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볕에 익어가는 과실들처럼 - 도화역(북측)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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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볕에 익어가는 과실들처럼 - 도화역(북측) 일대
  • 유광식
  • 승인 2022.09.19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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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 일기]
(88) 도화역 북측 대화초등학교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도화역 북측 신태양 아파트, 2022ⓒ유광식
도화역 북측 신태양 아파트, 2022ⓒ유광식

 

예년보다 이른 추석 명절을 보낸 후에 날씨가 조금 밉살스럽다. 피해를 안기는 태풍의 소식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름 요놈이 잊히기 싫어서 발악하는지 고온다습한 날들이 오락가락한다. 그래도 우리 주변의 생활은 맛 따라 잘 걷고 있는 듯 하다. 장 보러 간 로컬푸드 매장에는 제철 포도의 시식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생산자와 생산지, 가격이 적힌 네 곳의 포도는 장 보러 나온 분들의 심판을 맞이했다. 인근에서 성장한 네 선수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김포 둘, 가현산 하나, 강화에서 온 포도 모두 기본기 튼튼한 꿀맛이었다. 아홉 송이가 들어간 3kg 한 상자를 샀지만 결국 선택이 가격에 기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가현산 포도 선수의 생산자님과의 대화에 조금 머쓱해지기도 했다. 한동안 포도에 엉킨 생각과 더불어 살 것 같다. 포도알 바퀴를 주렁주렁 단 경인선 열차에 몸을 싣고 도화역 부근으로 나가 보았다. 

 

아파트 화단에서 자라고 있는 밤나무(공주에서 상경?), 2022ⓒ유광식
아파트 화단에서 자라고 있는 밤나무(공주에서 상경?), 2022ⓒ유광식
벌어진 모양이 특이한 석류나무 열매, 2022ⓒ유광식
벌어진 모양이 특이한 석류나무 열매, 2022ⓒ유광식

 

도화역은 경인선에서 가장 나중에 개통(2001년)된 역이다. 인근의 선인학원과 수출 공단의 영향으로 도화동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학생과 노동자, 피난민, 이주민이 많이 살았을 것이다. 최근 도화지구 개발로 차도를 막고 거리를 만들면서 도화오거리는 도화사거리가 되었고, 이 지역은 좀 더 부푼 주거와 상업지구가 되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인근 재개발 여파로 여전히 가시밭과도 같은 장소이다. 옛 간판들이 정겹고 집만큼 튼튼하게 버티고 지내는 주민들의 등장이 반갑기도 하지만 늘 걱정이 큰 부분은 매한가지 재개발일 것이다. 연식이 오래된 주택들을 보고 있자면 그 세월의 의미만큼이나 교체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1층, 2층, 3층, 5층 건물이 뒤섞여 질서 있게 한 시절을 돌리던, 마치 톱니가 되어 고장 없이 열심히 달려온 모습이다. 

 

경인선 도화역사, 2022ⓒ유광식
경인선 도화역사, 2022ⓒ유광식
도화역까지 분홍색 유도선이 그어져 있는 골목, 2022ⓒ유광식
도화역까지 분홍색 유도선이 그어져 있는 골목, 2022ⓒ유광식
난 느껴요~ 도화동 골목을, 2022ⓒ김주혜
난 느껴요~ 도화동 골목을, 2022ⓒ김주혜

 

앞으로 도화역 이용객들은 꾸준히 늘 것이다. 도화지구 개발과 더불어 주안, 제물포와 연계되어 수요가 커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도화역 북쪽 출구로 나온 뒤 이 골목 저 골목 천천히 걸어 보았다. 신태양 아파트가 많다. 신태양 왕국처럼 여기도 태양, 저기도 태양이다. 이런 이유를 달지 않더라도 오후의 볕이 잘 드는 곳이라 걷는 내내 가볍고 상쾌했다. 아파트 정원에는 누가 심었는지 모르게 과실 나무가 결실의 과정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태양이 아른거려서 그런지 빨간 색상이 눈에 많이 띈다. 지하에 고추 농장이라도 있는 것일까. 

 

헤어숍(뭔가 마트 냄새가 난다), 2022ⓒ유광식
헤어숍(뭔가 마트 냄새가 난다), 2022ⓒ유광식
대화초 건너편 해수 목욕탕, 2022ⓒ유광식
대화초 건너편 해수 목욕탕, 2022ⓒ유광식
꽃 팔고 화분 팔고 태양초 팔고?, 2022ⓒ유광식
꽃 팔고 화분 팔고 태양초 팔고?, 2022ⓒ유광식

 

길 하나 건너 도화종합시장을 들러 보았다. 옛 영광은 멀리 여행을 간 듯하다. 대형마트의 출현으로 동네 골목에 동굴처럼 남게 된 부분이 크겠지만 그 맥을 잇고 있는 게 신기하다. 물 빠진 호수처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가물어 보이기는 했다. 간판의 수를 세어가며 이전 명성의 상상과 현재의 안타까움을 느껴볼 수 있었다. 아마 마을이 재조성되면 잃어버릴 상상일 것이다. 그런 연유에서 충청도 기름집 간판을 보며 매끈한 시절 냄새를 좀더 간직하고 싶어진다. 고소한 냄새를 공간에 머무는 이유로 삼고 푸르른 날씨에 한 걸음 아껴 또 머물게 된다. 

 

도화종합시장 입구, 2022ⓒ유광식
도화종합시장 입구, 2022ⓒ유광식
시장 내부(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다), 2022ⓒ유광식
시장 내부(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다), 2022ⓒ유광식

 

지금이야 건설사 의도대로 주택 명이 지어지지만 7~80년대엔 한 가정의 행복과 아이들의 성장, 화합을 위한 이름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장미, 삼덕, 희망, 목화, 인성, 양지, 원앙 등 말이다. 정겹던 이름은 이제 잘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유치하다며 퇴짜를 맞고 있을 것이다. 급속도로 발전한 경제 상황 때문에 쉽게 흩어져버린 시절의 정서가 주택들의 이름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던 중 대화초등학교를 거쳐 길을 지나는데 아이들의 그림 석 장이 펜스에 걸려 있었다. 거주 환경은 깨끗해져 가는데 속마음은 다들 알다시피 사납기 그지없다. 여러 대의 감시 카메라와 경고판 등으로 꾸미는 어른들의 노력보다 아이들의 그림 석 장이 건네는 속삭임이 쓰레기 투기를 막아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순간 ‘심쿵!’ 했다. 

 

길냥이 무료 급식소(보살펴야 하는 건 결국 못된 인간이 아닐까), 2022ⓒ김주혜
길냥이 무료 급식소(보살펴야 하는 건 결국 못된 인간이 아닐까), 2022ⓒ김주혜
대화초 후문 울타리에 걸린 불법투기 금지 그림(효과가 있나 보다), 2022ⓒ유광식
대화초 후문 울타리에 걸린 불법투기 금지 그림(효과가 있나 보다), 2022ⓒ유광식

 

조금 있으면 온전한 축제의 계절로 들어선다. 아니 이미 시작되었다. 축제의 의미야 모두 알다시피 대화에 있다. 대면하여 시선을 나누고 양보와 합의에 따라 사회의 풍요를 짓고 나누는 것일 터이다. 이름이 심상치 않은 도화역이 머지않아 새 둥지, 새 태양의 장소로 거듭날 것인데, 공공과 민간을 떠나 고추라도 말리기 좋은 따뜻한 공간이었으면 싶다. 한편 최근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사건을 접하며 떡볶이 입맛 떨어지는 사건을 뛰어넘는 끔찍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뜬금없는 연결이지만 마을의 대문 격인 철도역과 함께 어우러진 모습으로 남아주길 바란다. 잦은 대화를 통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포근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정말 좋겠다.

 

태양에 잘 마른 고추처럼 한 세월 마른 점포 한 곳, 2022ⓒ유광식
태양에 잘 마른 고추처럼 한 세월 마른 점포 한 곳, 2022ⓒ유광식
해묵은 세월 잘 부탁드립니다, 2022ⓒ유광식
해묵은 세월 잘 부탁드립니다, 2022ⓒ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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