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기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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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기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면
  • 박병상
  • 승인 2022.10.2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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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어릴 적 주안에 있던 집은 참중나무에 둘러싸였다. 저녁이면 참중나무에 몰려온 참새들이 아침을 깨웠다. 참새들은 도랑에 가까운 작은 개천 너머의 교회를 둘러싼 미루나무에서 살다 저녁이면 날아온다고 생각했는데, 개구쟁이는 교회 처마와 지붕 사이에 손을 넣어 둥지에서 자라는 새끼를 꺼내기도 했다. 교회와 동네 사이의 작은 도랑에 언제나 맑은 물이 졸졸 흘렀고 개구리가 들끓었다. 그 물은 어디를 향했을까? 도랑에서 까마중 따 먹던 꼬맹이들은 그런 데 관심이 없었다.

신기촌에 타일 공장이 있던 시절, 쓸만하다 쓰레기장에서 생각한 타일을 주어오던 우리는 겨울이면 주안 사거리 집에서 스케이트 타려 신기촌의 논으로 갔다. 넓은 논은 스케이트 장으로 변했는데, 어디에서 물을 가져왔을까? 얼어붙은 물웅덩이를 깨서 물 퍼올리는 스케이트 장 관리인의 모습을 기억하는데, 항상 고이던 논물이 어디에서 흘러왔는지 관심 없었다. 주안에서 신기촌으로 오갈 때, 중간에 하천이 있고 다리를 건넜을까? 어렴풋하지만, 그랬다. 그리 넓지 않았던 하천은 복개돼 도로로 바뀐 승기천이다.

승기천은 문학산에서 흘러내렸다. 현재 남동산업단지 유수지로 흘러드는 승기천은 인공하천이다. 갯벌을 메워 남동공단을 조성하면서 연수구 사이에 물길을 만들었는데 문학산에서 흘러내리는 승기천과 연결했고 연수구 아파트단지와 남동국가산업단지 공장지대에 내리는 빗물이 승기천으로 흘러가 유수지에 모인다. 어릴 적 교회 옆 도랑은 승기천으로 흘러갔을 텐데, 어디에서 흘러왔을까? 작은 언덕의 과수원이었을까? 그 주변에 숲이 있었다. 다닥다닥 주택과 상가로 뒤덮인 지금, 그 무렵의 경관을 전혀 상상할 수 없다.

논밭 메워 성냥갑 같은 주택을 다닥다닥 붙였다 허물고 다세대주택으로 어지러워졌을 때, 신기촌의 논을 적시던 승기천은 복개돼 시야에서 사라졌고, 기억에서 지워졌다. 요즘 재개발이 한창인 주안 일대는 초고층 아파트 단지의 꿈에 사로잡혔다. 지금도 좁아터진 도로는 괜찮을까? 40층 넘나들며 치솟은 아파트마다 자동차를 토해낼 텐데, 짜증을 얼마나 유발할까? 갈무리 마친 논밭에서 연을 날리던 시절, 주안의 하늘은 드넓었다. 꼬맹이가 날린 연보다 맴도는 매가 많았는데, 아파트가 겹겹이 차단하는 하늘은 손바닥보다 좁다. 재개발이 계획처럼 마무리될 때, 주안과 신기촌 일원은 얼마나 답답해질까?

 

미추홀구 인주도로 승기천 복원 예시도
미추홀구 인주도로 승기천 복원 예시도

지난 16일 문화복지정무부시장은 “승기천 물길 복원사업이 꼭 추진돼야 한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며 아파트 입주 예정자 회의의 건의에 화답했다는 소식이 언론에 나왔다. 지난 8월 수도권을 흠뻑 적신 호우로 신기사거리 주위에 피해가 발생했다. 주민들은 대책으로 승기사거리부터 용일사거리까지 2㎞ 구간의 승기천 복원을 제안했고 인천시는 승기천의 생태환경 복원을 더 얹어서 화답한 모양이다. 다만 용역 결과를 기다린다는데, ‘생태하천’이라... 하늘로 치솟은 아파트단지 사이에서 가능한 이야기일까?

위기로 치닫는 기후변화로 폭우와 폭염이 반복된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에 흐르는 하천이 바람길이 된다면 한여름의 열기를 식혀줄 수 있으니 아파트단지 사이의 물길은 의미가 있다. 경관을 배려하는 디자인으로 물길을 조성한다면 눈에 띌 테고, 아파트 시세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겠다. 하지만 생태? 생태는 건축용어가 아니다. 서식하는 동식물의 다양성이 보전될 때 사용할 수 있는 명칭이다. 지금도 막히는 도로의 폭 일부를 뜯어내 물을 흐르게 할 게 분명한데, 복개를 뜯으면 생태하천이 되는가? 물은 어떻게 끊어지지 않아야 흘릴 수 있을까? 주위 어디를 보아도 숲은 물론, 이렇다 할 공원도 풀숲도 없다. 물을 끌어들이려 할까? 에너지를 들여 인근 하수종말처리장의 처리수를 연결할 셈일까?

청계천을 꿈꾸는 승기천이라면 조경용이라고 보아야 옳다. 행정이 붙인 이름과 관계없이, 생태하천일 수 없다. 밝은 조명 아래 예쁘게 흐르는 승기천이라면 산책하는 주민에게 인기를 끌 수 있겠지만, 2km에 불과한 생태하천은 낯부끄럽다. 초고층 빌딩이 주위에 겹겹으로 선 시멘트 공간에서 폭우는 어느 정도 대비하겠지만, 바람길 기능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가 불러오는 기상이변의 대안과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무용지물은 아닐 것이다. 장차 아파트 사이에 나무와 풀이 넉넉한 공원을 조성하고 생활하수를 중간처리해 공원의 습지를 유지한다면 다소 달라질 수 있다. 공원 습지에 모이는 물이 승기천으로 흘러든다면 폭우를 어느 정도 완충할 수 있을 텐데, 용역 연구 범위에 포함되었을지 궁금하다.

갑자기 급등하던 인천의 아파트 시세가 바닥 모르게 떨어진다. 재개발 열기도 시들어질 텐데, 사실 주택보급률이 100%가 상황에 벌어지는 신축 아파트 열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었다. 녹지를 잃은 도시에서 급한 행정은 기후위기 대응이다. 관측 이래 최대를 경신하는 폭염이 심각해지기 전에 도시는 재난에 대한 완충력을 확보해야 한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덜어내고 그 자리에 녹지와 습지를 조성해야 한다. 복개된 승기천의 복원은 주위에 녹지와 습지가 확보될 때 생태성을 기대할 수 있다. 사탕발림 같은 생태하천 구호보다 시급한 문화복지 행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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