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인천의 남새밭, 남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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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인천의 남새밭, 남촌마을
  • 유광식
  • 승인 2022.10.0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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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 일기]
(89) 남동구 남촌동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남촌시장 간판이 보이는 주택가, 2022ⓒ유광식
남촌시장 간판이 보이는 주택가, 2022ⓒ유광식

 

대면 행사가 많아져서인지 이 가을을 환영하게 된다. 서로가 얼마만인지 모를 반가운 모습에 얼굴이 밝아져온다. 시장에는 보랏빛 햇고구마가 서서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우리 주변에는 따뜻한 일들이 조금씩 싹트는데, 조금 먼 곳의 세계는 가혹하기 그지없다. 작은 실수도 용납돼서는 안 될 러시아의 핵무기 카드 사용 이슈가 스멀스멀 나오니 말이다. 우주에서는 우주선 ‘다트’가 소행성에 충돌해 궤도를 수정했다. 지구 충돌 위협을 방어하는 실험이 이루어진, 공상과학소설 같은 이야기의 현실판이다.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도 없는 것의 움직임이 매일 번쩍이는 시대에 살고 있음에 놀랍다. 이 모두 평화의 목적이 크다지만 치르는 대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평온한 삶터 위에 어느 날 육중하게 놓인 고속도로와 농산물도매시장이 마을을 대표하는 남촌동으로 향했다. 

 

노루와 신용이 기거하는 옛 슈퍼 공간, 2022ⓒ유광식
노루와 신용이 기거하는 옛 슈퍼 공간, 2022ⓒ유광식
흔들 놀이기구와 뽑기가 있는 각종 생활 문구 판매점, 2022ⓒ김주혜
흔들 놀이기구와 뽑기가 있는 각종 생활 문구 판매점, 2022ⓒ김주혜

 

지난 1994년 개장 이래로 26년간 운영되던 구월농산물시장의 새 보금자리는 남촌동이다. 2020년 3월 20일 개장한 남촌농산물도매시장은 그 규모와 시설이 단연 으뜸이다. 대신 입구 앞 도림고등학교를 서창동으로 옮겨가게 한 아찔한 사태의 주범이기도 하다. 채소동, 과일동 등 쾌적한 공간에 전국 각지의 농산물(혹은 상품 박스)을 보는 것만으로도 풍성한 식탁을 그리게 된다. 도매시장을 가볍게 돌아본 후 남촌마을로 향하는 초입 길에 인천산림조합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는 나무 시장이 있어 묘목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작은 로컬푸드 직매장도 함께 있어 인근 생산자들의 벌꿀, 인삼, 과실 효소 등을 가깝게 구매할 수 있는 장터이기도 했다. 남촌동은 언뜻 보면 잘 보이지 않는 숨겨진 동네 같지만 발길 따라 점차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촌농산물도매시장 과일동, 2022ⓒ유광식
남촌농산물도매시장 과일동, 2022ⓒ유광식
남촌농산물도매시장 채소동, 2022ⓒ유광식
남촌농산물도매시장 채소동, 2022ⓒ유광식
남촌농산물도매시장 식자재동, 2022ⓒ유광식
남촌농산물도매시장 식자재동, 2022ⓒ유광식

 

남동구 남동IC 안쪽에 쏙 안겨 있는 남촌마을은 원래 사방이 농지와 밭이던 전형적인 농경지대였다. 그런데 국가산업단지 남동공단이 남으로 생기고, 물류 증가로 제2경인고속도로가 북으로 생겨 졸지에 포위되고 만다. 한동안 그렇게 지냈다고 한다. 공단 노동자들이 거주하기엔 적정한 거리였으나 인근 권역과의 왕래에는 어중간한 곳이었을 테다. 오래된 빌라와 좁은 도로가 말해 주는 분위기 속에 풍림아파트가 마을의 병풍이 되고 옛 시절이 곳곳에 배어 있다. 남촌초등학교가 유일한 학교다. 한편 남동구 명이 남촌동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살펴보게 된다. 

 

남촌마을 거리(이 동네 이쁘자~나!), 2022ⓒ유광식
남촌마을 거리(이 동네 이쁘자~나!), 2022ⓒ유광식
어사또가 사는 곳? (주안동에도 사또빌라가 있다), 2022ⓒ유광식
어사또가 사는 곳? (주안동에도 사또빌라가 있다), 2022ⓒ유광식

 

남촌마을은 야트막한 언덕배기 좁은 도로 사이로 집들이 빼곡하다. ‘남촌’이라는 이름 덕에 뭔가 따뜻하고 온정이 넘치는 곳으로 상상하게 되는데, 거리에서 마주한 어르신들의 노상 시장은 참으로 반갑고 정겨웠다. 대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따로 남촌시장 간판을 건 건물이 있었지만 마을엔 마을의 흐름이 있는지 시장답지 않고 그저 큰 상가 건물로 보였다. 노랗고 빨갛고 푸른빛을 쫓다 보면 남녘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듯이 걸음이 즐겁고 다채롭다. 마치 제비가 물고 온 박씨가 자라고 호박 넝쿨이 어우러진 곳처럼도 느껴진다. 이전에 도매시장 건설 시 빈 빌라들이 인부들의 임시 거처로 쓰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금도 빈 곳이 보이지만 커다란 두 나무 사이로 장미빌라의 위용이 나쁘지 않다. 

 

빌라 옆 남촌시장을 연 마을 어르신들, 2022ⓒ김주혜
빌라 옆 남촌시장을 연 마을 어르신들, 2022ⓒ김주혜
유독 많은 장미빌라(큰 나무가 인상적이다), 2022ⓒ유광식
유독 많은 장미빌라(큰 나무가 인상적이다), 2022ⓒ유광식

 

남동구의 중앙에 자리한 마을이지만 1990년대부터 고속도로 아랫마을이 된 후, 공단 인근 마을로 인식되어 조금은 어두운 시즌을 견뎌내었다. 차량 소음과 적막함이 교차 반복되는 기분도 들지만, 부업 물품을 수레에 끌고 가는 주민분과 카페에서 소곤대는 학생들, 간혹 스치는 외국인 노동자, 오래된 식당 안 걸걸한 목소리 등이 활발히 숨 쉬는 마을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고속도로 방음벽 아래에서 진행 중인 공영주차장 공사(늦은 게 아닌지)로 동네의 주차난이 해소되면 좋겠다. 

 

고속도로 옆 주민운동 공간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2022ⓒ유광식
고속도로 옆 주민운동 공간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2022ⓒ유광식
공영주차장 옆 공간에서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22ⓒ유광식
공영주차장 옆 공간에서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22ⓒ유광식

 

중심에서 코너로 몰린 듯도 한 남촌동이지만 도매시장의 등장과 함께 다시 볕 나는 마을로 존재감이 단단해져 갈 것이다. '국경의 밤'(1925)으로 유명한 김동환의 시에서 ‘남촌’은 과거 잃어버린 국토와 희망의 의지로 쓰였다. 산 너머 남촌에는 대체 누가 살길래 지금도 유효한 장소인 걸까?

 

남촌마을 맥가이버가 사는 집(수리~수리~), 2022ⓒ유광식  
남촌마을 맥가이버가 사는 집(수리~수리~), 2022ⓒ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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