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 배우러 오는 제자가 있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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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 배우러 오는 제자가 있어 행복합니다”
  • 김경수 기자
  • 승인 2023.02.28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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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대 사람들] 김묘선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전승교육사
국내와 미국,·일본 등에서 승무 전수소 14곳 운영

“승무는 우리 전통춤의 가장 기본적인 춤이자 모든 춤사위를 담고 있습니다. 승무를 모르면 한국춤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죠. 장단의 변화가 다 담겨있어요. 그럼에도 어렵지 않습니다. 호흡부터 배우면 누구나 쉽게 터득할 수 있습니다.” 승무로 전통춤을 시작하면서 평생을 그 춤과 함께 살아온 김묘선 명인의 승무 예찬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전승교육사에 오른 것은 지난 2020년 말이다. 그해 12월 문화재청은 이전까지 쓰던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조교’라는 명칭을 '전승교육사'로 변경하고 이수자를 양성할 수 있는 전수교육 권한을 준다.

우봉 이매방 스승을 만나 전통춤을 배운 지 7년만에 (1989년) 승무 이수자가 됐다. 이후 일본을 무대로 활동하던 2005년 전수조교로 선정된 그다. 전승교육사라는 명칭을 받기 이전부터 이미 승무를 전승하는 일에 온시간을 들여 매진해왔다.

“올해는 신년 맞이를 미국에서 했습니다. 연초부터 ‘워싱턴 김묘선 전수소’에서 제자들과 승무 이수교육을 했죠. 또 이기간 워싱턴 미주한인재단이 버지니아 페어팩스고등학교에서 연 ‘미주 이민 120주년 기념행사’와 ‘제18회 한인의 날 기념 축전’에서 공연도 했습니다.”

일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곧바로 남부뉴저지로 날아가 통합한국학교 한국무용단 집중연수와 공연, 북부뉴저지에서 승무강습과 홍보대사 임명 축하공연을 각각 올렸다. 또 재미차세대협의회(AAYC) 초청으로 한국커뮤니센터 한인동포회관에서 전통춤 무대도 선보였다. 모두 지난 1월에 해낸 일들이다.

미국에는 5곳의 김묘선 전수소가 있다. 워싱턴, 휴스턴, 뉴저지, LA, 오스틴에 이른다. 일찍이 ‘한국춤의 세계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로 2008년부터 미국에서 공연과 워크숍을 이어왔다.

“당시 아들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UCLA 교환교수로 임명되면서 5년간 여름·겨울방학 기간을 이용해 이수자 강습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미국에서 승무 교육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전수소는 일본에도 여러곳 있다. 도쿠시마를 비롯, 오카야마, 나고야, 요코하마, 오오사카까지 다섯곳이다.

일본에 전승 교육장이 많은 것은 그의 인생 여정을 볼 때 당연한 일이다.

“제가 이끌던 무용단을 데리고 일본 시코쿠 도쿠시마에서 공연을 한 뒤 대일사라는 절에서 묵은 것이 제 인생을 바꾼 연이 됐습니다.” 그의 춤에 반한 대일사 주지가 청혼을 한 것이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하고싶은 대로 전통춤을 이어가라고 응원해줬습니다. 10여년을 온통 승무 전승에 바쳤습니다. 그 결과 이례적으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저에게 전수조교라는 직책이 주어졌습니다.” 그후 또 15년을 쉬지 않고 승무 무료강습을 이어갔다.

 

일본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전승교육을 재개한 것이 지난 2020년이다.

사실 그즈음 그에겐 아픈 상처가 있다. ‘전승교육사’ 이야기로부터 비롯된다.

한해 앞서 (2019년) 문화재청이 승무 국가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를 선정하면서 전수조교였던 그를 제치고 이수자를 보유자로 지정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맞서 그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승무를 시연하면서 선정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시위를 벌였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만, 그 여파로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 개정, 전수조교를 없애고 전승교육사라는 명칭이 생겨난 것이죠. 당시에는 많이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수자 교육에 적극 나설 수 있는 전승교육사가 된 것이 하나의 분기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어느새 상처는 아물고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한다.

한국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동안의 무료강습은 접고 교육생을 받기로 했다. 우선 인천 구월동에 승무전수소를 열고 본격적인 전승 교육에 나섰다. 동시에 부산 수영구에 ‘우송춤방’을 열고 특강을 시작했다. 그 이듬해엔 목포 ‘우봉 이매방 춤전수관’에서, 또 그 다음해엔 대전 목은대에서 승무 전수 강습을 했다.

“인천, 부산, 목포, 대전을 두루 돌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2월 18~19일)에는 전국의 춤꾼들과 목포에서 승무연수회를 했어요. 밤 늦게 인천으로 돌아와서 오늘 아침 일찍부터 일본과 미국 전수소에 모인 교육생들을 놓고 비대면으로 강습을 진행했습니다.” 실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선생이다.

“지나보니 예능보유자 지정에서 제외된 순간엔, 아주 잠깐, 춤인생에 대한 후회를 했었습니다. 그후 이수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많은 제자들을 보면서 마음을 점점 비울 수 있게 됐죠. 춤을 추면 마음이 아주 편안해집니다. 게다가 나에게 춤을 배우기 위해 오는 제자가 있다는 것, 한없이 행복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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