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나무 가지 끝에 피어난 봄, 시천나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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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 가지 끝에 피어난 봄, 시천나루에서
  • 유광식
  • 승인 2023.04.0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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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일기]
(101) 검암역(시천교)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봄꽃이 핀 가운데 최상의 전망대, 2023ⓒ유광식
봄꽃이 핀 가운데 최상의 전망대, 2023ⓒ유광식

 

길가마다 진달래와 개나리, 목련이 자태를 드러내며 봄을 알리느라 분주하다. 미세먼지 낀 날이 종종 있지만 참고 돌아다닐 만하다. 바라던 꽃구경을 가는 것인지 거리와 공원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많아졌다. 도서 대출을 위해 방문한 도서관 안이 시장통을 방불케 했으니 예전과는 꽤나 달라진 느낌이다. 몇 년간 입 꾹 닫은 지역축제도 다시 준비되면서 이동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4월은 들뜨기 마련이나 안전과 관련한 여러 사건과 생각들로 숙연함도 몰려온다. 또한 마니산에 큰 불을 보며 ‘산불조심’을 새기게도 된다. 가까이 경인아라뱃길 시천나루로 나섰다. 

 

인천지하철 2호선과 시천교, 2023ⓒ유광식
인천지하철 2호선과 시천교, 2023ⓒ유광식
시천공원에서 바라본 시천가람터(뒤로는 계양산도 보인다), 2022ⓒ유광식
시천공원에서 바라본 시천가람터(뒤로는 계양산도 보인다), 2022ⓒ유광식

 

경인아라뱃길을 넘어 다닐 수 있는 큰 다리는 세 개가 있다. 백석교와 시천교, 계양대교가 그 주인공인데, 가운데 위치한 시천교 주변은 나루에 정박한 봄의 도약을 은밀히 하역하고 있었다. 접근이 다소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차량 이동이 많은 가운데 자전거와 인근 주민의 도보길로 이용되는 중요한 길목이다. 시천나루의 동쪽편 매화동산을 시작으로 서쪽을 향해 걸어 보았다. 이름처럼 동산에는 희고 붉은 매화나무가 많이 심겨 있었다. 예로부터 아치고절(雅致高節) 매화라 일컬어지며 아담한 풍치에 높은 절개를 말해 준다. 동산에는 완전히 피어오르진 않았어도 산책 나온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에 충분한 봄꽃들이었다. 나무들 사이사이로 사진을 찍으며 꽃을 담는지 사랑을 담는지 추억을 담는 상춘객이 많다. 대나무와 소나무도 매화나무와 더불어 동산의 친구들로 함께 기대며 자라고 있었다. 

 

매화동산 입구, 2023ⓒ유광식
매화동산 입구, 2023ⓒ유광식
꽃구경 나온 어르신들, 2023ⓒ김주혜
꽃구경 나온 어르신들, 2023ⓒ김주혜

 

동산에는 무언가를 알리는 커다란 돌이 하나 있다. 바로 검여 유희강 선생(1911~1976) 생가마을을 알리는 알림판이다. 아주 먼 이야기는 아니지만 유희강 선생은 뛰어난 서예가이자 미술가여서 인천 시민이라면 이름 정도는 들어 봄 직했을 것이다. 인근 검암도서관에는 유희강홀이 있고 검암역(2호선) 환승 통로에서 그의 필적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인천에 남아 있지 못하고 서울에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유족의 기증 의사를 거부한 결과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 대다수의 작품이 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복제된 서체를 보면서도 안전하지 않은 느낌이다. 유희강 선생은 반신마비 특성을 극복하고 좌측 손으로도 글씨를 써 발표함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토록 놀라운 이야기가 너무 가볍게 게시되고 있다는 생각에 ‘생가마을’이 아니라 ‘생각마을’이었던 순간이었다. 

 

항아리원과 산책에 나서는 사람들, 2023ⓒ유광식
항아리원과 산책에 나서는 사람들, 2023ⓒ유광식
검여 유희강 선생 생가마을을 알리는 큰 돌, 2023ⓒ유광식
검여 유희강 선생 생가마을을 알리는 큰 돌, 2023ⓒ유광식

 

동산 주변에는 가만히 하늘을 보거나 정성껏 싸온 음식을 먹거나 반려동물과 산책하며 나들이 기분을 내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많았다. 오래된 스낵 트럭에서 호떡을 부치는 모습이 신기했고 주차장에서 사과를 부려 놓고 파는 트럭도 이색적이었다. 강바람을 맞으며 비탈면에 앉아 마시는 커피(매화꽃 하나 동동 띄운)는 과연 어떤 맛을 전해 줄까? 순간 비둘기 한 쌍이 서로의 목덜미를 부비며 행복을 속삭이고 있었다. 연날리기 행사도 열린다고 하던데 나뭇가지가 붙잡은 연 하나는 1년 내내 발버둥질할 것이다. 

 

적기를 맞아 자태를 뽐내는 매화꽃, 2023ⓒ김주혜
적기를 맞아 자태를 뽐내는 매화꽃, 2023ⓒ김주혜
매화동산 앞 주차장에 자리 잡은 간이매점, 2023ⓒ유광식
매화동산 앞 주차장에 자리 잡은 간이매점, 2023ⓒ유광식

 

좀 더 걸어가니 시천교 아래 나루터이다. 인근에는 커다란 물놀이 시설이 있다. 올해는 다시 개장할 듯싶었다. 자전거 대여소가 있고 매점도 좀 더 보이고 특히 서해5도수산물회센터가 있어 당돌한 장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것저것 많은 가운데 나루에 오가는 배만 없다. 남북으로 뻗은 도로와 철로에는 자동차와 기차가 오가지만 동서로 뻗은 수로엔 그 흔한 오리배 하나 보이지 않는다. 어린이 놀이터에 배 비스름한 놀이기구가 있을 뿐이다. 

 

야자나무도 있는 대규모 물놀이 시설(올해 재개장 예정), 2023ⓒ유광식
야자나무도 있는 대규모 물놀이 시설(올해 재개장 예정), 2023ⓒ유광식
시천나루 어린이 놀이터(아이 부모도 덩달아 신이 난다), 2023ⓒ유광식
시천나루 어린이 놀이터(아이 부모도 덩달아 신이 난다), 2023ⓒ유광식

 

나루 건너엔 검암경서 생활문화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센터 이용객이 늘며 문화 활동이 활발해지는 시민문화의 장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센터 바로 뒤로는 뱃길 공사로 2002년 이사했던 노거수들의 작은 보금자리가 있다. 마치 나무들의 양로원처럼 말이다. 제 2의 인생을 사는 나무들의 건강도 빌어 본다. 또한 시천나루 주변으로는 체육시설이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기분전환에서 더 나아가 건강충전소 역할도 빼놓지 않았다. 

 

시천공원 내 노거수(보호수)와 검암경서 생활문화센터, 2022ⓒ유광식
시천공원 내 노거수(보호수)와 검암경서 생활문화센터, 2022ⓒ유광식

 

계절의 변화가 가져다주는 예상된 혹은 뜻밖의 기분이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시천가람터에서 머리카락을 헝클어 재끼던 강바람이 귀찮으면서도 내심 미치도록 반가운 이유로 작용한다. 코로나로 긴 시간 닫아둔 문이 열리며 탁 트인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나루길을 걷는데 높은 옹벽 위로 나란히 주차된 차들이 보였다. 트렁크를 열고서 강변을 바라보며 호젓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에 덩달아 흐뭇했다. 각자의 방식대로 자차 캠핑(차량 개조)을 즐기고 있는 것이었다. 별것 아닐 수도 있었지만, 달라진 일상의 풍경이 상쾌함을 전파한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 곳곳의 몽우리가 터지는 봄이다. 팡팡~!  

 

몽우리 진 매화꽃, 2023ⓒ유광식
몽우리 진 매화꽃, 2023ⓒ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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