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지게꾼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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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지게꾼에게서
  • 안태엽
  • 승인 2022.10.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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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안태엽 / 자유기고가

프랑스는 향수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향수는 발칸산맥에서 나오는 장미 향수다. 이 향기를 채취하는 시간대는 밤 12시부터~새벽 2시 사이라고 한다. 낮에 채취한 것보다 밤에 채취한 것이 최고의 향기를 발산하는데 40%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한다. 모두가 잠잘 때, 캄캄한 밤에 채취한 향기가 가장 진하고 좋다고 한다.

바이올린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재료는 로키산맥 해발 3,000m 높이에서 자라는 소나무다. 해발 3,000m 이상은 식물이 자랄 수 없는 수목의 한계선이다. 모진 비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꾸불꾸불하게 자란 나무로 장인이 명품을 만드는데, 이것이 가장 깨끗한 음을 내고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설악산 국립공원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관광객이나 등산객을 위해 산 중턱에 있는 매점이나 암자, 숙박업소에 각종 식자재와 생필품을 지게로 운반하는 직업 짐꾼들은 현재도 존재한다.

최근 체력 단련을 위해 지인들과 설악산을 오르다 우연히 짐꾼과 나란히 오르게 되었다. 그는 땀을 흘리며 매우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불현듯 뭔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와 함께 오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설악산 산양

그는 자기 키 보다 높고 자신의 몸무게 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매일 높은 바위길를 오르내린다. 지게꾼은 60kg~100kg 정도의 물건을 크기와 무게에 따라 균형을 잡고 짐을 싣는다. 운반의 원동력은 힘에 있지 않고 균형에 있다고 한다. 짐을 지고 산길을 제대로 오르기 위해서는 빠르거나 느린 것이 아닌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걸어야 한다. 달라진 공기 흐름에 높아진 고도를 실감한다. 발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숨은 가빠지고 호흡을 몰아쉰다.

짐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통증을 느끼며 땀을 비 오듯 흘린다. 부피가 큰 짐을 지고 산을 오르다 나무에 걸려 돌계단에서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짐의 무게까지 더해져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어떤 보호장치도 없이 80kg의 짐을 지고 수 킬로의 산길과 계단을 오르내린다. 그의 모습이 새삼 우리네 인생길을 생각하게 한다.

짐 없는 일반인도 오르기 힘든 기암절벽길, 수백 개의 철 계단을 지게로 나르지만 그도 계단에서는 한 손으로는 난간을 잡고 겨우 균형을 유지하며 올라간다. 옆에서 부는 바람이 몸의 중심을 흐트러뜨려 휘청거리게 해 위험했던 적도 몇 번 있었다고 한다.

오늘의 양식을 얻기 위해, 짐의 무게는 무거우나 일당을 받아 아내에게 갖다 줄 생각을 하면 힘이 생긴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같이하는 시간에 행복해한다. 행복한 시간은 또 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덤으로 설악산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신을 자연에 맡기는 법을 배웠다.

그는 제일 높이 사는 꽃들이 가장 낮게가장 늦게핀다는 자연의 이치를 알고 있다바위에 붙어 바람을 견디며 꽃을 피우기에 견뎌낸 시간만큼 꽃은 빛깔이 곱다고 그는 말한다. 고지에서 수백 년이 된 소나무는 바람에 크지 못하고 꾸부정한 모습으로 자신의 키를 낮추며 자란다는 것도 그는 알고 있다.

나의 주변에 연탄 배달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리어카로 배달할 때도 있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옛 건물은 500장의 연탄을 오층까지 지게로 몇 십 번을 지고 오르내린다. 때로는 삼~사층을 오르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럴 때 나는 혼자가 아니지, 내 안에 같이 일하고 있는 존재가 있지라는 생각으로 다시 힘을 내어 오층까지 기도하며 올라간단다. 땀과 연탄으로 그의 모습은 볼 품 없이 검게 얼룩졌지만 그것을 통해 삶에 순응하며 겸손함을 배운다

설악산 지게꾼을 떠올리며 상온보다 섭씨 영하 20도 냉동실에 보관한 참깨 씨가 다른 것보다 휠씬 더 많은 싹을 틔운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다. 매운 맛 나는 보리차를 몇 번씩 우려내야 깊은 맛이 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도 그가 떠올랐다. 그를 통해 생명 활동을 촉진시키는 모든 기쁨은 고통을 이긴 힘에서 나온다는 이치를 새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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