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을 말하는 건 지지부진하고 지루한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처절하고 끔찍하고 암담하다. 여성혐오 및 차별로 인한 개인적·사회구조적 피해는 실제로 존재하고, 가난과 여러 악재가 겹치면 절대로 풀리지 않는 악몽과도 같아진다. 하지만 여성인권은 가시화되어 우리 모두의 숙제로 다가오질 않는다. ‘메갈리아’ 같은 문제적 커뮤니티가 없어진 이후 관심의 이탈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어제(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동자와 여성은 희생양이 돼 어느 때 보다 힘들게 생존하고 있다”며 ”민주노총은 100년 전과 달라지지 않은 독박돌봄, 저임금, 성차별적 고용관행에 맞서 윤석열 정부의 퇴보를 막아내는 투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는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노조, 사무금융노조, 공무원노조, 서비스연맹 돌봄서비스노조 관계자 등 10여명이 참석했다. ‘장시간 노동 여성저임금 고착’, ‘돌봄 위기는 성평등의 후퇴’, ‘성폭력이 만연한 세상에서 여성의 삶이 위험하다’는 내용은 피켓을 통해 전달했다.
노동, 가사, 안전, 여성의 삶을 관통하는 3가지 절대명제는 영원한 우리의 숙제이다. 하지만 각 분야 전문가 10여명이 모여 기자회견을 한다고 대중은 주목하지 않는다. 여성이 장시간 노동이란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저임금밖에 받지 못하는 현실을 고발해도, 고발자를 향해 “페미니스트? 남녀 상관없이 모두 다 힘들다.”라는 말을 돌려받는다.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혹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 기자회견을 순간을 찍어 유튜브에 올린다고 해도 조회수는 몇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시적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자극적인 말을 도배하는 것도 의미는 없을 것이다.
여성인권에게 필요한 관심은 ‘힘들다’보다는 ‘무엇을’, ‘어떻게’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고칠 것인지 고민해야하기 때문이다. 여성인권운동에 기자회견이, 성명서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부수적이 되어야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대안으로 내세울 것인지는 이 또한 난제다. 여성의 고통을 불행포르노마냥 전시할 수는 없다. 가상의 캐릭터가 아닌 현존인물의 삶을 존중 없이 다룰 수 없고, 너무 고통에 집중하다보면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옅어진다. 그리고 너무 끔찍한 고통은 공감과 연민보다는 회피를 불러일으킨다. 잠시 타인의 삶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부담으로 느껴진다.
결국 여러 고민이 겹치고 겹치다보면 뭉뚝한 단어가 삶을 대변한다. 돌봄노동, 여성저임금, 여성폭력과 같이 학술용어와 같은 단어들. 하지만 여성의 삶은 정제된 단어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어떤 사람은 미투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에 미쓰리 운운하며 농담하거나. 목소리가 너무 섹시하니까 노래를 불러보라는 상사를 견딘다. 또 어떤 사람은 누가 너 같은 걸 써주겠냐며 자신을 폄하하는 폭언을 견디고, 남들도 다 이렇게 한다는 말로 불필요하게 과중한 임무를 떠맡는다.
기사 지면은 한정되어있고 대중의 관심도 숏폼처럼 짧은 순간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는 보통 통계자료로 변화해 전달된다. 모든 여성의 삶을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고, 이게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전달하기에 적합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퍼센트로 이뤄져있는 숫자에 감정적으로 이입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숫자에 몰입하여 ‘무엇을’ ‘어떻게’ 개선할지를 고민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결국 통계자료는 보조가 되어야한다. 숫자 위로 사람이 드러나도록 숫자에 감정적인 면면이 배어들게 말해야한다. 여성인권은 시급한 문제라고, 정말 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있다고, 그러니 너와 나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자고.
근 3년간 취업난에 코로나19 대유행까지 겹치면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만큼 여성노동은 주목을 받아야 마땅할 문제가 됐다. 2020년 여성가족부의 ‘청년의 생애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미래 전망 연구’에 따르면, 우울감·무력감 등을 느끼는 비율은 남성(31.4%)보다 여성(45.7%)이 14퍼센트 이상 높았다.
그럼에도 여성노동자가 다치거나 아플 때 이를 인정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 따르면 산업재해 승인을 받는 남녀 비율은 약 8 대 2로 남성이 압도적이고, 그중 질병재해 승인은 남성의 4분의 1 수준이다. 이는 산재를 인정하는 기준 자체가 ‘남성 육체노동자의 노동’에 초점이 맞춰져있기에 나온 결과다. 하지만 정부가 정책적으로 관심 갖는 여성노동문제는 임신·출산 등 재생산 관련 분야에만 한정되어 있다.
아르바이트, 프리랜서 등으로 일하는 여성노동자는 기댈 노동조합조차 없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4.2%(2021년 기준)에 불과하고, 30명 미만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노조에 가입한 이는 0.2%뿐이다. 2021년 기준 민주노총 조합원 중 여성은 35.9%인데 조합원 평균연령은 45.6살이다. 즉, 많은 청년은 양질에 일자리에서 밀려나 조합에 도움 없이 개인적으로 직장 내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 해결책이 휴직 아니면 사표인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개인이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해야 할 것은 ‘고용보험’이나 ‘실업급여’를 태그하는 것일 수 있다.또한, 시급히 처리해야할 문제를 주기적으로 언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주 52시간의 유연화’를 골자로 하는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은 정말 주목해야할 문제다.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는 현행 주 52시간 제도에서 주 단위 연장 근로시간을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긴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확정하고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 안대로라면 최대 주 69시간 노동이 합법적으로 가능해진다. 이는 안 그래도 열악한 여성노동시장을 더 악화시키는 끔찍한 개정안이다. 이게 얼마나 시급한 문제인지를 알리기 위해서 야당의 대변인 발화와 전문가의 경고안과 한국노동자들의 노동실태조사 등을 다 끌어올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전달하는 게 더 필요할 수 있다.
나의 경험이 뉴스나 매체가 전달하는 숫자 위로 보이게 하는 것. 그로 인해 이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 바쁜 하루 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관심을 갖고 의사표현을 하게 하는 것. 이 모든 게 여성노동인권을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지금 바로 당신만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