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를 매듭으로 엮어내다 - 김보경 작가
상태바
과거와 현재를 매듭으로 엮어내다 - 김보경 작가
  • 박이슬
  • 승인 2022.12.10 15: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년이 설계하는 인천 문화]
[인터뷰] 당신은 몰랐던 인천 작가(3) - 김보경
글 = 박이슬 / 임시공간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김보경 작가 ⓒ사진 장현준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미술가 김보경입니다. 이미지 리서치를 기반으로 도시 속 역사, 체득할 수 없는 역사의 영역을 어떻게 체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갖습니다. 특히 건축물이라는 공간적 매개체와 관계 맺는 역사적 배경에 큰 관심이 있습니다. 동아시아를 기점으로 식민 건축물을 탐색하고, 현재의 풍경과 교차하며 물음에 대한 단서를 찾아가며, 평면과 입체를 혼용한 설치 작업을 합니다.

 

‘인천’이라는 지역과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저는 인천에서 태어났고, 초‧중‧고를 인천에서 다녔습니다. 이후에는 인천과 서울을 오고 가며 대학을 다녔기에 20대 초반까지는 거주지로서의 비중이 컸습니다. 인천 중구에 있는 시각예술 전시공간 ‘임시공간’에서 있었던 기획전 《웃는돌,고래》(2021)와 송도 전시 《낯설고, 낯선》(2022)에 참여하며 인천의 도시 역사와 관련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Hyphen Installation, Project Space Daseossure, 2022 ⓒ사진 김경태
Hyphen Installation, Project Space Daseossure, 2022 ⓒ사진 김경태
Hyphen Installation, Project Space Daseossure, 2022 ⓒ사진 김경태
Hyphen Installation, Project Space Daseossure, 2022 ⓒ사진 김경태

 

올해 9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프로젝트 스페이스 다섯수레에서 열린 개인전 《하이픈》(2022)에 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팀으로 활동을 하다가 2021년부터 개인으로 작업을 이어가며 선보인 전시로, 오랜 관심 주제인 서구식 식민건축 이미지를 중심으로 역사를 현재와 교차하며 탐색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건축물에서 내-외부를 연결하는 투명한 유리 창문에 특히 관심이 많은데요. 낮에는 창문으로 반사되는 빛으로 외부에서 내부를 쉽게 볼 수 없지만, 창에 비치는 건너의 풍경, 창에 빛이 반사되어 나타나는 창문의 형태의 빛의 모양을 볼 수 있는 시간 등을 마주하게 합니다. 반면 이미지로 남은 건축물의 창문은 픽셀화가 된 불투명한 존재이지만, 막연함과 호기심이 교차하며 미술가로서 개입할 수 있는 창구가 된다고 느껴집니다.

이번에는 동아시아에서 서아시아로 육로가 아닌 바다라는 경계가 모호한 길을 따라가며, 땅이라는 고정적 공간을 점유하는 건축물을 시간과 기억, 사건들이 함축된 아카이브로 삼아 ‘창문’을 통해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뜨개와 매듭으로 만든 입체 작업, 종이로 하는 직조 입체, 리소 프린트, 디지털 콜라주 월 페이퍼 작업을 보였습니다.

 

이번 전시의 작업에서는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해 인도, 중국 등 여러 나라에까지 흘러온 아칸서스 문양이 반복해 나타납니다. 특정한 하나의 장소에만 존재하는 양식이 아니라 긴 역사 안에서 서로 얽혀져 자리잡은 현상이라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이처럼 식민 건축물을 매개로 드러나는 연결지점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칸서스 장식은 식민 건축에서 중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지중해성 기후에서 흔하게 생장하는 식물 아칸서스는 고대 그리스의 건축에서 시작되어 장수와 불멸의 상징으로 유럽의 고전 건축 장식 문양으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서구식 식민 건축물 혹은 서구의 고전 건축을 모방하는 건물 장식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간혹 무궁화 장식 옆에 아칸서스가 자연스럽게 등장합니다. 땅을 기반으로 자발적 움직임이 어려운 것이 식민도시의 공간을 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식되는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저에게 아칸서스는 기존의 상징과 달리, 바닷길을 따라 이동하며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존재로 느껴져 ‘아칸서스 군락’이라는 제목으로 콜라주 작업을 했습니다.

〈걸어가는 빛의 견본-다중 입체〉, 2022, 종이 위에 리소 프린팅, 양면, 황동봉, 가변크기 ⓒ사진 김경태
〈걸어가는 빛의 견본-다중 입체〉, 2022, 종이 위에 리소 프린팅, 양면, 황동봉, 가변크기 ⓒ사진 김경태

 

리서치를 통해 구상한 이미지를 뜨개와 매듭, 짜깁기라는 방법을 통해 시각화하고, 전시장에도 평면 이미지와 같이 실제로 뜨개한 작업들이 함께 설치가 되었죠. 작가님께 실을 엮는 이러한 방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실이라는 물성과 실로 엮어진 모양새를 좋아합니다. 실은 시작과 끝이 구분될 수 없고, 매듭을 통해 무한대로 이어지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리서치를 하다 보면 주어진 이미지 자료는 한정적이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건물도 있기에 남겨진 이미지를 계속 들여다보며 상상도 하고 터를 가보기도 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뜨개, 짜깁기, 매듭과 같은 방법으로 과거와 현재 사이의 시간적/공간적 감각을 연결하는 시각적 운동성을 갖는 매개로 이용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뜨개의 경우는 손의 힘과 바늘의 굵기에 따라 짜이는 실 사이 공간의 크기, 조직의 유연성, 모양 등에 영향을 주는데, 이러한 성질은 저의 작업에서 감각이나 감정, 시간 같은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나타냄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보이는 짜깁기-연흔 장면〉, 2022, 윈도우 필름 설치, 투명 시트지 프린트, 308x966cm ⓒ사진 조신형(Visualog)
〈보이는 짜깁기-연흔 장면〉, 2022, 윈도우 필름 설치, 투명 시트지 프린트, 308x966cm ⓒ사진 조신형(Visualog)

 

비슷한 시기에 송도에서 열렸던 전시 《낯설고 낯선, The Hyperobject Invaion》(2022)에서는 인천도시역사관 유리벽의 한 면을 뒤덮는 작업 〈보이는 짜깁기-연흔 장면〉(2022)을 설치하셨어요. 이 작품에도 뜨개의 문양이 드러나는데, 구체적인 이미지를 구상하고 또 실제로 옮기기까지 고민했던 점이 궁금합니다.

이 작업의 경우는 준비 단계에서 리서치를 하던 중 인천도시역사관 내 전시유물인 ‘세창양행’의 바늘이 눈에 띄어 찾아보니 ‘세창양행’이라는 회사의 배경, 사택의 역사와 수출입 품목들이 흥미로웠습니다.

1800년대 한국 최초의 국제도시라 할 수 있는 개항 도시 인천, 인천 안에 만들어진 송도신도시의 역사와 생태적 환경, 송도국제업무단지 센트럴 파크에 위치한 인천도시역사관에서 보이는 고층의 주상복합 건물들 풍경을 바탕으로 짜깁기하듯 공간에 개입하고 싶었습니다.

〈보이는 짜깁기-연흔 장면〉(2022)에 이용한 크로쉐(코바늘)의 특징은 한 개의 바늘로 사슬과 고리로 코를 만들며 엮어지는 방식인데, 대바늘뜨기보다는 유동적이고 유연한 움직임이라 파도와 바람이 만드는 연흔과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천도시역사관이 센트럴파크에 위치하다 보니 공원을 산책하시는 분들도 많고, 역사관 로비 공간을 동네 분들이 편안하게 이용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로비 유리벽의 한 면이라는 넓다면 넓은 면적인데, 자연스럽게 투영하면서 익숙한 공간의 흐름에 환기를 주고자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술가로서 바라보는 인천이라는 지역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저에게는 태어난 곳이자 20년을 넘게 거주했지만 인천은 인천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올해 인천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인천미술아카이브 툴킷〉에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하며 미술작가로 인천이라는 지역의 역사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기존의 작업 주제 연구를 이어 나가며 작업을 하고, 대만이나 싱가포르 리서치 트립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내년 봄에 참여하는 기획 전시의 신작을 준비하며 2022년을 마감하고 2023년을 맞이할 예정입니다.

 

김보경 개인전 《하이픈 Hyphen》

기간: 2022년 9월 17일 - 10월 4일

장소: 프로젝트 스페이스 다섯수레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15길 6, 2층)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