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소에서 호빵을 먹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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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소에서 호빵을 먹는 여인
  • 이세기
  • 승인 2022.12.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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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손바닥 소설 - 북창서굴]
(21) 보리차 한 잔
목공소
목공소

눈이 내려 보리차를 끓이다가 문득 벌거숭이가 되어 내쫓겼던 외환위기 시절이 떠올랐다.

날이 저물어 문을 막 닫으려는 차에 왕골 돗자리를 허리쯤에 매달고 머리에는 수건을 두른 한 여인이 목공소로 들어왔다. 문턱에서 머뭇거리더니 말을 건넸다.

잠시 여기에서 호빵을 먹고 가도 되나요?

아, 예, 하고 나는 응대를 했다.

동지로 치닫고 있는 겨울인데, 행색은 아직 늦가을 누비옷이었다. 남쪽 지방에서 왔나? 중부 지방 추위를 견디기 어려울 텐데, 나는 속으로 적잖이 걱정했다.

호빵을 쥔 손을 입에 갖다 대고는 여인은 두리번거리듯 힐끔 문밖을 내다보았다. 밖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가끔 시장통을 지나는 행인이 한두 명만 지날 뿐이었다.

목공소 안에는 화목 난로가 타고 있었다. 화목이어 봤자 땔 원목 쪼가리도 없어 겨우 불쏘시개나 할 수 있는 합판 자투리가 전부였다. 그나마 불씨도 사그라져갔다. 난로 위에는 보리차를 끓이는 주전자 입에서 실오라기 같은 연기가 맥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한여름도 아닌데 무슨 돗자리인가? 하고는 의아한 눈빛으로 문 옆에 기대여 호빵으로 저녁 끼니를 때우는 여인을 쳐다보았다.

여인은 다시 검은 비닐봉지에서 호빵을 하나 꺼내어 입에 가져갔다. 숨이 멎은 듯 차가운 밤을 천천히 뜯어 먹었다.

난로 옆으로 와서 드시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빛조차 주지 않았다.

쫓기기라도 하나? 잠시 뜬금없는 생각이 스멀거렸지만 이내 접었다.

다만 여인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자니, 남쪽 지방 사람들은 주책도 없이 한겨울에도 돗자리를 팔러 다니는 모양이군, 하다가 제를 지내는 데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짧은 생각을 거둬들였다.

다시 난로 곁으로 와서 드시라는 말을 붙였으나 여인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을 내밀었다. 여인은 말없이 받아 쥐고는 차갑게 언 두 손을 데웠다. 손마디가 거친 날짐승의 발가락을 닮아 있었다. 보리차가 목으로 넘어가서인지 야윈 어깻죽지가 잠시 들썩였다.

난로 앞에서 손을 쬐고 있는 나를 잠시 보더니, 이게 함평산(産) 왕골 돗자리인데...여인은 돗자리를 살 수 없겠...냐고 묻다가 끝을 맺지 못하고 이내 말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고맙다는 짧은 말을 건네고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돗자리를 등에 지고 목공소 문을 나섰다.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돗자리였다.

밖은 먹물을 토해내듯 짙었다.

나는 여인의 뒷모습을 쫓았다. 무거운 짐을 메고 사라진 길가를 먹이를 찾는 비둘기 눈빛으로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여인은 수치심인지 아니면 막막함 때문인지 발걸음이 재발랐다. 여인의 자취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자리에는 희미한 가로등만 물먹은 듯 자욱했다.

그날은 때마침 목공소가 문을 닫는 날이었다. 외환위기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목재값을 버틸 재간이 없었다.

집에 와 보니 엄지발가락이 빠져 있었다.

장대패가 떨어지면서 발가락을 찍힌 것이 화근이었다. 한 달 내내 발톱이 윤회하듯 초승달에서 보름달이 되도록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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