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족을 물어뜯는 사나운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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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을 물어뜯는 사나운 짐승
  • 이세기
  • 승인 2022.05.27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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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손바닥소설 - 북창서굴]
(7) 개

 

연재하면서                                                                                                    내 집에 북쪽으로 난 창이 하나 있다. 보잘것없는 창밖이지만 석류와 엄나무가 자라는 데 눈을 씻기가 그만이다. 그곳을 바라보면 골목이 내다보여 사람들의 목소리와 발소리가 들리곤 한다. 간혹 동네 사람들의 대화를 듣거나 나도 그 대화에 슬며시 끼기도 한다. 듣다 보면 가슴 저미고, 유쾌하고, 기이하고, 애달프다. 억울한 이야기는 입과 발이 없다. 산문도 되고 소설도 되는 손바닥만 한 글은 북쪽 창가에서 보내는 ‘장편(掌篇)’이다. 땅을 기며 살아가는 지렁이와 같이, 스스로 ‘북창서굴(北窓書窟)’에 갇혀 날갯짓을 글로 펼친다.

 

우리 집에 무서운 짐승이 살고 있다. 그는 매번 말끝에 인간의 세목을 평하며 돼지를 닮거나 쥐새끼를 닮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눈을 보면 그렇다는 거다. 왜냐고? 돼지고기를 먹고 교활한 쥐가 득실거리기 때문이다.

그는 김기덕의 <아리랑>을 보고는 걸핏하면 입에서 근본적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쓰레기를 먹어 치우는 자다, 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밥을 먹거나, 먹은 후에 그 말은 암담한 위력을 떨쳤다. 나른한 햇살이 떨어지는 정오가 막 지난 시각, 그는 점심으로 쓰레기를 먹어 치우고는 일설을 펼쳤다.

근본을 따지는 자야말로 망할 놈이지!

한번은 그가 후지와라 신야가 쓴 글에서 나오는 한 대목을 열심히도 자신의 말처럼 되씹었다.

풍토가 사람을 닮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돼지 눈을 닮을 거야!

아랍 사람들을 보면 모두 양의 눈을 닮았다고 그는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양을 먹기 때문이라고!

하긴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중근동 사람들을 보면 코가 오뚝해서인지 눈이 깊다. 눈망울도 커서 꼭 순한 양의 순정한 눈을 닮았다. 그게 다 그 땅에서 사는 짐승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돼지 눈을 닮았나?

내가 그 친구(나는 그를 호혜적인 친구라고 생각한다)의 머릿속을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평상시의 행동거지로 봐서, 그것은 비아냥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는 육식 포식자로 최상위로 군림하는 인간에 대한 조롱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육식을 하고 인간들은 험악한 사고나 행동을 한다. 소나 돼지의 긴장된 근육 덩어리를 먹으면서 내뱉는 말이란 어떤가!

쓰레기를 먹어 치우는 인간이나 돼지나 똑같지 않나?

한번은 저녁 산책에서 장어집 수족관을 물끄러미 응시하다 우연히 좁쌀만 한 장어의 눈빛과 마주쳤다. 수족관 유리에 일제히 들러붙어 있는 눈망울이 너무나 선량해서, 그 순간 전율하듯 부끄러운 죄악을 느꼈다.

저런, 땅바닥을 박박 기는 놈까지 먹어 치우다니!

나는 인간 축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이야말로 가장 비열한 이빨을 가진 존재다. 자신의 몸속에 종족을 물어뜯는 사나운 짐승을 괴물로 키우고 있으니!

그러고 보니, 칸칸이 불이 켜져 있는 집집이 모두 맹수 우리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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