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위에 그려진 푸른 오솔길, 늘솔길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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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위에 그려진 푸른 오솔길, 늘솔길공원
  • 유광식
  • 승인 2022.11.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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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 일기]
(91) 논현동 한화기념관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늘솔길공원 안 양떼목장, 2022ⓒ유광식
늘솔길공원 안 양떼목장, 2022ⓒ유광식

 

사회 안팎으로 어지럽게 내몰리는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결코 넘어지지 않을 힘이 있다. 이 틈을 타 어수선한 미끼를 던지는 것들이 많지만, 깊은 애도 속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임이 명백하다. 거대한 산 하나가 아래에서부터 붉은 옷을 추스르며 가을 낙원으로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다. 그리고 먼 산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평온을 찾으러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도 많다. ‘안전’에는 이유를 달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당연한 것임에도 우리 사회의 ‘안전’을 자꾸만 특별한 무엇으로만 읽어내려 하니 그저 먹먹할 따름이다. 잠시 인천의 남쪽으로 향한다. 

 

햇살 난방의 산책로, 2022ⓒ유광식
햇살 난방의 산책로, 2022ⓒ유광식

 

남동구 논현동에는 구 한국화약(한화) 공장 부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공장이 이전된 후로 이곳은 기념관, 공원, 택지로 조성되어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늘솔길공원으로 통칭하는 너른 숲의 시작점인 한화기념관부터 살펴보았다. 기념관은 아담하고 정갈한 느낌의 3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국 화약 산업의 변화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알차게 꾸며져 있었다. 외부 정원 또한 매우 깔끔하고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꾸준히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침 입구 옆 길(한화인의 길)을 새로 도포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한국화약의 노동자들은 화약을 다루는 위험을 늘 안고 있어 매사에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작업 동선이 단순하면서도 세부적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공장은 모두 이전했지만 노동자의 안전을 기원하며 함께 모여 기도했던 성 디도 채플(작은 성당)은 그대로 남아 있어 안전이라는 두 글자를 마음 깊이 새기게 되는 시간이었다. 

 

한화기념관(본관), 2022ⓒ유광식
한화기념관(본관), 2022ⓒ유광식
옛 한화 공장 용지 모형도, 2022ⓒ유광식
옛 한화 공장 용지 모형도, 2022ⓒ유광식
화약의 원리 및 사용처 안내 물품들, 2022ⓒ유광식
화약의 원리 및 사용처 안내 물품들, 2022ⓒ유광식

 

본관을 시작으로 전시를 둘러보며 화약에 대한 기존의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화약 하면 폭발 및 사상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안전에 기여하는 쓰임새가 많다는 것에 놀라웠다. 자동차 에어백, 에어로졸, 소화기, 선박 구조 신호탄 등에 화약이 널리 쓰이고 있었다. 88서울올림픽 성화 봉송대가 왜 여기 있나 싶기도 했는데 화약과 연관된 만남이 과거와도 연결되어 반가웠다. 바로 옆에는 불꽃놀이를 직접 디자인해 시연해 볼 수 있는 파노라마 체험 공간이 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정말 좋아할 것만 같다. 때마침 열린 서울세계불꽃축제 현장에는 가지 못했지만, 남부럽지 않을 멋진 불꽃놀이였다. 본관 옆의 화약 제조공실은 화약의 제조 공정을 실제 사용했던 장비와 물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유익했다. 건물 밖에는 까치 세 마리가 파수꾼 역할을 하는지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었다. 세 동의 기념관을 모두 돌아본 후에 열심히 답을 작성한 관람객용 퀴즈 설문지를 제출했다. 그랬더니 다이너마이트 한 통을 덥석 안긴다. 그 안에는 폭약 대신 펜이 몇 개 들어 있었는데, 이야기 불꽃을 터트리기 딱 좋은 선물이었다. 

 

직접 디자인한 불꽃놀이 시연 체험, 2022ⓒ김주혜
직접 디자인한 불꽃놀이 시연 체험, 2022ⓒ김주혜
화약제조공실 안 옛 기계들, 2022ⓒ김주혜
화약제조공실 안 옛 기계들, 2022ⓒ김주혜
직원의 안전을 기원하며 매 금요일 기도를 올리던 채플, 2022ⓒ유광식
직원의 안전을 기원하며 매 금요일 기도를 올리던 채플, 2022ⓒ유광식

 

발걸음을 옮기니 늘솔길공원으로 향하는 오솔길이 등장한다. 공원의 이름에서 따사로운 푸르름이 가득하다. 남동둘레길과도 연결되는 공원은 너른 동산의 모습으로, 천천히 걸으며 언덕의 리듬감을 느낄 수 있고 자연 그대로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시원한 숲내음이 가득하다.  공원 곳곳에 아이들을 위한 숲 체험 놀이터가 많고 메타세콰이아, 계수나무, 은행나무, 수련장 등이 잘 조성되어 있어 숲의 모양과 향기로 목욕하는 기분이었다. 인근 주민들은 공원에 자부심을 느끼고 참 아끼겠구나 싶었다. 공원에서 한창 풀 깎기로 이곳저곳 제초기 모터 도는 소리가 들려오니 귀에 약간 거슬리기는 했지만, 큰 나무 사이를 구름배 타고 걷는 것처럼 마음이 둥둥 들뜨기도 했다. 무장애 나눔길은 오염된 마음속 먼지가 상쾌하게 씻겨 내려가는 듯이 쾌적한 곳이었다. 적당한 가을볕과 바람, 새들의 지저귐이 가득하니 진정 시민들에게 안정을 넘어 안전을 제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은 호숫가 주위로는 조깅과 산책,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많았고, 무엇이든 집어삼킬 만큼 거대한 크기의 느티나무는 공원의 터줏대감이었다. 사람들과 더불어 온갖 동식물이 함께 뒤섞여 있는 공간이지만 전혀 어지럽거나 치이지 않는다. 푸른 하늘에 그림을 그리다가 ‘매에~~~ 매에~’ 소리에 낚여 방향을 틀었다. 

 

늘솔길공원의 중후함을 담당하는 호수, 2022ⓒ유광식
늘솔길공원의 중후함을 담당하는 호수, 2022ⓒ유광식
삼림욕장(편백 향기가 솔솔~), 2022ⓒ유광식
삼림욕장(편백 향기가 솔솔~), 2022ⓒ유광식
유아 및 어린이 숲 속 놀이터(어른들도 탐 낸다), 2022ⓒ유광식
유아 및 어린이 숲 속 놀이터(어른들도 탐 낸다), 2022ⓒ유광식

 

소리를 찾아가니 넓은 목장이 나오고, 양들이 식사와 휴식 중이었다. 울타리 안의 양떼 무리에 섞여 관리소 아저씨들은 뒤처리 중이다. 허리를 숙이고 있으니 아저씨들도 무리 속 양 같았다. 풀 뜯는 양들을 보러 찾아온 사람들이 많다. 토실토실하니 귀엽기도 하고 뭘 달라고 하듯 가까이 다가와 빤히 쳐다보는 모습조차 흥미롭다. 아이(가족)에게 숲에서 딴 나뭇잎을 건네며 양에게 직접 먹이를 주는 체험이 인기 만점이다. 그런데 아빠・엄마는 양의 수를 세는 법을 아이에게 가르쳐 주었을까?

 

먹이 주기 체험(고고~), 2022ⓒ김주혜
먹이 주기 체험(고고~), 2022ⓒ김주혜
늘솔길 친구, 2022ⓒ유광식
늘솔길 친구, 2022ⓒ유광식

 

인근에는 공장 부지답게 한화로 시작하는 아파트 단지가 많다. 발음을 다소 문대면 ‘하나’ 로도 읽힌다. 늘솔길공원은 가족이라는 그림과 잘 어울리는 곳이어서 아이가 있는 주변 지인들에게 꼭 가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숲속 길과 한화기념관, 호숫가 산책, 양들의 소동 등으로 더없이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매우 잘 관리되고 있는 공원이라는 인상을 많이 받았는데, 최근 ‘녹색복지숲 생태체험교육관'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어 늘솔길공원의 푸름은 한층 더 깊어질 것 같다. 공원을 찾는 인파에는 별도의 주체가 없듯이 우리 사회의 평온과 안전이 어떤 주체 없이도 둥글고 즐겁게 늘 쏟아지면 좋겠다.   

 

호숫가 옆 묵직한 플라타너스, 2022ⓒ유광식
호숫가 옆 묵직한 플라타너스, 2022ⓒ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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