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역사, 은둔의 대숲 - 담양 소쇄원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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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역사, 은둔의 대숲 - 담양 소쇄원을 찾아
  • 허회숙 객원기자
  • 승인 2022.07.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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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기획]
대 숲에 부는 바람, 조선 선비의 고고한 향기가 그윽

지난 6월 14일부터 3박4일간 전남 여수, 순천 일대를 둘러보고 인천으로 올라오면서 담양 소쇄원(瀟灑園)에 들렀다.

소쇄원(瀟灑園)은 전남 담양군(남면 지곡리 123번지, 061-381-0115, 운영자: 천득염)에 소재하고 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켜 꾸민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민간 원림(園林)이다.

소쇄(瀟灑)란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고 원림(園林)이란 집터에 딸린 숲이라는 뜻이다.

한국의 전통 정원 중 최고의 원림으로 평가받고 있는 소쇄원은 국가 명승 제40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중종 때의 선비 소쇄공((瀟灑公) 양산보(1503~1557)가 고향인 담양에 내려와 은둔의 공간으로 조성한 별서(別墅)의 원림이다.

1530년대에 조성하기 시작하여 그의 자식과 손자 대에 이르러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로 사사(賜死)되는 모습을 보며 현세적인 꿈을 접고 은둔하여 처사(處士)로서의 삶을 살고자 소쇄원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정유재란(1597)시 건물이 불에 타기도 했지만 후손들에 의하여 다시 복원, 중수되어 현재까지 15대에 걸쳐 후손들이 잘 가꾸어 나가고 있다.

이 원림을 조성한 양산보는 “어느 언덕이나 골짜기를 막론하고 나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 동산을 남에게 팔거나 양도하지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 것이며 후손 어느 한 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게 하라”는 유훈을 남겼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약 70m 쯤 걸어가니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를 지나 하늘까지 닿을 듯 높이 뻗어있는 대나무 숲길을 따라 40m 정도 올라가면 소쇄원이 나타난다.

돌담과 대나무로 엮은 담장 안의 울창한 대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결에 대숲의 향기가 싱그럽다.

대나무 숲길이 끝나자 왼쪽으로 작은 계곡이 보이고 시냇물이 흐르는 물가에 연지(淵池)가 보인다.

새끼 두꺼비 한 마리가 나무틀 위에 앉아 햇볕을 쪼이고 있는 모습이 여유롭고 평화스럽다.

전국적인 가뭄이 이곳도 예외가 아니어서 물이 거의 말라 바닥이 보인다. 그래도 연지에는 맑은 물이 꽤 고여 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대봉대(待鳳臺)가 나타난다.

‘봉황을 기다리는 누정’이라는 뜻이다. 소쇄원에서 손님을 처음 맞이했던 정자이다. 소쇄원을 꾸민 양산보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대봉대에는 이미 먼저 온 객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개울을 가로지르는 작은 돌다리(위교) 넘어 광풍각(光風閣)이 보인다.

광풍각(光風閣)은 소쇄원을 관통하는 계곡 옆에 자리한 정자이다.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소쇄원을 찾는 이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멀리 보이는 광풍각에는 몇 명의 내방객들이 바람을 쏘이며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뒤편으로 조금 높은 곳에 제월당(霽月堂)이 있다.

제월당(霽月堂)은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의미로 소쇄원 주인이 학문에 몰두했던 공간이다. 고즈넉한 한옥 건물의 아름다움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인문학도들로 보이는 젊은이 대 여섯 명이 둘러앉아 필기를 해 가며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진지하게 공부하는 그들의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소쇄원에 들어서면 내원과 외원을 구분하는 긴 담장이 동쪽에 걸쳐 있다.

애양단(愛陽壇)이라는 담장의 명칭도 어버이에 대한 애틋한 정감을 드러내 정겹다. 500년 긴 세월을 느끼게 해주는 담장 위의 기와도 애틋하다.

북쪽의 산 사면에서 흘러내린 물이 계곡을 이루고 흘러내려와 담장 밑을 통과하여 소쇄원의 중심을 관통하는데 그 문의 이름이 오곡문(五曲門)이다.

오곡문은 담 아래 터진 구멍으로 흘러내린 물이 암반 위에서 다섯 굽이를 이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곡문을 지난 계곡의 물은 험한 바위를 타고 굽이쳐 흐르다 작은 폭포를 만든다.

계곡과 바위, 고목과 정자가 어우러진 소쇄원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절묘하게 이뤄낸 곳이다. 

안빈낙도하고자 하는 조선 선비들의 마음이 깃들어 있어 고요하고 정감이 간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시대 선비들의 만남과 교류의 장으로서 곳곳에 조선시대 선비들의 심상이 오롯이 묻어나 있다.

소쇄원에는 영조 31년(1755년) 당시 모습을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가 남아있다고 한다.

내원(內園)의 면적은 1400여 평이지만 외원(外園)까지 포함하면 수 만평에 이른다. 현재의 소쇄원은 내원만을 일컫는 것이다.

소쇄원은 그저 아담하고 소박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빌려 그 속에 또 다른 자연으로 건물을 배치해 두었을 뿐이다.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건물을 지어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우리나라 원림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번 여수 순천지방 여행을 마치고 인천으로 올라오다가 일행중에 소쇄원을 못가본 분이 두 분이나 계시다고 해서 일정에 없던 소쇄원을 찾았다.

소쇄원은 젊은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리움으로 나를 부르는 곳이다. 규모와 볼거리가 아닌 내면의 울림을 중시하게 되는 것도 나이 탓인듯 싶다. 

오랫만에 들르니 그 어느 때보다 원림 조성의 깊은 뜻이 내 마음에 스민다.

온 몸의 긴장과 피곤함이 사라지고 새로운 기운이 솟는다. 이런 것을 힐링이라고 하지 않던가?

기대 이상의 힐링으로 새 힘을 충전한 우리 일행은 다시 훗날은 기약하며 소쇄원을 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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