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우리들의 집, 만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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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우리들의 집, 만수동
  • 유광식
  • 승인 2022.08.01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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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 일기]
(85) 만수2동 일대 - 유광식 / 시각예술 작가

 

만수2동 만수시장 입구, 2022ⓒ유광식
만수2동 만수시장 입구, 2022ⓒ유광식

 

무더위와 휴가, 들뜬 열기가 상상되는 8월이 한 움큼이다. 세상은 어수선하고 내 세상은 고요하다. 훌쩍 떠나고 싶은 곳은 많아도 쉽게 마음 열고 다니기에는 주춤하게 된다. 지친 심신을 달래려 맛있는 옥수수 알을 세어가며 지내는 일상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소나기가 내렸다가 구름이 지나가고, 볕이 들고, 다시 저녁이 되어 뉴스를 본다. 반복되는 파도에 바다는 건강해진다고 한다. 그렇지 못한 마음은 물 건너 당신의 마음을 알 수 없어 거리감만 늘어난 채 살아가게 된다. 덥다는 이야기다. 

 

시장으로 통하는 단비 같은 골목, 2022ⓒ유광식
시장으로 통하는 단비 같은 골목, 2022ⓒ유광식
시장을 본 후 돌아가는 주민, 2022ⓒ유광식
시장을 본 후 돌아가는 주민, 2022ⓒ유광식

 

과거 하이웨이 주유소가 있던 곳으로 기억하는 만수동을 찾았다. 지금은 주유소 아래쪽으로 만수역이 생겨서인지 걸어서 오가는 모습이 많다. 주공단지 건너 만수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여느 시장과는 다른 정겨운 모습이 느껴졌는데, 다시 보니 시장에 천장이 없었다. 대부분의 시장마다 캐노피 시설이 지원되어 설치되었지만, 만수시장의 지붕은 상인분들이 내놓은 오색 파라솔과 천막이 대신하고 있었다. 볕이 잘 들어오니 지금 한창인 채소와 과일의 빛깔이 더욱 선명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야트막한 경사길 양편으로 각자의 주력 품목을 내어놓고 오가는 손님들의 시선을 끈다. 시장을 보면 동네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데, 만수시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이며 활기가 있었다. 

 

만수시장(파라솔이 여름을 맞고 있다), 2022ⓒ김주혜
만수시장(파라솔이 여름을 맞고 있다), 2022ⓒ김주혜
시장 내 어느 상점(상품카드 사이로 부탄가스가 이채롭다), 2022ⓒ김주혜
시장 내 어느 상점(상품카드 사이로 부탄가스가 이채롭다), 2022ⓒ김주혜

 

시장 입구에는 보통내기가 아닌 듯한 만수종합쇼핑 건물이 있다. 겉모습만 보아도 웅장한 규모지만, 낡은 시간이 묻어 있고 내부도 오래전의 명성만 말해줄 뿐 군데군데 위태롭다. 아마도 이 근방 최대의 상권이었을 것이다. 직선 형태의 시장에 방사형으로 나있는 골목들을 걷는다. 오래된 간판이 많아서 마주칠 때마다 정겨운 기분이 든다. 주민들의 사랑방처럼 이용되는 작은 식당들이 많았고, 아빠와 함께 시장에 나선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아이들에게 올 여름은 어떻게 기억될까? 아직은 아빠, 엄마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만수시장 입구(입간판 시설), 2022ⓒ유광식
만수시장 입구(입간판 시설), 2022ⓒ유광식
시장 뒷골목 거리(숨겨진 식당과 미래가 있다), 2022ⓒ유광식
시장 뒷골목 거리(숨겨진 식당과 미래가 있다), 2022ⓒ유광식
만수시장 주변 간판 모음, 2022ⓒ유광식
만수시장 주변 간판 모음, 2022ⓒ유광식

 

만수2동 지역은 향촌지구로 불리었다. 지금은 상당수의 지역이 철거된 뒤 아파트가 세워졌다. 이 과정에서 희생자도 있었던 뼈아픈 장소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과거 동사무소 건물은 남동구 도시관리공단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편 인근에는 수많은 민주화·노동운동가를 탄압했던 옛 대공분실 건물도 있는데, 활용 방안을 여태 못 찾고 있다. 숭덕여중고와 동인천고를 지나 조금 더 가니 나지막한 높이의 집들이 나타났다. 만부마을이다. 6・70년대 도시개발로 인한 철거민들의 이주 장소가 된 곳이다. 누울 자리 하나 안전하지 못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만수산 아래로 졸졸 흐르다 마른 것도 같다. 알고 보면 산 아래 그늘진 장소가 많다.

 

한국공영아파트 외벽화, 2022ⓒ유광식
한국공영아파트 외벽화, 2022ⓒ유광식
만수신동아아파트 앞 마을버스 정류장, 2022ⓒ유광식
만수신동아아파트 앞 마을버스 정류장, 2022ⓒ유광식
만부마을의 단층집(하얀 고양이가 경비를 서고 있다), 2022ⓒ유광식
만부마을의 단층집(하얀 고양이가 경비를 서고 있다), 2022ⓒ유광식

 

여전히 남아 있는 주택들은 오래전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새롭게 정비 받은 모양이다. 산 중턱의 마을이라 소외될 수도 있었지만 비교적 잘 관리되는 인상을 받았다. 정돈된 골목과 주차시설, 정원, 매끈한 페인트칠 등이 지금의 생활을 다독이고 있었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는 택배 차량의 뒷모습이 아슬아슬했지만 끄떡없었다. 간간이 낯선 이를 안내하는 고양이도 있고 평상에서 강아지와 함께 여름을 나고 계신 어르신 부부, 동네 카페를 찾은 젊은이들도 보였다. 만수동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너나 할 것 없이 산 아래 다정한 마을에서 함께 장수하기에 딱 어울리는 곳이다. 

 

마을의 꼭대기에 위치한 만부경로당(리조트 부럽지 않은 모습이다), 2022ⓒ유광식
마을의 꼭대기에 위치한 만부경로당(리조트 부럽지 않은 모습이다), 2022ⓒ유광식
빈 터를 활용해 조성한 만부마을 정원(놀러와~), 2022ⓒ유광식
빈 터를 활용해 조성한 만부마을 정원(놀러와~), 2022ⓒ유광식

 

동네를 거니는데 통행을 위한 길목이 좁긴 했다. 인도도 어떤 곳은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 차차 개선되리라 믿는다. 향촌지구라는 말에는 고향, 마을이라는 의미가 심어져 있다. 어디에나 스스로 고향을 짓는 행위야말로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다. 이주도 본능이고 정착도 본능일진대 그 파도가 거세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장소보다도 메밀 국숫집이 눈에 많이 띄던 만수동! 더운 여름 시원한 개천과 당도 높은 과일이 기다리던 내 고향처럼, 다정다감한 마음으로 첨벙첨벙 헤엄치고 싶은 마을로 피어나길 바란다.

 

창 너머 요상한 물품들, 2022ⓒ유광식
창 너머 요상한 물품들, 2022ⓒ유광식
서산 너머로 기우는 태양과 마을 정원의 코스모스, 2022ⓒ유광식
서산 너머로 기우는 태양과 마을 정원의 코스모스, 2022ⓒ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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