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상징, 상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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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상징, 상사화
  • 전갑남 객원기자
  • 승인 2022.08.21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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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잎은 꽃을, 꽃은 잎을 그리워하는

올 장마는 유난스럽네요. 한때 장마가 끝났다고 했는데, 8월 중순까지 이어지며 비 오는 날이 많습니다. 전국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이곳저곳 큰 생채기를 남기고 지겹게도 내렸습니다. 하도 비가 내려 농작물 자라는 것도 예년에 비해 시원찮다고 합니다.

잦은 비에 신나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들풀. 물기 머금은 땅에 풀은 겁이 날 정도로 무성하게 자랍니다.

여름꽃 상사화도 비 내리는 게 좋은가 봅니다. 비를 기다렸다는 듯, 어느 날 꽃대가 고개를 쑤욱 내밀고 꽃을 피웠습니다.

수선화과에 속하는 상사화는 알뿌리로 겨울을 견뎌냅니다. 봄엔 난초처럼 잎줄기를 내밀고 여러 날 자기 존재를 알려주고선 시나브로 말라 흔적 없이 사라지지요. 그러다 소리소문없이 올라온 꽃대에서 연분홍색으로 예쁜 꽃을 피웁니다.

 

수선화과에 속하는 상사화의 아름다운 자태.

상사화는 한 몸에서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잎이 있을 땐 꽃이 없고, 꽃이 필 땐 잎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잎은 꽃을 생각하고 꽃은 잎을 생각한다 하여 '상사화'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상사(相思)'라는 꽃이름에서 어떤 애틋한 마음 같은 게 느껴지는 꽃입니다.

 

상사화는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여 그리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랍니다.

지방에 따라서는 상사화를 개난초라고도 부릅니다. 상사화는 한여름 꽃줄기가 길게 자라 그 끝에 4~8개의 꽃이 산형화서(繖形花序)를 이루며 핍니다. 연한 홍자색 꽃은 화사합니다. 꽃덮이는 밑 부분이 통 모양으로 6개로 갈라져서 비스듬히 퍼지는데, 약간 젖혀진 모습으로 멋을 부립니다.

상사화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노란빛이 도는 흰색의 위도상사화, 화피 가장자리가 파도처럼 구불거리는 진노랑상사화, 연한 주황색 꽃이 피는 제주상사화 등이 알려졌습니다.

초가을에 피는 강렬한 붉은색의 꽃무릇도 상사화와 비슷한 습성을 가졌습니다. 사람 중에는 꽃무릇을 상사화라 혼동하여 부릅니다. 꽃무릇은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를 비롯하여 여러 사찰에서 흐드러지게 피어 가을을 아름답게 수놓습니다.

상사화에는 슬픈 전설 하나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옛날 금슬 좋은 부부에게 늦둥이로 딸이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불행하게도 병환 중에 일찍 세상을 뜨게 되고, 효심 깊은 딸은 어는 절에서 아버지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빌며 백일동안 탑돌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절의 젊은 수행 스님이 탑돌이를 하는 딸을 연모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중의 신분에서 차마 자기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애만 태웠지요.

탑돌이가 끝난 여인이 돌아가자 스님은 그리움에 지쳐 시름시름 앓고 그만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상사병이 걸렸던 모양입니다. 이듬해 봄, 스님 무덤가에 난초 같은 것이 올라오고, 잎이 진 곳에서 꽃대가 솟아 예쁜 꽃을 피웠습니다.

사람들은 예사롭지 않게 핀 꽃을 보고 사랑하는 임을 향한 그리움에서 피어난 꽃이라 해서 상사화라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어찌 되었건 상사화는 잎 없이도 꽃을 피워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는 그리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학처럼 고고하게 고개를 길게 늘이고 피어난 꽃이 사랑스럽습니다.

그리움의 상징이라는 상사화가 질 때쯤이면 길고 긴 여름도 꼬리를 내리고 풀벌레 소리와 함께 하늘 높은 가을이 성큼 다가올 것입니다.

연분홍색으로 여름날 화사함을 뽐내는 상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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