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노랑이 세상을 물들이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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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노랑이 세상을 물들이는 계절
  • 고진이
  • 승인 2022.09.06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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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칼럼](5) 9월의 색, 노랑

어느 색에도 잘 스며드는 노란색은 혼탁해지기도 쉽지만 다른 색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색이다. 종종 아이들 수업을 하다 보면 노란색은 어떻게 만드냐는 질문을 받는다. 섞어서 만들 수 없는 순수한 색의 3원색 중 하나인 노란색은 만들 수 없는 색이라고 답해준다. 대신 다른 색을 근사하게 변신시켜주는 존재라고 알려주곤 한다. 대지에 스미는 햇빛을 연상하게 하는 풍요로운 색, 한가위를 지내는 9월의 색은 노란색이다.

(그림1)고진이_In the prism 연작, oil on canvas, 각 33.2 x 24cm, 2022
(그림1)고진이_In the prism 연작, oil on canvas, 각 33.2 x 24cm, 2022

나의 작품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색은 노란색이다. 몽환적인 공간감을 표현하다 보니 아득한 빛을 표현하기 위해 하얀색과 함께 노란색이 많이 쓰인다. 올해 빛의 스펙트럼을 표현하는 ‘In the prism'이라는 6점의 작품을 연작했는데, 사실 그 작품들을 연결해주는 중심에는 노란색이 있다. (그림1) 빛에 대한 작품이다 보니 빠질 수가 없기도 하고 6점의 작품들에 아주 조금이라도 노란색을 넣어 화면을 따뜻하게 조명했다. 심지어 전반적으로 푸른색과 보라색이 쓰인 작품에도 공간감을 만드는 역할로써 미세한 노랑을 썼다.

사실 흰색만 있어도 밝은 명도를 표현할 수 있지만 나는 노란색을 포기할 수가 없다. 아마도 내게 있어 노란색은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의 마음을 잃지 않게 하는 등대와 같은 존재다.

그러니 내면이 색으로 표현되는 그림에서 노랑을 놓지 못하는 것 같다.

 

고진이_환희(歡喜), oil on canvas, 130 x 194 cm, 2015
(그림2)고진이_환희(歡喜), oil on canvas, 130 x 194 cm, 2015

2015년에 완성한 작품 ‘환희(歡喜)’ 는 기쁠 ‘환’에 기쁠 ‘희’ 라는 제목의 뜻처럼 기쁨으로 가득 찬 작품이다. (그림2) 노란색으로 가득한 이 작품은 온통 황금으로 물든 공간에서 비롯되었다. 마음도 몸도 무척 지친 날 색이 모두 사라진 듯 힘없이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달리던 버스가 터널을 빠져나갈 즈음 지는 태양의 강한 빛과 마주했다. 나는 노을빛이 그렇게 강열 한지 처음 알았다. 그 순간 공간은 황금으로 물들었고 나는 환희를 느꼈다. 무슨 말보다 거대한 위로를 노란 금빛에서 느꼈고 그 기억을 작업으로 옮겼다. 찰나를 영원히 보존하고 싶었다. 이 작품을 관객이 직접 마주했을 때 환희로 가득한 공간을 느꼈으면 해서 꽤 큰 사이즈로 제작했다. 하지만 직접 작품을 볼 기회가 많지 않기에 이번 칼럼을 통해 찬란한 황금빛을 나눠보고자 한다.

 

(그림3)고진이_ 그림책 [섭순] 중 한 장면
(그림3)고진이_ 그림책 [섭순] 중 한 장면

이런 노랑이 세상을 물들이는 계절이 다가왔다. 아직 여름이 떠날 채비를 다 마치지 않은 것 같은데 명절이 목전이다. 봄에 벚꽃이 스치듯 가을에는 풍요로운 노랑이 논과 나무에 일렁인다. 심지어 한가위에 뜨는 대보름달 역시 탐스러운 노란색이 아닌가. 그 보름달에 소원을 비는 우리네 풍습은 시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별에 마음을 전하다니 참 예쁘지 않나. 별 이야기가 나왔으니 좀 더 하자면, 우주의 별은 소멸하기 전 가장 환하게 빛나며 질량을 쏟아낸다고 한다. 나풀나풀 물든 잎을 떨구는 나무의 모습이 마치, 지는 별처럼 화려한 마지막 장을 내리는 모습 같다. 가을의 이 장관은 매년 한결같아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그런 가을을 기념하며 길에 쌓인 낙엽 중 맘에 드는 노랑을 찾곤 하는데 2020년에 출간한 그림책 ‘섭순’에도 가을에 은행잎을 줍는 장면이 나온다. (그림3) 

이 행동은 가을을 맞이하는 습관이 되어 지금 글을 쓰는 작업실 벽에도 작년에 주운 은행잎 하나가 붙어있다.

한가위가 지나 찬 바람이 불어오면 세상은 노란빛으로, 주황빛으로 물들 것이다.

올여름 폭염과 생각지 못한 폭우를 겪으며 일정한 자연의 변화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안정감을 주어왔는지 다시금 느꼈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가을이 더더욱 기다려진다.

이 아름다운 가을이 오래오래 우리와 함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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