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banjiha)란 한국말이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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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banjiha)란 한국말이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지 않으려면
  • 조항필
  • 승인 2022.08.1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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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칼럼]
조항필 / 감정평가사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화장실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화장실

지난 8일 서울 등 수도권에 쏟아진 115년만의 기록적인 강수량으로 20여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실종자를 발생시켰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21세기 서울 한복판 신림동 반지하주택에 거주하던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와 그의 어머니, 이모가 고립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020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묘사했던 일이 지난 8일 서울에서 비극적으로 현실화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62년 제정된 건축법에서는 주택의 거실을 지층에 설치하는 것을 금지해 주택의 지하설치를 사실상 금지했으나, 남북관계의 긴장이 심화되었던 1970년대 건축법을 개정, '주택 지하층 설치 의무화' 규정을 도입하여, '지하대피소'를 설치하도록 강제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형성된 지하공간은 도심의 주택난이 심화되자 자연스럽게 싼값의 주거지로 발전하였고, 결국 1975년에는 지하층의 주택전용을 허용하였다. 1984년에는 다세대주택과 단독주택에서 지하층의 지상노출높이를 1/3에서 1/2로 완화하고 반지하주택을 합법화하자, 다수의 반지하주택이 양산되었다.

2020년 국회입법조사처의 2018년 인구주택총조사에 기반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반지하 주택은 총 379,605가구로 전체가구수의 1.9%이고, 이중 서울은 222,706가구, 경기는118,787가구, 인천은 22,990가구로, 서울 등 수도권에 반지하주택의 96%가 몰려있다. 서울은 전체가구수 대비 5.8%, 인천은 2.1%가 반지하에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반지하 거주자의 85% 정도가 전세 및 월세였고, 주택면적별로는 40㎡이하 50.5%, 40~50㎡이하 31.4% 순이며, 가구원수별로는 1인 가구 38.9%, 4인 이상 가구 28.9% 순으로 4인 가구의 비중도 상당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반지하주택 거주자는 기초생활수급가구 29.4%, 소득하위가구 15.5%, 장애인이 있는 가구 15.5%, 청년가구 12.3% 등 정책배려 대상가구가 주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보고서는 2020년 영화 '기생충' 이후 반지하 주택의 사회적 관심이 생기면서 국회에서 보고서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도 반지하주택 거주의 실태를 통해, 지상의 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하기 때문에 주거취약계층이 주로 거주하고 있으며, 이 해결 대안으로 장기적으로는 공공임대주택 공급, 저리의 전월세 자금 지원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폭우 침수로 일가족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
폭우 침수로 일가족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 (사진=연합뉴스)

이번 서울의 집중호우로 인한 반지하주택 일가족의 참사로 다시 반지하주택의 문제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퇴근길에 침수를 보며 그대로 퇴근하는 대통령이나, 서울시의 반지하주택 일몰제, 지하층 주택의 건축허가불허 등의 기사를 보면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세대 주택 등 신축에서 주차장 의무규제 등으로 필로티 구조의 주차장이 일반화되면서 더 이상 반지하 주택은 거의 신축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반지하주택의 건축 불허가를 대책으로 생각하는 발상은 무엇이고, 일몰제의 현실성은 생각해 본 것인지 모르겠다.

필자는 영화 '기생충'에 나왔던 계단으로 올라가는 반지하주택의 화장실모습을 보면서 필자의 부모님이 IMF사태로 어려워져 3~4년간 반지하주택에서 겪었던 기억이 소환되었었다. 비가 많이 올라치면 혹시 역류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어머님의 걱정과 당시 부모님 집에 가면 맡을 수 있었던 쿵큼한 곰팡이 냄새까지 가난과 궁핍함의 냄새로 기억된다. 반지하의 경험이 없다면 역류하는 화장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영화 '기생충‘에서 역류하는 화장실의 모습을 많은 사람은 비현실적으로 보았을지 모르지만, 반지하주택 특히 다가구주택의 반지하주택에 살아 봤던 사람들은 역류하는 화장실의 현실성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반지하주거의 본질은 사회적 불평등과 사회취약계층의 존재이고, 그 해결은 저렴한 장기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이다. 2020년 12월 인천연구원은 ‘2030년 인천주거종합계획 연구용역’에서 ‘2030 인천도시기본계획’의 계획지표에 따라 공공임대주택 비율 10.5%를 목표로 산정할 경우, 도시개발 및 도시정비사업등에서 예정된 물량을 제외하고도 2030년까지 공공임대주택 63,680호를 추가 공급해야 목표수준인 15만호를 달성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간 인천의 재개발등 도시정비사업으로 70~80년대 지어졌던 반지하주택도 점차 사라질 것이지만 아직도 100가구 중 2가구는 반지하에 사는 상황이고, 그 거주민은 주로 사회취약계층이다. 2030년까지 목표량을 달성을 기대해 본다.

우리나라는 1988년 당시만 해도 장기공공임대주택이 전혀 없었으나, 2019년 기준 공공임대주택수가 166만여호로 전체 주택수 대비 약 9.2%로 30년 만에 비약적인 성장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서구 유럽선진국들(프랑스 17.4%, 영국 18.2%, 네덜란드 33%)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3년전 영화 ‘기생충’이 세계의 주목을 받았을 때, 영국 BBC는 ‘서울의 반지하(banjiha)에 사는 진짜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는 허구이지만, 반지하는 그렇지 않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는 수천명의 사람이 여기에 산다”라고 소개하면서 ‘반지하’(banjiha)라는 말을 세계에 알렸다.

옥스퍼드 사전에 ‘반지하’(banjiha)라는 한국말이 등재되지 않으려면 서울시 같이 실효성 없는 반지하주택의 건축 불허가 대안이 아니라,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이어야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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