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 들어와 마주한 순간 선물같은 공간 됐으면”
상태바
“골목에 들어와 마주한 순간 선물같은 공간 됐으면”
  • 김경수 기자
  • 승인 2023.01.04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술 공작소를 가다 - 아트 & 숨]
(4) 배다리 잇다스페이스 작은미술관 정창이 기획자
올들어 중구 개항장거리에서 갤러리 3곳이 문을 열었다. 동구 배다리거리는 문화·예술거리 조성사업이 진행되면서 문화공간이 확 늘었다. 이들 공간은 특유의 색깔들을 입히며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인천in은 이곳들을 포함, 곳곳에서 예술을 일구는 사람들을 만나 공간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시작한다. ‘예술 공작소를 가다-아트 & 숨’이라는 문패를 달고 매주 수요일마다 한편씩 이어간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초입의 ‘아벨서점’과 ‘행복공작소’ 건물 사이엔 좁은 골목이 하나 있다. 혼자서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골목을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으로 또다른 골목이 이어진다. 그 길 가운데 삐죽 나온 작은 간판에는 ‘빨래터카페’라고 쓰여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뜻밖의 공간이 나온다. ‘배다리 아트스테이 1930’이라고 명명된 이곳엔 갤러리와 문화공간, 카페가 나란히 있다.

여기 공간을 운영하는 이가 정창이 기획자 겸 작가다. 지난해 9월 문을 열 때부터 공간지기가 됐다.

“갤러리 ‘배다리 잇다스페이스 작은미술관’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문화쌈지공원’, 차를 마실수 있는 ‘빨래터 카페’로 구성돼 있습니다. 갤러리 개관 기획전에 욕심을 냈죠. 3달에 걸쳐 릴레이 전시를 열었습니다.”

개관전시 공모를 하자 예상보다 많은 작가들이 신청을 했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욕심나는 기획이 쏟아졌다. “가능하면 다 초대하자고 결정했습니다.”

결과 320명을 선정했다. 한번에 40명~45명 내외로 열흘씩 일곱차례 초대전을 이어갔다. 꼬박 석달이 걸렸다. 이어서 또 한달은 기획전을 다섯 번 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해 끝이었다.

“이 공간 목적이 미술을 통해 사람을 모으는 문화 저변확대에 있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작품을 거는 것이 그 계기를 만들죠. 작가군에 따라 기획을 하고 작품을 거는 일을 되풀이하면서 몸은 고됐지만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작은미술관에서 진행한 전시 모습.
작은미술관에서 진행한 전시 모습.

작가들이 대거 참여 의사를 밝힌 데는 정 기획자가 인근 싸리재에서 전시공간 ‘잇다스페이스’를 운영하면서 쌓은 네트워크가 기반이 됐다. 지난 2015년 9월에 개관, 갤러리로 운영해온 지 어느새 8년차에 들어선다.

인천과 전혀 연고가 없던 그가 인천에서 산 세월도 18년이다. 초반 몇 년은 작업실은 김포에, 전시 활동은 중앙에서 하다보니 이 도시와 교류가 거의 없었다.

나무를 재료로 조각을 하는 작가에게 작품과 재료를 보관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골목사이 붉은 벽돌이 보여서 들어갔는데 폐허같은 곳에서 오동나무가 뻗어올라가고 한켠에는 새싹이 돋아 있었습니다. 순간 이곳을 꾸며보자는 강한 울림을 느꼈습니다.” 배다리 싸리재에서 마주한 장소였다.

어렵게 건물 주인을 찾아 문화공간으로 꾸미고 싶다는 말을 했다. 처음 주인은 거절했으나 결국 허락을 받아냈다.

그렇게 문을 연 갤러리가 ‘싸리재 잇다스페이스‘다. 철학이 담긴 네이밍이라고 말을 더한다. “끝과 끝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출발합니다. 자연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문화를, 문화와 자연을 이어갑니다.”

배다리를 오가면서 그 옛날 여인숙을 하던 장소를 알게 됐다. “시간의 흔적이 멋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 재력가가 그곳을 문화공간으로 꾸몄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었죠.”

얼마후 그 일대를 동구가 매입하더니 공간에 대한 기획·운영자를 모집하는 공고를 냈다.

“이야말로 기회라고 절감했습니다. 꿈을 꾸면 뭔가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거든요. 꼭 하겠단 마음을 먹고 덤벼들었죠.” 몇날 며칠을 밤 새워 준비한 기획이 선정되면서 꿈에 그리던 장소의 운영자가 된 것이다.

공사를 시작하면서 현장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1930년대부터 50년대 생겨나 영업을 했던 진도여인숙은 미술관으로, 성진여인숙은 쌈지공원으로, 길조여인숙은 카페로 다시 태어났다. “뼈를 갈아 넣어 만든 곳입니다.”

 

쌈지문화공원
문화쌈지공원
빨래터카페
빨래터카페

중심은 당연히 미술관이다. 1, 2층에 나란히 있던 여인숙 방들을 기둥만 남기고 모두 헐어낸 뒤 갤러리 공간으로 싹 바꿨다.

그중 방 2개는 작가들이 머물 수 있는 장소로 꾸몄다. “‘아트 스테이’ 개념 그대로입니다. 멀리서 전시하러온 작가에게 내 줄 수도 있고요 ‘1박2일 인천동구 살아보기’ 같은 프로그램을 열고 활용할 수도 있구요.”

갤러리 콘셉트를 젊게 가져가려 한다고 말한다. “나이가 아니라 사고가 젊은 것을 의미합니다. 당연히 생동감과 에너지가 따르죠. 젊은 콘텐츠를 가져와 지역주민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숨어 있는 공간이라 아쉬움이 있지 않냐고 묻자 기획자는 단박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골목에 들어오기가 쉽지 않지만, 들어와 보고는 ‘뭐야 이런곳이 있네’하며 환호하게 만드는 선물이 됐으면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