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남학회 임원들이 펴낸 허균전집 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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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남학회 임원들이 펴낸 허균전집 6권
  • 송정로 기자
  • 승인 2023.03.0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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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진 소남학회 회장, 허균 저술 9종 번역, 6권으로 간행

인천 소남학회 회장 허경진 교수 등 소남학회 임원들이 허균의 저술들을 수집, 번역하여 6권의 책으로 간행했다.

강원도, 강릉시, 양천허씨강릉종중의 지원을 받아 기존 문집에 실리지 않은 허균의 저술 9종의 번역, 소장처의 허락을 받아 출판했다. 『학산초담』(1593년 25세)부터 허균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편찬한 왕안석의 시선집 『송 왕형공 이체시초』(1617년 49세)까지 9종의 저서를 200자 원고지 11,637매 분량으로 번역하여 6권으로 펴낸 것이다.

허 교수가 연구책임자로 소남(인천의 실학자 윤동규, 1695~1773)학회 임원(편집위원장)인 심경호 교수(고려대), 구지현 교수(편집위원, 선문대)와 함께 번역했다.

『홍길동전』의 작가로만 알려졌던 허균(1569-1618)은 문집 『성소부부고』 26권 외에도 수십 권의 저술이 있었는데, 재판도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으면서 모두 흩어졌기에 그의 참모습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현재 『성소부부고』만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번역되어 있다.

허균의 저서는 문집을 비롯하여 모두 필사본으로만 전하는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시를 뽑아서 비평한 『국조시산』 10권과 부록 『허문세고』는 후대에 광주부윤 박태순이 허균의 서문을 삭제하고 순서를 바꾸고 비평을 산삭한 목판본이 영인되어 널리 알려졌있다. 하지만, 이번 전집에서는 허균이 직접 사자관 이해룡, 송효남 등의 명필들에게 필사케 하고 ‘교산(蛟山)’이라는 인장을 찍은 수택본을 번역하였다.

당시(唐詩) 절구를 편집한 『당절선산(唐絶選刪)』 10권에는 허균의 이름과 인장이 찍혀 있던 자리를 도려내고 그의 처조카인 김세렴의 장서인이 찍혀 있는데, 김세렴이 역적으로 처형당한 고모부 허균의 수택본을 간직하여 후세에 전했음을 알 수 있다. 동서 당쟁이 시작될 때에 동인의 영수가 허균의 아버지인 초당 허엽과 김효원이었는데, 김효원이 바로 허균의 장인이다.

허균은 43세 되던 해에 자신의 문집인 『성소부부고』 26권을 스스로 편집하였는데, 문집에 포함되지 않은 저술이 그보다 훨씬 더 많다. 50세 되던 해 여름에 체포될 것을 예감한 그는 공개되지 않았던 자신의 저서들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딸네 집으로 보냈다.

외손자 이필진이 52년 동안 간직하고 있던 유고를 자신이 세상 떠나기 1년 전에 발문을 써서 공개하여 『성소부부고』가 세상에 알려졌고, 제목만 알려졌던 나머지 저서들은 실전(失傳)된 것으로 여겼다.

작은 형 허봉의 명나라 사행록인 『조천기』 뒤에 함께 제본되어 있던 허균의 『을병조천록』이 16년 전에 처음 발견된 것을 비롯하여 몇 권의 존재가 학계에 알려졌지만, 연구자나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작은형 허봉은 유배지에서 돌아온 뒤에 인천에 머물며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그의 첩이 『인천부읍지』 열녀 항목에 첫 번째로 소개된 이조이[李召史]이다. 문집 『성소부부고』에는 유학에 관한 글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죽기 2년 전에 기록한 『을병조천록』에는 퇴계 이황과 월천 조목을 거슬러 주희의 학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바뀐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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