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값이 이렇게 헐값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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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값이 이렇게 헐값이라니!
  • 전갑남 객원기자
  • 승인 2023.01.27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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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줍는 노인들의 삶... 사회적 배려가 절실하다
매서운 한파에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이하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번 추위는 북극의 제트기류가 한반도까지 내려와 그렇다고 합니다.
올겨울은 참 유난스럽습니다. 한때는 겨울 같지 않은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요 며칠 기습 한파가 불쑥 찾아왔습니다. 기후학자들은 이와 같은 현상이 '지구온난화의 역설'이라 합니다. 겨울철 기온이 상승할 때 북극권을 감싼 차가운 공기층이 약해져 북쪽 시베리아 찬 공기가 우리나라를 덮쳤다는 것입니다.
한파에 을씨년스러운 마포구 연남동 거리. 두툼한 옷을 두른 사람들이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종종걸음을 치며 걷습니다.  
 
한겨울 많은 양의 폐지를 모아 손수레에 싣고 가는 고된 삶의 현장입니다.

아내가 내게 손짓을 하며 갑자기 뛰어갑니다.

 
"여보, 저기 손수레 좀 봐!"
 
손수레 하나가 비틀비틀 걸어갑니다. 수레에 짐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종이상자는 하나하나 펴서 차곡차곡 실렸습니다. 앞에서 수레를 끄는 사람은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한참 동안 수레의 뒤를 밀었습니다.

아내가 어느새 버거워 보이는 손수레를 슬그머니 밉니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모양입니다.

수레 주인은 누가 힘을 보태는지 금세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좀 쉬려는 듯 한쪽으로 수레를 멈추고서 우릴 쳐다봅니다.
 
"누구신가 했는데."
"조금 덜 힘들었어요?"
"여긴 평지라서 괜찮아. 마음이 고맙네!"
"짐이 많아 끌기 힘드시죠?"
"늘 하는 일인데 뭘! 폐지값이 똥값이라 그게 힘들지!"
"폐지값이 많이 내렸나 보죠?"
"한창 비쌀 땐 150원 남짓하던 게 지금 40원이라니 말이 돼!"
"그렇게나 떨어졌어요?"
 
주름이 깊게 팬 노인이 한숨을 내쉽니다.
 
"이거 많은 것 같지? 돈으로 따지면 오천 원도 안 돼! 하루 서너 차례 고물상을 왔다 갔다 하지만 이래갖고 뭔 돈이 되겠어!"
 
차곡차곡 종이 상자를 쌓아 고물상으로 옮기는 일은 만만찮은 일입니다.

폐지 줍는 게 생활비를 벌기도 하지만 거리 청소는 물론 환경과 재활용에 보탬이 된다는 걸 사람들은 알까요? 노인은 폐지 값이 이리되어서는 안 된다며 혀를 찹니다. 주름진 얼굴과 까칠한 검은 손을 보니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팍팍하고 고된 삶을 봅니다.

 
최근 경기 침체와 폐지 수출이 만만찮아 수급 조절이 안 돼 값이 너무 떨어졌다고 합니다. 생계가 달린 폐지 줍는 노인들의 삶까지 연결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거리에 쌓인 폐지. 폐지를 수거하는 노인들의 생계가 달린 일감입니다.

거리에서 폐지를 주우며 수고하는 노인들이 전국적으로 15000여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들에게도 수고한 만큼의 따뜻한 겨울은 언제나 찾아올까요? 국가의 정책과 이들에 대한 배려를 기대해 봅니다.

 
어느 지하철 스크린도어(안전문)에 게시된 시 한 수가 가슴에 닿습니다.
 
<종이 탑> / 권정남
 
새벽 골목길
종이 탑이 흔들리며 간다
손수레 위 신문지와 종이박스들
 
모자 눌러쓴 키 작은 노인
얼굴이 없다
전사(戰士)처럼 세찬 바람 뚫고
전봇대 지나 슈퍼 앞을 돌고 나면
탑은 한 칸씩 올라간다
 
무한 시공을 끌고 가는 저 수행자
세상을 거울처럼 닦으며
타박타박
빙판길 성지를 순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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