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가 가져온 여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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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가 가져온 여성차별
  • 박교연
  • 승인 2022.06.1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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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지난 5월 21일 한미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외신기자는, 21세기 대한민국 정부내각이 왜 이렇게 남성 편중적이냐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물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여성에게 공정한 기회가 부여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장관을 맡을만한 능력을 갖춘 여성이 적다”고 대답했다. 즉, 여성혐오가 아니라 성별과 무관한 능력으로 선별한 결과이기에 남성 편중 내각이 공정하다는 답변이었다. 당연히 이는 틀린 말이며, 무지와 편견으로 비롯된 차별일 뿐이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21년 ‘성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고위공직자 및 기업 임원 여성 비율은 세계 134위, 여성의 경제적 참여와 기회 부문은 123위, 정치적 참여기회는 68위로 매우 낮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여가부가 발표한 2021년 ‘성별 임원 현황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상장된 2,246개 회사의 임원 3만 2,005명 중 여성임원은 전체의 5.2%인 1,668명에 불과하다. OECD 국가 평균 25.6%과 비교해보면 5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낮다. 심지어 2,246개 회사 중에서 남성임원만 있는 기업은 63.7%에 달할 정도로 현존하는 기업 10곳 중 6곳은 여성임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통계는 여성이 무능하다는 증거가 되는 게 아니라, 성별에 따른 격차인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1979년 미국의 경제 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성별이나 인종 등의 이유로 조직에서 일정한 서열 이상으로 오르지 못하게 만드는 장벽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성별이 성공의 척도를 결정할 정도로 유리천장이 두텁다. 오죽하면 21세기 내각에 여성이 세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성별 임금격차도 여성혐오와 여성차별이 실존함을 드러낸다. 한국의 남성이 세계의 모든 남성과 비교했을 때 독보적으로 생산성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면, 여성에 대한 직접적인 차별 말고는 30%가 넘는 격차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여성이 주요 요직에 안 보이니까 부적합한 게 아니라, 그렇다고 편견을 가지니까 주요 요직에 자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인지하는 데에는 거창한 페미니즘적 이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를 면밀히 살펴보기만 해도 충분하다.

‘인과 전도의 오류’는 인과관계를 서로 뒤바꾸어 원인을 결과로 보고, 결과를 원인으로 보는 데서 생기는 오류다. 예를 들면, 미국 주요 도시의 범죄 발생 건수와 경찰관 수가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걸 파악하고, “경찰관 수가 많을수록 범죄 발생 건수가 늘어난다”고 거꾸로 결론짓는 것이다. 인구가 많은 지역에 가면 언제나 고층 아파트들이 많이 있으니, 인구 감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층아파트를 많이 세우자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능력이 있는 여성이 없어서 성차별이 정당하다는 말은, 차별적이고 혐오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말이다.

안타까운 건 윤 대통령이 취임사를 통해 반지성주의에 대한 반성과 경계를 거듭 강조했다는 거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 서두에 “공동체의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입니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돼야합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앞장서서 과학과 진실에 반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사람은 윤 대통령이다. 특히 대선기간에서부터 윤 대통령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고 모두 개인의 문제라고 단언하였다. 심지어 2월 대선 TV토론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구조적 성차별이 정말 없냐고 묻자, “그것에 대해 신경 쓰기 싫다”고 답했을 정도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28일 CNN인터뷰에서 ‘서오남(서울·50대·남성)’ 내각에 대해 설명하며, “여성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국민적 인식이 심지어 여성조차도 약화돼왔다”고 발언했는데 이 또한 과학과 진실로부터 거리가 멀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1 양성평등 실태조사’를 보면, 국민의 성평등 의식은 5년 전 조사에 견줘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20대 여성의 58%가 ‘여성가족부 폐지’ 등 반여성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윤석열 후보에 반대하여 상대편 후보로 결집한 현상을 설명하기도 어렵다. 장태수 정의당 선대위 대변인 역시 “여성에게 공정한 기회가 더 적극적으로 보장되지 않아서 내각의 남성 편중이 일어났다는 답변과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인식은 모순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므로 윤 대통령은 ‘여성 없는 내각’과 ‘여성 가족부 폐지’라는 2가지 업적을 달성하기 전에, 본인의 취임사에 적힌 내용을 한 번 더 면밀히 살피고 진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한민국 여성은 과학과 진실에 의거하여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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