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덥혀주는 너른 반석, 석바위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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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덥혀주는 너른 반석, 석바위 일대
  • 유광식
  • 승인 2023.02.19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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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일기]
(98) 미추홀구 주안6동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석바위시장 내 태양도매상가, 2023ⓒ유광식
석바위시장 내 태양도매상가, 2023ⓒ유광식

 

입춘이 훌쩍 지나고,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돋아나는 시기다. 계절이 바뀌며 새롭게 반짝일 일상을 기대하는 것일 테다. 창밖의 아파트 단지가 대나무 순 돋듯 요란하게 올라오던 것도 잠시, 얼마 전부터는 하얀 옷(페인트)을 걸치는 중이다. 조만간 반딧불 빛을 내뿜으며 거주를 강렬히 표현할 것이다. 사람이 많아지고 덩달아 자동차도 많아지고 어쩔 수 없는 사고도 생길 것이다. 삶의 다양한 문제들에 균형을 맞추어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겠다. 내 능력 밖의 문제들에 있어서는 더없이 초라해질 따름이니 말이다. 이번 튀르키예ㆍ시리아 지진 피해를 보면서 나날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전체적으로 우리 지구 난방이 온전치 못해 보인다. 2월을 대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할지 되짚어 보면서 주안6동 석바위 일대를 거닐었다.

 

시장 가는 길(방앗간은 어디로?), 2021ⓒ유광식
시장 가는 길(방앗간은 어디로?), 2021ⓒ유광식
시장 공영주차장 담벼락 벽화(다정다감한 느낌이다), 2023ⓒ유광식
시장 공영주차장 담벼락 벽화(다정다감한 느낌이다), 2023ⓒ유광식

 

주안6동은 일명 ‘석바위’라고도 불린다. 옛 인천지방법원(현 인천가정법원)을 중심으로 석바위시장과 지하도상가, 삼미쇼핑, 르네상스 타워, 석암초, 인천여성복지관 등이 동심원을 그리며 자리한다. 경인국도가 지나고 부평으로 넘어가는 고개여서인지 흐름이 빠르고 복잡하다. 거리를 걷다보면 석바위, 석암 등의 명칭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바위산에 붙어 지낸 덕지덕지한 시간의 자취가 동네 곳곳에 깊게 스며있다. 시장은 지상과 지하로 나뉘어 동네의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지하엔 아무래도 물에 젖으면 안 되는 의류, 전자 등의 공산품이 많고 지상에는 농수산물, 먹거리가 많다. 그래서인지 지하의 희고 회색적인 부분과 지상의 붉고 푸른 부분이 서로 대비되곤 한다. 지하도시장은 에누리 판매(?) 중이었다. 고래 뱃속을 탐험하는 마음으로 지하도 뼈대를 따라가다 보면 출구 계단참을 오르게 된다. 바깥에 나서자마자 알싸한 바람이 덥석 몸을 휘감는다.

 

석바위 지하도상가(기약 없는 반가운 세일), 2023ⓒ유광식
석바위 지하도상가(기약 없는 반가운 세일), 2023ⓒ유광식
석바위시장 허기 충전소, 2023ⓒ김주혜
석바위시장 허기 충전소, 2023ⓒ김주혜
석바위시장 후문 입구(북동 방향이다), 2023ⓒ유광식
석바위시장 후문 입구(북동 방향이다), 2023ⓒ유광식

 

석바위시장은 제법 큰 시장이다. 비탈진 곳에 다닥다닥 붙은 상점이 길게 수놓아져 있다. 바로 얼마 전 ‘6시 내고향’ 프로그램에 등장하기도 했다. 간혹 온 가족이 호떡집 앞에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호떡을 주인아저씨 대신 익히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마냥 훈훈해진다. 얼마 전에는 어머니의 단골 미용실이 집과의 거리가 꽤 되는데도 석바위에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놀랐다. 이제는 상인 계층도 부모 세대와 청년 세대로 나뉘는 것 같다. 혼자 일하는 점포도 있고 자매들끼리 하는 곳도 있고 말이다. 고개 능선을 타듯 석바위시장이 출렁인다. 시장 정문 인도에서는 노상 판매도 활발하다. 도로변이라 조금 위태롭긴 하다. 정류장 복권 가판점에서 벌어진 점원과 아저씨의 거스름돈 언성에 귀가 솔깃해졌다. 어르신들의 움직임이 많아서인지 규모 있는 약국이 몇 군데 보이고, 건강보조식품 판매점, 의원 등이 밀집되어 있다. 삼미쇼핑 건물은 마치 옛 시절의 골목대장처럼 기골이 장대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처절하다. 

 

경원대로 옆 인도(평소에도 인파가 붐빈다), 2023ⓒ유광식
경원대로 옆 인도(평소에도 인파가 붐빈다), 2023ⓒ유광식
삼미쇼핑(한 시대를 풍미한 흔적이 역력하다), 2023ⓒ유광식
삼미쇼핑(한 시대를 풍미한 흔적이 역력하다), 2023ⓒ유광식

 

길 건너편으로 법원이 보인다. 어! 학익동에 있는 것 아닌가 하고 갸우뚱할 수도 있겠지만 인천지방법원이 2002년 학익동으로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 인천가정법원이 2016년부터 단독으로 둥지를 튼 것이었다. 법원에 출입해야 할 당사자 입장에서는 방문이 즐거울 리 없다. 심각한 문제의 발생으로 조정과 협의, 판단을 거치는 과정이니 표정이나 기분이 딱딱하게 굳어지기 마련이다. 법원의 경직된 분위기가 구역의 분위기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화합과 균형의 다음 환경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참고 견딜만하다면 모르겠다. 삶이 정밀해지면서 갈등도 이와 비례하여 발생한다. 분명 잠자던 솔로몬도 일으켜 세울 시대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매일 각종 사건ㆍ사고가 신문의 첫 페이지를 도배하는데, 법원의 판결 속도는 이에 보폭을 맞추고 있을까 궁금한 적이 많았다. 

 

인천가정법원, 2023ⓒ유광식
인천가정법원, 2023ⓒ유광식
르네상스 타워 뒤편의 석암아파트(마흔이다), 2023ⓒ유광식
르네상스 타워 뒤편의 석암아파트(마흔이다), 2023ⓒ유광식

 

법원 옆을 오르며 뒷 유리에 손 글씨로 ‘왕’이라고 써 놓은 차를 발견했다. 엉뚱하면서도 사연이 있을 법도 했다. 법원 옆이라 ‘왕’이라는 단어는 많은 상상을 들춘다. 법원 근처에는 석암초, 석암아파트가 바위산의 망루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오래된 컴퓨터 보드, 회로기판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내가 전자가 되어 동네라는 회로 속을 돌아다니는 것과 흡사하다. 전기의 공급 여부에 따라 특별하기도 혹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부분으로, 매 칼끝을 걷듯 좌와 우가 번갈아 스친다. 우열을 가리는 건 아니지만 선택의 갈림길에서는 정답으로 이해될 수도 있어 유의할 따름이다. 

 

여성복지관 뒤편에 자리한 미용실(출입 후 여왕이 될 것이다), 2023ⓒ김주혜
여성복지관 뒤편에 자리한 미용실(출입 후 여왕이 될 것이다), 2023ⓒ김주혜
경인국도 옆 주택가(우리 건강 지킴이 명소), 2023ⓒ김주혜
경인국도 옆 주택가(우리 건강 지킴이 명소), 2023ⓒ김주혜

 

아직도 패딩 점퍼를 입고 다닐 정도이니 분명 따뜻한 날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후의 볕이 좋아서였는지 바위에 앉아 햇볕을 쬐던 어떤 날이 떠올랐다. 따뜻한 돌의 온기와 드넓은 풍경에 꿈꾸기 좋았던 기억이었다. 눈살 찌푸리는 일들이 많은 요즘, 자연재해와 각종 사건 및 사고에 공감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범위에서 행동한다면 난방비 폭탄이 아니라 타버린 장판 밑의 아랫목처럼 기운이 펄펄 끓어오를 것이다. 아직도 우리 곁에는 여러 가지 갈등의 소지가 크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차고 딱딱한 마음을 덥혀줄 약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다시 집으로, 생활로 향한다.

 

석바위 히트상품(생활 묘약), 2023ⓒ유광식
석바위 히트상품(생활 묘약), 2023ⓒ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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