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심 골목을 지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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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심 골목을 지키는 사람들
  • 이세기
  • 승인 2022.06.24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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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손바닥소설 - 북창서굴]
(9) 소파 도둑
오이꽃
오이꽃

 

소파 도둑

어젯밤 골목에서 고양이들이 밤새 쫓고 쫓기며 난리를 치더니 아침은 쥐 죽은 듯 고요하게 시작했다.

지장재일(地藏齋日)을 맞은 이른 아침이었다.

골목에서 고성이 들려 나가봤더니, 철거 일을 하는 인왕산이 웬 사내와 신축 빌라 앞에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당신 거기서 도둑질하려고 했지?

인왕산 멧돼지(골목 사람들은 덩치가 큰 그를 이렇게 불렀다)가 다짜고짜 목청을 높였다.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에 시비조가 가득했다.

오지랖 떨기는.

삐쩍 마른 사내는 상대하기 싫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다 지켜봤어!

인왕산은 대뜸 사내를 도둑으로 몰며 트집을 잡았다.

사내는 신경질 투로 쳐다보면서 맞받아쳤다.

할 일이 그렇게 없어?

내가 참견할 일이 있어 그렇지!

아니, 뭘 참견할 일이 있다는 거요?

나, 저 건물 주인과 친구 되는 사람이야. 왜 남의 건물은 기웃거려!

아니, 건물 주인과 친구면 친구지, 내가 뭘 훔치기라도 했단 말이요?

그런데 왜 소파를 훔쳐봐?

남이야 보든 말든!

사내는 기가 막힌다는 듯 인왕산을 향해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쏘아붙였다.

한번 해보겠다는 거지!

인왕산은 대뜸 쌍욕과 함께 언성이 높아졌다.

어따 욕이야!

이렇게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시작된 말싸움은 몸싸움 직전까지 갔고 급기야 서로 경찰을 부르라며 씩씩거렸다. 인왕산은 지구대 경찰을 부르겠다고 철거사무실로 들어갔다.

잠시 뒤 인왕산 친구 두 명이 바지춤에 손을 넣고 왔다. 그중 한 치는 사내에게 다가와 무슨 일로 그러느냐, 넌지시 참으라는 투로 훈수를 뒀다. 그리고 또한 치는 무슨 낌새라도 맡을 심상으로 염탐하듯 사내를 쳐다보았다.

사내는 마침 잘되었다며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몰아붙였다.

경찰 빨리 오라고 해!

하면서 기세등등하게 대들었다. 인왕산도 뒤지지 않았다.

도대체 저 인간은 뭘 믿고 저리 설치는지 한번 까봐야겠어, 왜 경찰이 빨리 오지 않느냐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사내는 자신을 도둑으로 몰아세우는 것에 분통이 터진다면서 인왕산의 사무실까지 쫓아가 소리를 질렀다.

할 일이 그렇게 없어!

서로 그만하시지요!

그중 약간은 점잖은 척하는 치가 사내를 떼어놓듯 밀어붙이면서 말했다.

내심 누군가 중재라도 서 주길 바랐는지 경찰이 현장에 도착도 하기 전에 한바탕 실랑이 상황은 싱겁게 끝났다.

인왕산도 말리는 친구의 간청에 못이기는 척하면서 한마디 쏘아붙이고는 철거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겁대가리 없이!

사내 역시 한 마디 뱉어내는 것으로 끝을 냈다.

덩칫값이나 해!

둘 다 악에 받친 얼굴로 서로 원수 보듯 등을 돌렸다.

소파 하나 가지고 철거와 배달 사무소 간에 서로 싸웠구만!

두 사내의 싸움을 지켜보던 골목 사람들도 수군거리다 그만 싫증이 났는지 이내 뿔뿔이 흩어졌다.

비스듬히 열린 사무소 안에는 철거하면서 가져온 해피트리 화분이 있었다. 그 옆에 다 헌 탁자 위에 바둑판이 놓여 있었고 낡은 의자 몇 개가 달랑 보였다.

배달 사무소 사내는 일진이 사납다고 푸념하였다. 죽은 검은 나뭇가지의 그림자처럼 어깨가 축 처져서 걸어갔다.

이튿날 나가보니 내리는 비에 소파가 젖어 있었다. 인왕산은 멀뚱하게 닭 쫓던 개마냥 소파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는 말다툼을 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돌부리에 차여 넘어진 이후 한 달 내내 허리 통증이 심해서 끙끙 앓다가 겨우 걸어 다녔다. 처음에는 허리춤에 손을 받치고 다니다가 차츰 통증이 심해져 목발을 짚고 다녔다.

사무실을 개업하자마자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보다 못한 그의 여든이 넘은 장모가 경동시장에까지 가서 허리에 좋다는 지네 오십 마리를 구해 생닭에 당귀, 감초, 대추, 생강, 황기를 넣고 지극정성으로 푹 달여서 먹였다. 몸이 아프면 가난해진다며 약을 먹고 펄떡 일어나라고 복달했다. 허리에 복대를 하고는 사무실 앞 손바닥만 한 화단에 오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때마침 핀 오이꽃을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면서 애지중지 키웠다.

인왕산은 일이 없었는지 혼자 바둑을 두다 지루하면 사무실 입구 문턱에 노랗게 핀 씀바귀꽃을 웅크리고 앉아 무료하게 쳐다보았다.

그 뒤로도 소파는 뙤약볕 아래서 그 자리를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었다. 간혹 음식물 쓰레기를 노리는 길고양이가 여름 해가 떨어지기 직전 어둠이 밝아지기를 기다리며 천연덕스럽게 소파에 앉아 졸았다.

*지장재일(地藏齋日): 육도(六道:지옥·아귀·축생·수라·하늘·인간세상의 여섯 가지 세상)의 중생을 구원한다는 지장보살 재일(齋日).

 

씀바귀꽃
씀바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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