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오 홍진 선생을 인천이 기억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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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오 홍진 선생을 인천이 기억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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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1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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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오홍진선생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 한시준 독립기념관장 초청 특별 강연

인천 만국공원(자유공원)에서 선포한 한성임시정부 탄생에 핵심 역할을 했고, 상해임시정부 8대 국무령을 역임한 만오 홍진 선생을 기억하기 위한 ‘한성임시정부 13도대표자회의 104주년 기념 특별강연’이 13일 오후 7시 인천시교육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만오홍진선생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가 마련한 첫 번째 사업으로 이 자리에는 한시준 독립기념관장이 강사로 참여해 ‘만오홍진선생을 인천에서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주제로 강연했다.

한시준 관장은 강연에서 “만오 홍진 선생이 1919년 9월 통합 상해임시정부가 출범했음에도 대통령 이승만과 국무총리 이동휘선생께서 서로의 입장 차이로 취임도 하지 않고 갈등할 때 본인의 ‘희생’을 전제로 설득해 취임식을 치루게 해서 정식으로 모양을 갖춰 출발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 이후에도 다시 갈등과 분열 속에 임시정부가 표류하게 될 때 다시 한번 홍진선생이 국무령에 취임하면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홍진 선생은 세번씩나 임시의정원 의장을 할 정도로 의정원에서의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1942년 마지막 20대 임시의정원 의장을 맡아 당시 한국독립당과 조선혁명당이 좌우로 나뉘었다. 홍진 선생은 이 반쪽짜리 의정원 의장이 되었는데, 좌우를 모두 임시의정원으로 받아들여 여야가 있는 명실상부한 국회로, 좌우 통합 국회로 만들었다.

한 관장은 “나아가 이렇게 정부와 국회에서의 활동에만 그치지 않고 만주로 가서 독립 무장투쟁도 전개했다”고 말했다.

또 “상해임시정부 요인 중 정부와 국회 모두에서 수반이 된 인물은 만오 홍진 선생이 유일할 정도로 뚜렷한 분이었지만, 당파적이지 않고 너무 자기희생적이고 꼿꼿하여 주변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것이 이 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한 관장은 현재 국회도서관 중앙홀 가운데에 ‘만오홍진선생기념 상설 전시관’이 생겨난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만오 선생은 대한민국 국회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이기에 국회를 잘 활용하고, 홍진 선생이 구한말 법관양성소 출신이자 변호인도 했으니 서울대 법대와 변호사협회 등도 그곳 시원과 홍진 선생과의 인연을 연결하면 협력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이날 강연에는 신용석 전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이 격려사를 하고 한국 독립운동과 관련한 저서를 다수 출간한 이원규 소설가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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