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은 왜 열 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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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은 왜 열 개일까?
  • 최원영
  • 승인 2022.11.1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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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 78화

 

어떠한 고통도 산통(産痛)과 같아야 합니다. 산통은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그러나 고통이 너무 아프다고 고통을 포기하면 새 생명의 탄생 또한 없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직시하고 마주해야 합니다. 고통이 아름다운 산통이 되려면 고통은 새 삶을 낳는 산통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확장될 때 가능합니다. 시선의 확장은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겁니다. 고통이라는 걸림돌을 성장이라는 디딤돌로 바꾸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바보 되어주기》(안순혜)에 나오는 글을 전해드립니다.

 

“중세에는 창문 크기와 개수에 따라 세금을 매긴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시원한 공기를 마실 수도 없었고, 맑은 하늘을 볼 수도 없었다.

우리 마음에는 몇 개의 창이 있을까. 맑은 마음이 드나들고 다른 사람에게 푸르른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창, 그런 창 말이다.”

 

시선의 확장이란 마음의 창을 늘리는 겁니다. 그래야 어두운 그늘 속에 있더라도 아름다운 정원에 핀 고운 꽃들과 새들의 지저귐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신이 늘 보던 그 창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곤 합니다. 그래서 편견이 생기고 옳고 그름의 좁은 기준이 생깁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자문해봅니다. 내 마음의 창은 하나인가, 아니면 몇 개인가를요.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새로운 창을 내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요.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이 있을까요?

“손가락은 왜 10개일까요?”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열 개의 손가락으로 태어났고, 지금도 열 개이고, 앞으로도 열 개일 테니까요.

이렇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눈물은 왜 짠가》(함민복)에서 저자는 말해 줍니다.

 

“ ...

성선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님 배 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 탄성이 나옵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당연하다고 여긴 열 개의 손가락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을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요.

여러분, 혹시 ‘소금’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요? ‘음식 만들 때 반드시 필요한 재료이다.’ 또는 ‘바닷물을 한 곳에 모아 증발시켜 만든 것’이라는 과학적 지식이 떠오를 겁니다. 그런데 류시화 시인은 소금을 보고 ‘소금’이라는 시를 통해 새로운 시선을 보여줍니다.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란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흔히 ‘소금’ 하면 떠오르던 것들을 초월해 ‘바다의 상처이고 아픔이고 눈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행운입니다. 그리고 그 상처와 아픔과 눈물은 이 세상 모든 것에 들어가 맛을 낸다는 깨달음이 우리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우리가 겪는 아픔이나 눈물 역시도 어느 날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맛을 내는 소금이 되어줄 것입니다.

시선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당연하다고 여긴 것에서도 사랑과 감사함을 터득하게 하고,

그것이 더 큰 사랑으로 이어져 우리의 내일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열 손가락이 존재하는 이유와 소금의 숨겨진 눈물을 통해 알게 된 것이 너무도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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