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물감을 칠한 뒤 성근 천을 얹어 한올한올 풀어가면서 형상을 만든다. 완성된 작품엔 산이 솟아 나고 강이 흐른다. 바로 비무장지대(DMZ) 풍경이다.
윤혜인 작가가 ‘길을 터주오’라는 타이틀의 개인전에서 내보이고 있는 작품들이다.
부평 십정동 ‘갤러리 밀레’가 신진작가 공모에서 윤 작가를 선정, 이달 1일부터 31일까지 초대전을 열고 있다.
“‘DMZ를 따라 흐르는 강과 태백산맥은 한반도에 걸쳐 이어져 있습니다. 반면 생명의 기운과 우리의 정신은 이분법적 관계에 의해 억압당하고 갈라져 있는 상황이지요. ’길을 터주오’라고 제목을 붙인 것은 다시 물길을 터서 단절된 관계와 길을 잇자는 의미에서 입니다.” 작가가 전시 의도를 설명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작업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할아버지가 이산가족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어느날 할아버지 방 장롱 속 상자에서 해진 천 조각에 쓴 큰할아버지의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손바닥만한 천에 적힌 글들은 닿을 수 없음에도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써놓은 내용으로, 마주한 순간 큰 파장으로 다가왔습니다.”
피상적인 관계가 천 위의 편지를 통해 본질적인 관계로 발전하는 순간이었다고 푼다. 천을 이용한 작업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천의 섬유조직을 분해하고 이를 일련의 표현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섬유 오라기를 겹겹이 쌓고 엮는 과정을 거쳐 형상을 만들어간다. 혹은 닥 섬유가 켜켜이 쌓인 한지를 사용해 할아버지 모습을 형상화했다.
화면에는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틈’이 눈에 띈다. “의도적으로 만든 틈은 할아버지를 경험했던 느낌입니다. 틈을 만드는 것은 할아버지 존재와 DMZ와의 본질적인 관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작가는 경계사이에 불가분의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그 경계는 지속적인 노력으로 분명 해체될 수 있다고 부연한다.
“3.8선이라는 경계에 의한 물리적 단절에서 초래된 오랜 시간의 갭이 심리적 단절로 이어지면서 오해와 골이 깊어졌다고 봅니다, 우리가 하나였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단절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제 작품을 통해 분단 뿐만 아니라 모든 단절을 넘어설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