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건설 현장의 부끄러운 '한글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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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 건설 현장의 부끄러운 '한글 파괴'
  • 최림 객원기자
  • 승인 2022.10.09 15: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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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단상] 훼손되고 파괴된 한글이 뼈아프다.
한글날을 맞아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글한글아름답게 '한글맏뜻캠페인' 한글날만이라도 한글창제 당시의 '처음 먹은마음'을 지키자는 뜻이 보기 좋다.
한글날을 맞아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글한글아름답게 '한글맏뜻 캠페인'.  한글날을 맞아 한글창제 당시의 '처음 먹은마음'을 지키자는 뜻이 보기 좋다.

평소에는 조용하다가도 기념일만 되면 시끌벅적 기념 할 것에 관해 쏟아지는 기사와 뉴스들을 보며, 한편에서는 호들갑스럽다고도 한다.

그러나 기념일만이라도 기념 할그 무언가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자는 게 기념일 제정의 한 측면인 것을 생각해보면 불과 며칠 동안의 그런 떠들썩함이 일견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3.1절과 광복절을 즈음해서는 민족 해방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투사를 위해 머리 조아리고, 개천절이면 364일 동안 잊고 있던 단군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국군의 날에는 국군 장병 아저씨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109일 한글날을 맞아 기념 할 대상인 한글을 살펴보면 세종대왕이 눈살 찌푸릴 일이 너무 많아졌다. 톺아볼 필요도 없다. 일상에서 너무 쉽게 일그러진 한글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글 사용 실태

한글과 더불어 한국어가 가장 많이 훼손되는 곳은 건설현장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건설 현장은 일본 찌꺼기 언어와 국적 없는 콩글리시 용어들이 난무한다는 부정적 평가를 가장 많이 받아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구성원과 근로자의 오랜 기간 자정 노력으로 비교적 많이 고쳐졌다. 그리고 고쳐지고 있다.

일례로 행동과 성질이 거칠고 불량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일본말 도카타[土方, dokata]’에서 변형된 말인 노가다를 건설 현장 근로자 또는 넓은 의미에서 현장 근로자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게 됐다. 노가다꾼에서 막일꾼으로 그리고 이제는 건설 근로자로 바꿔 부르고 있다. 이렇듯 한국어가 차츰 제자리를 잡는 것에 비해 한글은 그렇지 못하다. 포털사이트 등 검색이 편한 이 시대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크게 잘못 될 것이 없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삼성 엔지니어링이 송도국제도시에 짓고 있는 삼성 바이오로직스 4공장 건설 현장에는 회사의 사세와는 어울리지 않게 부끄러운 한글 파괴가 인상을 절로 찌푸려지게 한다. ‘글로벌 기업이기에 한글에 약하다는 말도 안되는 비아냥을 들을 만 한 상황이다.

 

글로벌 기업은 한글에 약하다?

위 사진(이하 사진 독자 제보)에서 보듯 왼쪽 파란색 타원 안의 글은 눈을 의심하게 한다. ‘QR코드 여기로 찍어시고 동영을 보세요오타와 탈자 등은 물론 완벽한 비문으로 그 회사의 이름을 달고 나온 인쇄물이 맞나 싶다.

작성자는 아마도 현장 근로자들이 빨간색 화살표 부분의 QR코드 인식기로 각 부분의 QR코드를 인식시킨 뒤 재생되는 동영상으로 안전교육을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2021년 저 인쇄물로 숱한 조롱을 받은 뒤 나온 올해(오른쪽 사진) 같은 내용의 인쇄물은 그나마 많이 개선됐다.

다만 그마저도 뭔가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스캔하- + -- + -- + -- + -어요에서 높임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가 문장 앞뒤로 들어가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그냥 쉽게 ‘QR코드 스캔하고 신규 동영상 보세요라고 표현했다면 저 인쇄물이 근로자들의 낙서판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사진 속 저 글만으로 한글 파괴를 논했다면 지나친 지적이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 밖에도 안전에는 초보와 숙련공이 있을 수 없으니 모두 주의하자는 뜻의 안전에는 배테랑이 따로 없습니다.’ , ‘이동시 핸드폰 사용하면 넘어짐니다.’ 등의 문구는 단순한 실수라고 치부하기에는 상황이 심각하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배테랑베테랑(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 용례)’, ‘넘어짐니다넘어집니다가 옳은 표현이다. 저렇듯 잘못된 표현의 현수막과 게시물을 보는 현장 근로자들은 작성자가 아니어도 한글 사용자로서 얼굴이 붉어질 것 같다.

또 최근에는 사진에서 처럼 ‘-밞으셔서-’도 보인다. 물론 단순 오타로 보이지만 흔히 볼 수 없는 글자로 오히려 씁슬한 미소를 짓게 한다. 참고로 밞으로 시작하는 단어는 도움닫기의 북한어인 밞아달리기가 유일할 것이다.

 

- 576년전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마음을 더 헤아려 보았으면...

이렇게 한 건설 현장에 그것도 굴지의 대기업 현장에 오타와 비문 등이 넘쳐나는 것은 한글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문레기(문과+쓰레기)’,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자조적인 표현이 익숙할 만큼 문과 경시 · 비하 풍조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문제보다는 각 개인의 성의 문제라고 여겨진다.

한글 특히 어떤 형태로든 인쇄까지 진행되는 한글 문장의 경우 좀 더 진지하고 진중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내가 쓰고 있는, 내가 적고 있는 한글이 맞게 써지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는 정도의 기본적인 성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문화유산인 한글을 우리가 전 세계에 알리고 더욱더 노력해서 발전시키자는 교과서 같은 뻔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한글을 기념하는한글날이라도 말이다. 그런 건 한글·국어학자들을 응원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만 1년 중 한글날이 있는 이 즈음만이라도 세종대왕이 576년 전 한글을 창제한 마음을 더 헤아려 보았으면 한다. 한글을 마주함에 있어 최소한의 성의가 필요하다고 뼈저리게 느껴지는 현실이 한편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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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호 2022-10-09 21:36:05
조그만 업체들도 인쇄물 잘못 나오면 바꾸기 마련인데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이 실망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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