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남은 흑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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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남은 흑백 사진
  • 송자
  • 승인 2022.08.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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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송자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인문학 아카데미

“명자는 잘 지내는지 모르겠구먼.”

“명자가 누군데?”

“있잖아, 오학년 때 전학 온 여선생님의 딸. 우리와 함께 졸업하자마자 곧 엄마 따라 갔지. 그 애 엄마가 전근을 갔잖아.” 친구는 그 애가 첫사랑이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짝사랑인데 나는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모임이 있다. 시골의 두메산골 초등학교 졸업생들이다. 나는 ‘강소천 선생의 꿈을 찍는 사진관과 황순원 선생의 소나기.’를 좋아한다. 어릴 때는 책이 없어서 못 읽었지만 성인이 되고부터는 여러 번 읽었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문득 동화책 몇 권을 빌려 집에 왔다. 책을 읽으면서 지난 추억을 되살리는 시간이 되었다. 부모님, 친척, 친구들……. 떠오르는 사람들 중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헤어진 지 이미 오래된 얼굴들이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들은 최근의 모습이 아니라 어린 시절에 본 모습이다.

내 친구가 이야기한 명자 역시 육학년 때의 모습 그대로 내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수줍음에 말을 나눌 기회가 적었지만 남다른 추억을 가지고 있다. 우리학교는 가을이면 해마다 글짓기 대회가 있었다. 곧 이어 군내 글짓기대회가 이어졌다. 나는 일기를 꾸준히 쓴다는 이유 하나로 글짓기 대표로 선발되었다. 명자와 나는 대회를 앞두고 몇 주간 학교에 남아 글쓰기 지도를 받았다.

모임에서 만난 친구에게 “나 육학년 때 군내 글짓기 나간 거 알고 있니?”물으니 “자식,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 일 번 아니면 이 번이었잖아.”하고 대꾸한다. 작은 내 키만 기억난다는 말이다.

친구들의 머릿속에는 나와 공유하는 추억의 장면이 없다. 그렇다. 나는 초등학교 육년 내내 키가 작아 땅꼬마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내가 키가 작고 상고머리를 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때문에 친구들은 내가 지금까지 간직해온 비밀 역시 모르고 있다.

대회에 참가하기 전날 비가 내렸다. 가을비 치고는 꽤 많이 내렸다. 논에는 잘 익은 벼이삭이 바람과 빗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군데군데 쓰러졌다. 대회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이다. 인솔 선생님은 우리와 함께하지 못했다. 부근의 학교에 볼일이 있어 서로 헤어져야 했다. 처음에는 명자와 서먹해서 거리를 두었지만 먼 길을 걷다보니 자연스레 가까워지고 말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학교 앞 큰 개울에 이르렀다. 건너려니 징검다리가 떠내려가 신을 벗어야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엉덩이를 내밀었다. 사양 할 줄 알았던 내 마음과는 달리 명자는 뿌리치지 않고 등에 업혔다. 내를 건너자 명자는 바위 돌에 앉아 쉬어가자고 했다. 내가 세찬 물살에 발을 딛는 모습이 힘들어보였던 모양이다. “내가 발을 닦아줄까?” 대답을 하기도 전에 명자의 손이 내 발바닥을 간질였다.

내가 지금 떠올린 얼굴은 그 단발머리의 소녀다. 동화책 꿈을 찍는 사진관의 주인공은 여자애와 동갑이지만 떠올리는 모습은 지금의 나이와 여덟 살 차이다. 나는 지금 어떨까, 나는 육십여 년의 차이를 둔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명자의 지금 모습은 전혀 그릴 수가 없다. 내가 할아버지라는 말을 듣는 것처럼 살아있다면 그도 할머니 소리를 듣고 있겠다. 하지만 기억 속에는 늘 그 때의 앳된 모습이다.

남자들의 모임이고 보니 여자 동창 이야기만 나오면 너도나도 지지 않으려한다. 추억담을 꺼내놓는 통에 한동안 주위가 시끄럽다. 그들도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에 여러 차례 기별했지만 두 명만 참석했다. 그 마저도 한 번으로 끝났다. 남자들 사이에 둘러싸이다보니 왠지 어색하다고 했다. 이제는 볼일 다 봤는데 뭐가 어색하냐고 했지만 쌀알에 뉘가 섞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 마음에 두었던 여자애들을 입에 올렸다. “순옥이, 말도마라. 내 애인이었잖아.” “순옥이가 뭐여, 형수님한테. 나와 가까이 지냈던 것은 학교가 다 아는 사실인디.” “지금 어디 사는지 알고 하는 소리여?” “하늘에 살고 있지.” “어떻게 알았어.” 두 친구가 잠시 입씨름을 했다.

우리는 졸업을 앞둔 이른 봄 기념사진을 찍었다. 흑백 사진이다. 기억을 떠올렸지만 각자 보관하고 있다는 확신은 서지 않아 집에 돌아가면 찾아보기로 했다. 다음 모임에서 사진을 가져온 사람은 없었다. 고향에 사는 친구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학교에 문의했지만 오래돼서 보관이 되어있지 않다고 했다. 여러 명중에 보관하고 있는 친구가 없다니 다소 허탈한 마음이다.

그 다음 모임에 한 친구가 한 장의 추억을 들고왔다. 우리들의 어린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 여동생의 앨범에서 사진을 발견 했다고 했다. 한 장씩 손에 들려졌다. 흐릿한 흑백의 복사물이다.

“알아보겠어? 알아보겠어.” 각자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잊었던 친구의 얼굴을 찾는 동안 기억나지 않는 이름도 알게 되었다. 별을 좋아해서 일찍 별이 된 종갑이, 말없이 떠나 잠시 가슴앓이 하게 했던 단발머리 명자가 내 앞줄에 있다. 나는 머리가 백발인 채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들은 아직도 소년이고 소녀다. 나는 꿈의 사진관을 운영하지는 않지만 가끔 꿈을 찍는 사진관으로 향한다.

사진출처 = 다음 카페
사진출처 = 다음 카페(흑백사진 시절의 소풍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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