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엽 / 자유기고가
연주자가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부분은 좋은 실력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한다. 옆에서 나오는 소리를 먼저 들어야만(경청) 나의 볼륨 조절을 할 수 있고 전체 사운드를 감각적으로 맞추게 된다. 클래식의 긴 곡이나 그룹사운드 솔로 에드립을 할 때는 자못 지루할 수 있어 ‘인내’가 필요하다. 또한 클래식은 어거 스틱만을 사용해 잔잔한 음으로 연주할 때는 미세한 움직임도 다 들려 좋은 음악을 듣는 이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배려’가 필요하다. 이처럼 음악 속에는 경청과 배려, 인내와 절제, 협력과 조화를 이루는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덕목들이 모두 들어가 있다.
강호동 씨가 진행하는 T.V프로그램에 '무릎 팎 도사'가 있었다. 얼마전 출연자였던 장한나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첼로리스트이다. 그런데 첼로를 연주할 때 그녀는 찡그리는 듯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연주를 했다. 사회자가 물었다. “연주할 때 얼굴 표정을 왜 그렇게 짓나요.” 장한나는 “나도 여자인데 수천 명이 보는 앞에서 그런 표정을 짓고 싶겠어요.”라고 말했다. “얼굴의 표정이나 외모에 잠깐이라도 신경을 쓰는 순간 첼로와 하나 되는 연결 끈을 놓친다.”고 말했다. “자신의 존재는 음악이 나오는 통로에 불과하기 때문에 손가락 움직임도 보지 않는다.”며 “움직임을 보는 순간 표현되는 것이 깨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음악의 높은 수준이 무엇일까?’ 자신의 몸이 악기와 혼연 일치되는 경지가 최고의 수준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으로 자신의 감정과 사상을 나타내는 음악은 언어로 표현하는 ‘시’인 동시에 음을 소재로 한 예술이다.
멜로디에 자신의 영혼을 담아 곡을 쓰기에 고스란히 음악가의 감정이나 정서를 알 수 있다. 라이브 공연은 머리로 느꼈던 것을 가슴으로 듣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다. 필자도 보컬 피아노를 했지만 그때도 나의 삶 속에서 평생 말하지 못한 것, 말할 수 없는 것을 연주와 노래로 청중들 앞에서 한을 풀어내기도 했다. 나는 관객들을 모르고, 세대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그들과 함께 대화하며 하나가 되는 경험을 했다. 6인조로 연주했지만 공연장에서의 연주는 웅장한 울림과 청중들의 열광까지 7인조가 된다. 소리로 마음을 표현하고 더불어 공감하며 환호해 주는 그들 있기에 기쁨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다. 공동체의 정신을 음악을 통해 볼 수 있었고 자기 내면의 것들을 외부로 끌어내어 공유하기도 했다.
필자가 클래식에 심취하게 된 계기는 영화 ‘타이타닉’을 보고 난 직후였다. 배가 두 동강이 나 물에 잠길 때 승객들은 서로 살려고 발버둥 치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때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현악 4중주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을 연주한 악사들 모습이 지금까지 나의 뇌리에 남아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악기를 붙들고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배려’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현악 4중주의 연주는 클래식의 꽃과 같은 앙상블이었다.
오케스트라는 수십 명의 음악인과 악기가 동원되며 입체적으로 구조를 일으킨다. 각 단원들은 자기가 소속된 곳에서도 지휘자이며 리더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전체 중 일부를 담당하고 조화를 이루는데 힘쓴다. 자신이 맡은 악기에 대해서는 지휘자보다 더 높은 능력을 갖춘 사람임에도 지휘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연주하며 지시에 따른다. 마치 우리 몸의 눈과 코, 입, 위장, 항문처럼 한 몸을 이루는데 맡은 바 책임을 다하듯이 말이다.
우리에게 문학과 예술이 없다면 삶이 얼마나 지루했을까? 복잡 다양한 삶을 깨우는 예술은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고 위로와 의욕을 갖게 한다. 마음을 맑게 해주는 음악을 들으며 나는 가사의 의미도 살펴보고 삶과 어떻게 연관 져야 할지 생각하며 떠오르는 영감을 글로 표현하기도 한다. ‘협력’이 가져다주는 최고의 결과를 나는 음악을 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