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돈대에서 망월돈대까지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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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돈대에서 망월돈대까지 걷기
  • 김시언
  • 승인 2022.10.1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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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이야기]
(3) 강화 돈대 가을길
망월평야에서 바라본 계룡돈대.
망월평야에서 바라본 계룡돈대.

한가을이다. 시적시적 별 생각 없이 걷고 싶은 계절이다. 어디를 걸을까. 시간을 많이 낼 수 없다면 도심 한복판도 좋고 동네 공원도 좋다. 그러다가 하루 정도 시간을 낼 수 있다면 강화는 어떨까.

이맘때 강화 벌판은 어디나 멋지다. 드넓은 평야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또 어느 곳은 콤바인이 들어서서 추수하고, 또 어디는 추수를 끝냈을 것이다. 강화는 ‘산의 섬’이라고 불릴 만큼 산이 많다. 평야를 둘러싸고 가을 산이 어깨를 겯고 있는 모습도 장관이다.

 

한쪽은 바다, 한쪽은 망월평야

필자는 계룡돈대에서 망월돈대를 걷기 좋은 코스로 잡았다. 집에서도 가깝거니와 추수가 다 끝나기 전에 너른 들판을 꼭 보고 싶었다. 특히 이 길은 가을바다, 가을산, 가을섬, 가을들판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다른 곳을 걷더라도 이맘때는 무조건 평야가 보이는 길을 걸어야 한다. 계룡돈대에서 망월돈대는 거리가 약 2킬로미터쯤 되고 천천히 걸으면 50분 정도 걸린다. 도시에서 보기 힘든 흙길이다.

어디에서 시작할까. 계룡돈대에서 시작해도 좋고, 망월돈대에서 시작해도 좋다. 차를 세운 곳에서 출발하면 된다. 이 길은 아주 멋지다. 한쪽은 바다를 끼고 한쪽은 너른 망월평야를 보며 걷는다. 바다는 밀물이거나 썰물일 테고 어쩌면 정조일지도 모르겠다. 바다 건너에는 석모도와 교동도가 보인다.

길 왼쪽으로 석모도와 교동도가 있다.
길 왼쪽으로 석모도와 교동도가 있다.

 

돈대 축조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

해안길을 걷기 전에 계룡돈대에 오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주차하고서 소나무 몇 그루가 세워진 작은 언덕길을 오르면 그곳에 계룡돈대가 있다. 전에는 소나무가 더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태풍 링링으로 소나무가 부러져 수가 줄었다.

계룡돈대는 내가면 황청리 282번지에 있고,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2호다. 숙종 5년(1679) 강화도에 처음 쌓았던 48개 돈대 중 하나다. 계룡돈대 둘레는 약 108미터이고 긴 사각형 모양이다. 돈대는 해안 중간 언덕에 있으며, 구릉의 경사면을 석축으로 쌓아서 기초를 마련하고 그 위에 돈대를 지었다.

계룡돈대에서 눈여겨볼 것은 돈대 동쪽 벽 아래쪽에, 돌에 새겨 놓은 글이다. ‘康熙十八年軍威禦營築造’. 이는 ‘강희 18년(1679) 4월 모일에 경상도 군위현 어영군이 축조했다’는 뜻이다. 당시에 승군 8,000여 명을 동원하고도 공사가 길어지자 어영군을 동원했는데, 이때 계룡돈대 축성에 군위현 어영군이 투입된 것이다. 이는 당시에 돈대를 축조한 집단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다.

계룡돈대 내부.
계룡돈대 내부.

 

가을 한복판을 걷다

계룡돈대에서 망월돈대에 이르는 해안가 길은 그야말로 가을이 지천이다. 해국이 자잘하니 노오랗게 피어났고 박주가리는 씨앗을 퍼트리기 직전이다. 예전에는 도장밥으로도 쓰였다는 박주가리는 엄청난 씨앗을 품은 채 곧 날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씨앗이 터지면 어디까지 날아갈 것인지, 문득 저만치 앞에 보이는 교동대교 그 너머에 보이는 북한 땅이 보였다. 갈대와 억새는 햇볕에 은빛으로 부서지면서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내맡긴 채 흔들렸다. 물들기 시작한 풀들이 길가에 포진해 있었다. 엉겅퀴 씨앗은 터지기 시작했고, 회백로는 물 빠진 바닷가에 발을 담그고 서 있었다. 물 빠진 갯벌에 먹이가 있는 모양이다. 갯벌의 꽃, 함초는 갯벌 가장자리에서 피어나 붉다.

필자가 걷기 시작한 때는 물이 빠진 뒤였다. 바닷물과 갯벌에 저녁놀이 앉아 벌겋게 물들 무렵이었다. 걷는 길은 그야말로 풀잎이 서걱거리는 길,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길이었다. 길 하나로, 해안가 길을 걸으면서 가을 한복판에 들어선 것이다. 이미 추수한 논에는 마시멜로 모양을 한 짚단이 군데군데 뭉텅이로 세워져 있다. 저만치 교동대교가 보이고, 석모도와 교동도가 보인다. 석모수로와 망월평야를 동시에 보면서 걷는 길은 가을 한복판으로 성큼 걸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망월돈대는 내가천 하구에 위치해 있다.
망월돈대는 내가천 하구에 위치해 있다.

 

저무는 햇볕을 받아 더 아름다운 길

이 길은 강화나들길 16코스이다. 어차피 걷기로 한 길이니 되도록 잡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계획도 세울 필요가 없다. 심지어 저녁에 무엇을 먹어야 할지도 잊게 되는 길이었다.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걷기도 하고, 몸을 틀어 바다를 바다보기도 하고 너른 평야를 바라보기도 하면서 걸었다. 억새와 갈대가 섞인 길에서는 정글을 건너듯 풀숲을 헤쳐나갔다. 추천해도 욕먹지 않을 만한 길이다. 얼마쯤 걸었을까, 갑자기 찬 기운이 훅 끼친다.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조용히 물결치며 들어오는 바닷물이 나란히 갯벌을 적시고 있었다. 들어오는 물에 몸을 맡긴 오리떼도 보인다.

“안녕하세요?”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일행과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이들은 아마 창후포구나 망월돈대에서 걷기 시작한 사람들일 것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좁은 길에서 인사를 나누며 길을 비켜주었다. 폭신한 흙길에서 건네는 인사는 훨씬 더 부드럽고 따뜻하다. 걸을 때마다 갈대숲에서는 참새떼들이 포르르 날아올랐다.

계룡돈대에서 망월돈대까지 걷는 길은 같은 풍경 같아도 도무지 지루할 새가 없다. 풀 한 포기 새 한 마리에 눈이 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망월돈대를 향해 걸을수록 교동대교가 가까이 보이고 창후포구에 정박한 선박이 정겨워 보인다. 별립산도 별명답게 따로 우뚝 서 있다.

망월돈대로 꺾어지는 길에서는 내가천을 만난다. 심하게 꺾인 U자 모양을 돌면 망월돈대가 나온다. 망월돈대 앞으로 펼쳐진 넓고 붉은 함초밭도 장관이다. 갯벌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져 환상적이다. 이때 저무는 햇볕을 받아 더 아름답다.

걷다 보면 멀리 별립산도 보인다.
걷다 보면 멀리 별립산도 보인다.

 

평평한 땅에 지어진 대표적인 돈대

마침내 망월돈대에 도착했다. 망월돈대는 하점면 망월3리 2107번지에 있으며, 내가천 하구에 있다. 강화 본섬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내가저수지(고려저수지)에서 흐르는 물이 서쪽으로 흘러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다. 이 하구가 밀물 때는 바닷물이 뭍으로 들어오는 수로의 입구가 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말올포라는 포구가 있었고, 돈대는 수로의 방어 임무를 수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망월돈대는 직사각형 모양이고, 둘레는 124미터다. 또 낙성돈대와 장자평돈대 등과 함께 하천 하구 평평한 땅에 축조한 대표적인 돈대다. 하천변에 쌓은 돈대는 석재로 바닥을 다진 뒤에 축성을 했기 때문에 공사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 특히 돌을 옮길 때는 갯벌을 지나야 해서 물때를 맞춰야 해서 공사가 길어지기도 했다. 갯벌에서는 걷고도 힘든데 무거운 돌까지 나르며 돈대를 쌓아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망월평야는 강화에서 가장 넓은 평야다. 이 마을은 망월리이고, ‘망월’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달 보기에 좋은’ 곳이다. 땅이 평평해 가로막는 데가 없어 달 보기가 좋다. 망월평야는 여몽항쟁 이후 고려 공민왕 때 생겼다. 갯골을 흙과 돌로 막아 제방을 쌓아 조수의 출입을 막았다. 간척사업을 한 것이다.

망월돈대에서 해 저무는 광경을 바라보면 참으로 황홀하다. 사방이 탁 트인 데다 앞쪽에는 갯벌과 함초, 섬이 있고 그 뒤로 해가 있기 때문이다. 해를 보고 계룡돈대로 돌아갈 때는 논길로 가는 것도 좋다. 곧 추수가 시작될 논과 논 사이에 난 길로 걸으면 사람마저 익을 것 같다. 고개 숙인 벼처럼, 자연과 역사가 스며든 길을 걸으면서 저절로 편안해지고 넉넉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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