대한 음악회, 그리고 4억652만 9800원의 기금마련 모금. 그 과정에서 망팔을 눈앞에 둔 우리 1기 졸업생들은 3학급(167명 졸업)에 현재 생존하여 함께 모일 수 있는 인원이 40여명에 불과한데도 4,720만원을 모아 10기 다음으로 가장 많은 액수의 성금을 냈다.

나는 인일 60주년이었던 지난 한 해를 흥분과 자부심에 젖어 행복하게 보냈다.

우리 학교 담 너머 있는 제고 출신들이 인일여고 졸업생들의 모교사랑 기세에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들을 해 온다.

1964년 인일여고를 졸업하고 8년 후인 1972년 모교 교사가 된 내가 첫 번째 담임을 맡은 학생들이 11기였다. 무엇이든지 첫 번째 경험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부모가 되어서는 자식이 첫 번째로 내 뱉은 말, 첫 발걸음을 떼었을 때,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첫 입학을 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나 자신의 기억 속에서 가장 강렬한 것도 첫사랑의 추억, 첫 번째 해외여행, 첫 아이의 출산, 첫 담임의 기억이다.

나는 첫 번째 담임을 졸업반인 3학년을 맡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행착오도 많았고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매달 보는 모의고사에서 어느 달이었는지 우리 반이 문과 반중에서 꼴찌를 하자 내가 엉엉 울어 버린 일이 있었다. 그 후 우리 반에서 전교 1등이 나오고 반성적이 올라가면 기가 펄펄 살다가도 반 학생들 성적이 떨어지면 파김치처럼 기가 푹 죽어 버리는 나를 보면서 주변 선생님들은 재미있어하며 놀리곤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나는 평생 동안 인일여고와 나 자신의 인격을 분리하지 못하고 동일시하며 살아오고 있다.

5월 14일 아침 집 가까운 커피숍에서 정환복과 유성애를 만나 함께 사진도 찍고 옛 이야기를 나누니 마치 우리가 그 시절 청춘으로 되돌아 간 듯 즐거웠다. 빨간 난 화분과 한 꾸러미 선물 보따리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 가슴이 따뜻한 감동으로 가득하다. 11기 동기회장 이상욱의 손 편지를 읽으며 다시한번 가슴이 뭉클하게 젖어왔다.

아~ 나와 함께 울고 웃던 꽃다운 청춘들이 이제 서로 할머니들로 불리는 나이가 되었건만 우리들 마음은 아직도 이리 풋풋하고 싱그러운 청춘이구나!

인생의 전성기가 65세라고 한 103세의 김형석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말씀에 깊이 공감한다.

사랑하는 11기 졸업생 여러분!

그대들은 지금 인생의 황금기인 65세 시대를 맞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활기찬 청추기(靑秋期)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대들 덕분에 행복한 스승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스승의 날을 맞은 스승과 제자들

 

스승과 제자들
인일여고 스승과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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