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사며 서럽게 핀 망초꽃
상태바
미움 사며 서럽게 핀 망초꽃
  • 전갑남 객원기자
  • 승인 2022.06.05 22: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토에세이]
여름에 피는 들꽃 망초에 '화해'라는 꽃말이 있다

저절로 싹이 터 여름이면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망초꽃. 특히 묵힌 밭이면 망초는 제 세상을 만난 듯 점령해 버립니다.

어느 묵정밭을 지나는데, 개망초꽃이 정말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몇 해나 밭을 묵히면 이렇게 풀밭 아닌 꽃밭이 되었을까? 주인 잃은 밭이 망초 꽃밭으로 변했습니다.

요즘 어딜 가나 망초꽃이 피었습니다. 특히, 묵정밭엔 망초가 주인 노릇을 합니다.
개망초가 금계국과 함께 피었네요. 들꽃이 가꿔 핀 꽃 못지않게 예쁩니다.

작물이 심어져야 할 자리에 망초가 꽃밭을 이루다니! 좀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논밭 묵히는 일을 죄악시했습니다. 코딱지만 한 땅이라도 놀리는 법이 없었지요. 땅을 묵힌다는 것은 게으름을 드러내는 꼴이라 남세스러울 일이었습니다.

요즘 들어 이농 현상으로 시골에 빈집이 늘어나고 묵정밭이 생겼습니다. 작물 하나라도 심어 가꿔 먹었던 예전 일을 생각하면 놀랄 일입니다.

주인 떠난 빈집 텃밭에 망초꽃이 만발했으니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했습니다.

 

망초꽃에는 슬픈 이야기 하나가 전해집니다.

중국 초나라 때 일입니다. 어느 산골에 가난하지만, 금슬 좋은 부부가 살았습니다. 부부는 부지런히 산을 일궈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밭에 나가 일한 덕에 잡초 하나 없이 작물을 잘 가꿨습니다. 그래서 부부의 가을걷이는 풍성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초나라가 전쟁을 하게 되어 남편은 싸움터에 불려 나가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길어지자 남편은 쉬이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집에 올 때 잡풀이 무성한 밭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풀을 뽑고 또 뽑았습니다.

전쟁에 패하여 나라가 망할 것 같다는 소식은 일에 지친 부인을 더욱 힘들게 했고, 그만 병을 얻고 말았습니다.

자리에 누워 있을 수만 없는 부인. 유난히도 돋아난 풀을 뽑아 밭둑에 집어 던지며 "이 망할 놈의 풀" 하면서 끝내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오랜 전쟁 끝에 남편은 집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사랑하는 아내가 없는 밭은 풀만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원망과 슬픔에 겨운 남편은 아내가 김을 매던 밭에 나가 풀을 뽑아 던지며 신세타령을 하였습니다. "이 개같이 망할 놈의 풀"이라면서요!

그 뒤 사람들은 초나라가 망할 때 아내가 뽑아서 던진 풀은 '망초'라고 불리었고, 남편이 뽑아서 던진 한 맺힌 풀은 '개망초'라 불리었다는 것입니다.

망초와 개망초를 구분하여 부르기도 합니다. 개망초가 망초보다 개화 시기가 빠른데 6월 초순에 피는 것은 개망초라 보면 됩니다. 잎사귀가 다소 둥근 게 개망초이고, 망초는 길고 가늘죠. 개망초는 작은 달걀을 프라이한 것처럼 예쁜 데 비해, 망초는 꽃송이가 자잘하고 볼품이 덜합니다.

망초꽃 전설에서 애잔하고 서러움이 북받쳐오는 느낌이 듭니다.

나들이하기 좋은 경춘선숲길. 폐철길을 따라가다 보면 제멋대로 망초꽃이 군데군데 피었습니다.
아름다운 경춘선 숲길입니다.

걷기 운동 삼아 아기자기한 멋이 깃든 경춘선 숲길을 걸었습니다. 경춘선 숲길은 서울 노원구 월계동 광운대역 일대에서부터 공릉동과 화랑대역을 지나 담터마을까지 5.4km나 이어졌습니다. 옛 경춘선 성북역과 퇴계원역 구간의 폐철길을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걷기 좋은 숲길입니다.

녹음 우거진 숲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폐철길 이쪽저쪽에서도 흔한 개망초꽃이 피어났습니다. 누가 씨를 뿌리고 가꾸지 않았을 터. 어느 곳에선 무더기로 피어나기도 하고, 또 뜨문뜨문 피어있기도 하였습니다.

철길가에서 멋을 부리고 핀 개망초꽃.
망초꽃을 찾은 꿀벌. 망초꽃의 예쁨을 알아주는 듯싶습니다.

작은 국화꽃 같은 개망초꽃은 가까이서 보면 참 예쁩니다. 어린아이 키만큼 자라 바람에 흔들립니다. 건들건들 일렁이는 꽃은 쌀뜨물처럼 뿌옇습니다. 바람이 드나드는 꽃 속에 벌과 나비는 뭐가 그리 신이 난 건지 숨바꼭질하기에 바쁩니다. 사람들이 외면하는 꽃을 벌 나비가 친구가 되어 주는 듯싶습니다.

망초는 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라 합니다. 그러던 망초가 언제부턴가 우리 산하 곳곳을 차지하며 이제는 토종식물처럼 행세를 합니다. 망초는 풀 우거질 '()'자를 써서 망초(莽草)라 합니다.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자라 딱 맞아떨어지는 이름인 것 같습니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망초는 나물로도 먹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요즘 맛난 게 하도 많아 망초를 나물로 쓰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른 봄, 어린 망초를 뽑아 데쳐 나물로 무쳐 먹으면 향과 맛이 좋다고 합니다. 여린 망초를 데쳐 말린 다음 묵나물로 먹으면 색다른 맛을 냅니다. 예전에는 내남없이 많이 먹었다 합니다.

그러고 보면 나물로 먹는 망초는 '망할 놈의 풀'이 아니네요. 아무리 흔한 풀이라도 이를 알고 유용하게 활용하면 잡초도 쓰임새가 있는 것입니다.

개망초꽃. 참 아름답습니다.

망초꽃에 초점을 맞춰 사진을 찍으려는데, 꽃이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바람이 망초대의 가느다란 허리를 붙잡고서 자꾸 흔들어댑니다.

개망초꽃을 보면 달걀 프라이가 연상됩니다. 꽃 가운데엔 노른자, 가장자리엔 흰자위처럼요. 그래서 어떤 이는 개망초꽃을 보고 계란꽃이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가뭄이 심한 요즈음 꽃을 피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힘든 고비를 만났어도 망초꽃은 지금 한창 피어났습니다. 버려진 땅이건 조그만 틈새에서도 자신의 생명력을 과시합니다. 꽃 피고 지는 게 뭐 대수냐 할지 몰라도 자기 자리를 지켜준 것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개망초꽃, 작은 국화처럼 아름다운 자태.

꽃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저절로 예쁜 모습으로 피어난 망초꽃도 찬란한 여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망초꽃의 꽃말은 생각보다 의미심장합니다. '화해'라는 예쁜 꽃말을 가졌습니다.

61일 치열했던 지방 선거가 끝났습니다. 선택받아 승리했건 부족해서 패배했건, 망초꽃 꽃말처럼 이젠 서로 화해하고 나라를 위해 미래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망초꽃 / 자작시

묵정밭에 한자리 잡은 꽃
망할 놈의 풀이라
봐주지 않아도
꼿꼿이 서서
잘났다 우쭐대는 놈한테는
나보다 못한 놈 없다 하고
못났다 한탄하는 녀석에겐
나처럼 이쁜 구석이 있다고
바람결에
너울너울 춤추며
엔간허면
화해하고
살어라 살어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