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를 잡아당긴 그 갯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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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를 잡아당긴 그 갯펄
  • 강태경
  • 승인 2022.07.1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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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강태경 / 시민기자

새벽 다섯 시 곤한 잠을 깨우는 이가 있었다. 어제 저녁에는 일찍 일어나 갯벌에 나가 해루질을 해보겠노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은 나를 깨우는 님이 야속하기만 하다. 낙지가 동그란 머리통에서 먹물을 뿜어 내며 퐁퐁 도망가는 모습도 보고 자갈밭 돌을 들치면 혹시라도 눈먼 낙지가 잡힐거라 상상했었다. 바지락도 캘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어나지 못하는 나머지 일행들을 두고 5명이 차를 끌고 답사를 다녀온 K의 안내를 받았다. 5시인데도 한여름이라 날은 훤하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사유지라는 팻말이 있는 해변으로 내려가 차를 세웠다. 우리가 내린 곳은 좀 굵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바로 갯펄이 맞닿아 있다. 조금 때인데도 바닷물은 보이지 않을 만큼 갯펄은 한없이 드러나 있다.

준비해온 갯펄장화를 각자 사이즈에 맞게 골라 신었다. 장화는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생전 처음 신어보는 큰 신발이다. 용도에 전혀 맞지 않는 네발 갈쿠리도 하나씩 집어 들었다. 기념사진을 놓칠 리 없다. 장비를 갖춘 남녀 5명은 낙지는 수십 마리, 바지락은 한 자루 그득히 잡을 것 같은 폼이다.

마음 급하신 두 사람은 벌써 갯펄로 손잡고 조심스레 들어갔다. 낙지를 잡으려면 까마득한 갯펄을 지나 바닷물 속을 살펴야 할 것이다. 갯펄 구멍이 있어 파보니 지렁이가 움직여 지나간다.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걸을 만 했다. 바위 돌이 있는데도 가 봤지만, 그곳도 펄이 가득해 바지락이 없다. 바지락은 기존 묻혀 있는 돌밭에 아주 약간의 진흙과 약간 굵은 모래가 바윗돌 틈틈이 섞여 있는 곳에 있다.

이 때 이날의 ‘사건’이 일어날 줄은 아무도 예기치 못했다. 여기저기 갯펄을 파헤치며 다니다가 H가 갯펄 한켠에서 깊숙이 발이 빠져 쩔쩔맨다. 혼자서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발을 빼려다 무릎까지 꿇으며 옷에 개흙을 묻힌 H는 결국 옆에 있던 젊은 P가 부축하며 7~8보 발을 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대신 P가 빠졌다.

그때 주변에 있던 내 발도 깊숙이 빠져들어 갔다. 이럴 수가... 이곳 개펄 특정구역에 반경 10여미터 가량 늪이 형성돼 있는 것 같았다. 빠진 발을 떼려는데 갯펄이 찰떡같이 발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두 손으로 갯펄을 짚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발을 빼야 한다. 오른발을 빼려고 두 손으로 겨우겨우 잡아당겨 빼내었더니 상대적으로 힘을 준 왼발이 더욱 깊숙이 빠져들었다. 옆에 K가 팔을 뻗쳐 잡아줬으나 힘을 준 K역시 같이 빠졌다. 혼자 스스로도 빠지는데 다른 사람을 도운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젠 각자 도생이다. 한참 용을 쓰고 있는데 P가 네발로 걸어 나가는 게 보였다. 한 사람이라도 뻘에서 빠져나갈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두 손으로 긴 장화를 잡아당기면서 이 발 저 발 뺀다. 겨우 귀신같이 잡아당기는 갯펄에서 덜 빠지는 갯펄로 탈출했다.

옆에서 K도 애를 먹고 있었으나 갯펄에 박힌 돌 하나의 도움을 받아 곧 빠져나왔다. P가 말했다. “갯펄에 빠졌을 때는 누워서 수영하듯이 빠져나오면 된다”고. 일리가 있는 말이다. 무게 중심이 분산되면 깊숙이는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K가 이어 말한다. “결국 빠져 나오지 못해 기운 다 빠지면 밀물 때 죽을 수도 있다”고. 그 얘기가 지금처럼 실감있게 들린 적도 없다. 그런 뉴스도 가끔 들리지 않았나?... 기억이 맑아진다.

갯펄은 잔잔한 물결무늬처럼 육지를 향해 골이 저 있었다. 나는 해변가로 이동해 바위 틈 웅덩이 바닷물에 장화를 깨끗이 씻고 일행을 기다린다. 일행들은 갯펄에 빠져 그 고생을 하고도 무엇인가 잡아 보겠다고 나오지를 못한다. 무엇을 잡아 왔는지 까만 비니루 봉지에 한 주먹이나 된다. 손톱만한 게 열 마리 정도와 이름도 모르는 물컹한 작은 생물체, 초라한 수확이지만 즐겁기 만한 중·장년들이다.

해루질이 처음이라고들 좋아한다. “낙지는 잡아서 우리가 다 먹고 왔다고 하자” H의 엉뚱한 제안에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몇 마리 잡았다고 할 건데요?” “두 마리로 하자” 나는 더욱 웃음이 났다. 새벽잠 설치고 바다에 가서 해물을 잡아 맛있게 라면을 끓여 주겠다는 고운 마음들은 손톱만한 게 열 마리 남짓에 다 배어있다. 그 해물 라면 생각하면은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걸 씻고 국물을 우려 라면 여덟 개를 끓였다. 숙소에 있던 일행들과 같이 차린 것 없는 아침 식사를 즐긴다. 맛은 산해진미와 다를 것이 없다.

아무것도 잡을 것이 없던 그 갯펄! 해물을 잡으러 갔가가 오히려 우리가 갯펄에 잡아 먹힐 뻔했다. 나를 웃긴 그 갯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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