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끝에서 위로를 채색한 화가, 프리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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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끝에서 위로를 채색한 화가, 프리다 칼로
  • 채이현
  • 승인 2022.12.1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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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독후감, 책울림을 나누다]
(1) 프리다 칼로, 붓으로 전하는 위로 / 서정욱 지음
- 채이현 / 자유기고가
독서는 한 사람의 취향을 반영합니다.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은 더더욱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습니다. 필자에게 감동 혹은 재미를 줬던 책들을 골라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책을 골라 ‘독후감’을 연재합니다. ‘서평’이 아니라 ‘독후감’입니다. 책의 장단점을 골라 이야기하기보다는 어떤 지점에서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좌표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개인적인’ 작업이요, 감상이지만 최대한 보편적인 울림을 줄 수 있도록 합니다. 

 

 

“나는 그려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린 것입니다. 그림이 그나마 진통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프리다 칼로)

 

모든 불행이 나에게로 향하는 것 같던 때가 있었다. 서서히 나를 좁혀오던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극심해진 탓이었다. 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치료에 전념해야 할 정도로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 어딘가에서 방황했다. 집중 치료를 위해 입원해 있는 동안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계속 글을 썼다. 나에 대해, 누군가에 대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들에 대해 하나도 남김없이 썼다. 그렇게 살아남았다.

<프리다 칼로, 붓으로 전하는 위로> 라는 책을 첫 번째로 소개하게 된 이유는 아마 내가 그녀가 느꼈을 절망과 고통을 아주 조금이지만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창창한 미래, 그저 열심히만 살면 될 줄 알았던 인생이 계속해서 꼬였던 경험을 나 또한 했고, 현재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계속 생기지?” 라는 질문을 던져봤자 아무도 대답해 주는 이가 없고, 돌아오는 것은 내면의 깊은 한숨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다시 세상에 문을 두드리게 된 통로는 ‘글쓰기’였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이라기보다는 꽉 막힌 가슴을 부여잡고 내뱉은 탄로 같은 것이었다.

저자 서정욱은 디자인학 박사로, 미술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길잡이 저서를 다수 출간했다. 유튜브에서 ‘서정욱 미술토크’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이 책 역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프리다 칼로의 삶과 그림을 연결시켜 소개하는 입문서라고 봐도 좋다. 그녀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녀가 겪은 고통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가장 큰 메시지다. 언뜻 보기에 기괴하고 섬뜩하기까지 한 몇몇 작품들도 프리다 칼로가 살아온 삶의 궤적 속에서는 이해 가능한 퍼즐이다. 누구나 그릴 수 있는 예쁜 풍경보다 자기가 보는 자신과 주변인들의 초상을 주로 그렸던 것도 그녀의 관심이 자기 내면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프리다 칼로는 18살에 큰 사고를 겪는다. 버스가 교차로에서 도심 전차와 충돌해 튕겨 나갔고, 쇠 파이프가 그녀의 가슴을 뚫고 골반을 통해 허벅지로 나오는 끔찍한 부상을 입은 것이다. 다쳤다기보다는 몸이 완전히 부서져버렸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3개월 동안 병원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고, 척추의 탈골 때문에 9개월 동안 석고 보정기를 끼고 있어야 했다. 서른 번이 넘는 수술을 했다 하니 그 고통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피하고 잊어버리려 했을 테지만, 프리다 칼로는 그 사고의 순간을 드로잉으로 그린다. 그리고 그 때부터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녀는 평생을 사고 후유증과 남편의 외도로 괴로워했지만 그것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그림으로 그렸다. 모든 고통이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오직 그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통찰해 내는 용기 있는 사람만이 기억할 만한 작품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프리다 칼로가 그랬다.

두 명의 여자가 손을 잡고 있다. 심장과 심장이 이어진 두 여자는 모두 프리다 칼로다. 마치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수혈을 하듯이, 너의 아픔을 내가 다 안다는 듯이 둘은 그렇게 정면을 응시하면서도 서로를 향해 있다. 나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라는 것, 그 모든 외로움을 견디고 살아내는 것 자체가 삶이라는 것을 프리다 칼로는 말하고 있는 것일까.

사는 것이 너무나 괴롭게 느껴진다면, 누군가에게 고통을 견디는 방법에 대해 묻고 싶다면, <프리다 칼로, 붓으로 전하는 위로>를 통해 프리다 칼로의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저자는 프리다 칼로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살아내려는 의지’를 잊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오히려 그 고통에 정면으로 맞서고, 표현해 내는 과정에서 자기 치유와 위로를 실천했기 때문에 그녀의 그림이 더욱 가치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평가를 위한 그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그렸던 그림, 삶의 모든 무게를 담아 그린 그림 속에서 장애와 절망도 끄지 못한 프리다 칼로의 열정을 당신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채이현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인천 사람. 사회운동 활동가였고, 사서를 비롯하여 여러 직업을 오가다 지금은 재충전을 하고 있다. 2023년 다시 새내기가 되어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경영을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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