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앞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상태바
“저도 앞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 최원영
  • 승인 2022.10.24 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원영의 책갈피] 제75화

 

어릴 때는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혼해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까 그제 서야 비로소 부모님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때는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난 뒤입니다. 그래서 슬프지만 그래서 더 그립습니다.

철없던 어린 시절, 과자를 사주지 않는다고 떼를 쓰고 엉엉 울어대던 저였습니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 십 남매를 키워야 했던 부모님 입장에서는 쉽게 사줄 수 없었을 겁니다. 얼마나 난감하셨을까요? 가게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울어대는 저를 말없이 안타깝게 바라보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제가 자식을 낳아보니, 그때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말입니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가꾸어 주는 작은 이야기》(이도환)에 아름다운 이야기 한 편이 나옵니다.

“청년이 사고로 양쪽 눈을 실명한 후 살아갈 의욕조차 잃었다. 가족은 상의 끝에 그를 맹아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교장 선생님이 어느 선생님을 부르고는 학교건물과 교정 곳곳을 소개해주라고 했다.

음성이 너무도 명랑한 그 선생님은 그의 팔을 잡은 채 사무실을 나갔다. 복도를 지나고 학교의 현관 입구로 간 선생님이 말했다.

‘자, 이제 우리는 현관 밖 계단을 내려갈 거에요. 계단은 모두 열 개인데요. 다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돌아서 화단 앞을 지날 겁니다. 화단 앞을 지나면 교정을 한 바퀴 돌 거에요. 제 말을 잘 기억하고, 그대로 가 보세요. 혹시 미심쩍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제 손이 항상 당신의 팔꿈치 근처에 있으니까 그걸 잡으세요.’

친절한 여선생님 얘기에 그는 마음이 편해졌다. 계단을 하나하나 세면서 내려갔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화단이 있는 게 느껴졌다. 향기로운 꽃향기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는 자기 마음속에 생기는 자신감을 느끼며 교정을 한 바퀴 다 돌았다. 선생님과 함께 자신의 숙소까지 다다른 그는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같이 눈먼 사람의 입장을 정말 잘 이해하고 계시는군요.’

‘물론 저는 학생을 잘 이해합니다. 저도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사람이니까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아픔이 주는 선물이지 않을까요.

그러니 지금 우리가 아프다면 훗날 내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는 아픔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지금의 고통과 어려움을 반드시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울 수 있으니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