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듬한 다른 생각’을 기다리는 일
상태바
‘비스듬한 다른 생각’을 기다리는 일
  • 진기환
  • 승인 2022.12.02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년이 설계하는 인천문화]
〈칼럼〉 진기환 / 문학평론가

가수 박소은의 노래 <우리는 같은 음악을 듣고>는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영화를 보고 비스듬히 다른 생각을 하”던 헤어진 연인을 추억하는 노래다.

이 노래는 내게 매우 특별하게 들렸는데, 같은 대상을 듣고 바라보더라도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매우 아름다운 목소리를 통해 다시금 확인시켜줬으며, 사랑을 유지하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매우 본질적인 물음을 내게 던져줬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닮고 싶기 마련이다. 닮기 위해선 무엇이 다른지 그 차이를 확인해야만 한다.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비스듬한 다른 생각’을 조심스럽게 나눠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존중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차이를 좁혀나가는 과정 중에도 서로의 차이는 계속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소은의 <우리는 같은 음악을 듣고>의 앨범에서

 

그러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계속적으로 발생하는 차이, 그리고 그 차이를 좁혀나가기 위한 과정을 견디는 길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과정을 견디고 있는 태도는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느냐를 판단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나는 요즘 누군가를 사랑해서 곤혹을 겪는 경우가 잦다. 한 편의 시를 보자.

 

가짜 뉴스를 진짜로 믿는 사람들 속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말은 길어지고

토막 난 것들만이 꿈속을 휘젓는다

상습적이다

왜 독재자를 그리워할까?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제주에서는 유채꽃 만평을 갈아엎었다는데

나는 발에 땀이 나지 않는 사람이라서

산책을 하다가도 땀 흘리는 사람을 그리워한다

그저 굿뉴스를 기다리는 중이야

아침을 망친 뉴스가 사랑하는 사람이 벌인 일이라면

저녁을 먹지 않고 베갯잇을 갈아야지

눈을 감고 헝겊같이 깨끗해질 거야

눈 감는 사람만이 사랑할 자격이 있다는 듯

사랑하는 사람은 지구가 뜨거워진다고 낮잠을 자고

우리는 각자 사랑하는 사람의 전화를 기다린다

봄을 기다리면 봄이 온다고 믿는 북극 사람이 되자 했지

그 말이 아름다워서 머리가 하얗게 세었구나

엄마,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마

-이소연, 「굿뉴스」, 『거의 모든 기쁨』-

 

이소은 시인의 『거의 모든 기쁨』 표지
이소은 시인의 『거의 모든 기쁨』 표지

 

시의 화자에게는 “가짜 뉴스를 진짜로 믿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시에는 그 사람이 믿는 가짜 뉴스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데, 다만 “독재자를 그리워”한다는 대목을 보건데 어떤 정치적인 뉴스임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화자는 그러한 가짜 뉴스를 믿는 사랑하는 사람을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헝겊같이 깨끗해”진 사람이 되기 위해 “배갯잇을” 간다. 상대방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화자는 좁혀질 수 없는 차이를 좁히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셈이다. 요컨대 화자는 사랑하기 때문에 필사적이다.

시의 화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최근에 매우 필사적이었다. 온 나라가 ‘가짜 뉴스’ 때문에 시끄러웠을 때도 나는 권력자의 논리를 이해해보고자 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나와 그의 차이를 좁혀보고자 했다. 권력을 사랑해서? 권력자를 사랑해서? 아니다. 그러한 권력과 권력자를 선출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정말 사랑했고, 사랑했기 때문에 이해해보고자 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지난 몇 달 동안 했던 사랑은 거의 짝사랑이었다.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굿뉴스”는 생기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제는 나를 이해해주고 있다. 그러면 이제 행복한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나는 아직 충분히 행복하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스듬한 다른 생각’을 확인했지만, 그들은 정말 확인하고 싶은 사람의 생각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해받았듯, 그들이 자신들이 선출한 권력자에게 이해받고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의 짝사랑을 그만두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부디 우리들의 기다림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