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도든아트하우스 이창구 대표
인천 중구 개항장 거리를 거닐다 보면 갤러리와 소극장, 문화공간이 꽤 여럿이다. 인천문화재단과 기업문화재단 산하 공간은 물론, 예술가나 문화기획자가 운영하는 곳도 눈에 띈다. 이들 중 화가가 운영하는 갤러리로 스타트를 끊은 곳이 3년 전 개관한 ‘도든아트하우스’다.
“갤러리를 열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 꽤 오래전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죠. 10년 계획을 세웠습니다. 장소를 물색하는 기간을 오래 가져보자 했죠. 수없이 찾아다니다 결국 개항장으로 낙점을 찍었습니다.” 이창구 도든아트하우스 대표가 장소에 대한 이야기부터 푼다.
첫 번째 조건으로 마을 깊숙이 들어가자는 데서 출발했다. 그동안 (30년이상) 살면서 작가로 활동을 해왔던 인천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더해졌다. 그리고 도시 정체성을 담고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답은 ‘개항장 거리’로 정해졌다.
“주변이 인천아트플랫폼이라는 미술환경에, 특유의 개항문화 정서가 깔려 있죠. 차이나타운을 시작으로 신포동과 경동을 넘어가면 배다리와 연결되는 문화벨트가 특별한 곳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역도 가까워서 접근성도 뛰어납니다.”
도자기 수입 창고로 쓰였던,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는 2층짜리 구옥을 한 채 발견했다. 전기 시설조차 없는 집을 갤러리로 꾸미기까지는 한참이나 손이 들었다.
“집을 지탱하고 있는 틀만 남기고 내부를 모두 비웠습니다. 뜯어보니 벽돌집이었어요. 벽돌 형태는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벽면을 다시 바르고 창틀을 달고 칠을 하고, 머릿속 설계대로 차근차근 만들어갔습니다.”
그렇게 1층이 갤러리 공간으로 완성됐다. 거실과 방 2개가 있던 2층은 세칸으로 나눠 카페를 들였다.
“당연히 이집에서 가장 좋은 공간을 갤러리로 꾸몄죠. 그 안엔 절대 티 테이블을 두지않는다는 소신과 함께요. 갤러리로서의 순기능을 찾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2020년 1월 ‘도든아트하우스’라는 문패를 달고 문을 열었다.
도든에 담긴 뜻을 묻자 기발한 답이 돌아온다. “‘도’는 그림을 뜻하는 한자 도(圖)입니다. ‘든’은 우리말 ‘들다’의 형용사형이구요, 예컨대 ‘볕이 들다’ 할 때 그 ‘들다’죠. 해서 도든은 ‘그림이 드는’입니다.”
도든아트하우스란 ‘그림이 드는 집’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그대로 갤러리, 이 대표가 만든 조어다.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역시 전시 운영방식이다. 3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젊은 신진작가를 배려한다. 둘째 비인기 장르에 관심을 갖는다. 셋째 작가를 발굴하는 갤러리가 된다.
“미술 전공자들 경우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그야말로 경력단절이 되는 상황이 종종 벌어집니다.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거죠. 이들 작가에게 기회를 주는 역할을 갤러리가 하자는 겁니다.” 신진 세력을 배려하겠다는 결심을 한 이유다.
작가 발굴은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예컨대 미국에서 거리미술을 하는 작가를 갤러리 안으로 끌어들인 결과 빛을 발하게 되는 경우처럼, 도든아트하우스도 늘 작가 발굴에 관심을 두자.”
비인기 종목으로 본인 전공의 한국화를 포함한 전통회화를 꼽는 이 대표다. “이 분야 관심이 필요합니다.”
개관이후 줄곧 3가지 원칙을 담아가려고 애를 썼다. 청년작가를 지원하는 전시라든가, 대학을 졸업한 작가 초대전, 그리고 한국화, 혹은 민화 초대전을 열었다.
“우리 갤러리는 작가주의를 표방합니다.”
무엇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시를 이어왔다. 누군가 방문했을 때 문이 닫혀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에서다. 열흘에 한번씩 새로운 전시를 걸었다. 3년동안 무려 108회 라는 숫자를 썼다.
갤러리를 열기 전까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사이자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해온 화가인 그다. 교사로서 향수나 작가로서 창작욕구가 내면에서 솟구치지 않느냐고 묻자 환한 웃음을 웃는다.
“갤러리를 열면서 3년간 내 전시는 안하겠다는 결심을 했지요. 동시에 갤러리 운영에서 절대 내 색깔을 입히지 않는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친한 작가들을 불러오게 되면 처음 세웠던 방향으로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갤러리를 사적 공간으로 이용한다면 운영하는 의미가 퇴색하게 되죠.”
교사의 길을 스스로 마치고 가보지 않은 길을 택한 삶이 그 자체로 흥미롭다고 말한다.
“화가의 작업실이 숙성실이라면 갤러리는 그 작품을 끌어내는 곳입니다.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멋지지 않나요.”
그림에 묻혀 사는 이 대표의 삶이 한없이 풍성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