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선의 '소년' 창간호를 만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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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의 '소년' 창간호를 만나며
  • 곽현숙
  • 승인 2023.04.03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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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책방거리에서]
(5) 최남선의 '소년' 창간호 - 곽현숙 / 아밸서점 대표

 

책방의 오래된 잡지들을 정리하다가 최남선 선생이 창간한 종합잡지 '소년' 영인본을 만났다.

표지 글들은 우에서 좌로 쓰여 있거나 위에서 아래로 읽는 세로로 배열된 (구)한글과 한문 혼용문이다.

맨 위에는 - 隆熙 二年 十一月 一日 發行 - (1908년 11월1일) 바로 밑에 초록색 월계수 잎이 둥글게 뻗은 그림 안에 ‘少年’이라는 이름이 크게, 정감 있는 한문으로 제목을 뽐낸다. 그 밑에는 -第 一 年 第 一 卷- 창간호임을 밝히고, 양 옆 가는 분홍색 줄 안엔 잡지를 내게 된 의도를 띄어쓰기 없이 내리 글로 쓰여 있다. 

우측엔,

에我帝國아제국은우리소년의智力지력을資하야我國歷史아국역사에大光彩대광채를添하고세계문화에大貢獻대공헌코뎌하나니그任은重하고그責은大한디라

좌측엔,

본지는此責任차책임을克當극당할만한活動的활동적,進取的진취적,發明的발명적,大國民대국민,을養性양성하기를爲하야出來출래한明星명성이라新大韓신대한의少年소년은須臾수유라도可難가난티못할디라] 라며 잡지를 빛나는 별로 말한다.

표지를 넘기니 ‘소인국 표류기(걸리버여행기)’ 안내문과 책 주문규정, 광고가격목록, 우편비, 발행처 新文館... 본지 첫 장에는 간행하는 취지에 대하여 큰 글씨로 

[우리大韓대한으로 하야곰 少年소년의 나라로 하라 그리하랴 하면 能히 이 責任책임을 堪當감당하도록 그를 敎導교도하여라.] 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잡지가 비록 적으나 이 목적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쓰어 있다. 소년도 그들을 선도하는 부형들도 구독하기를 간절하게 권하고 있다.

다음 목록 장에는 27개의 작고 큰 명제들 밑에 저자와 번역자의 이름이 없다. 오랫동안 책을 만져 온 사람으로서 이 정도의 잡지 형태라면 현재의 어떤 잡지보다도 단단함이 덜하지 않은데 싶어 2015년에 잡지 수집가 서상진 선생을 초대하여 한국잡지백년에서 발췌한 내용을 찾아보니, 

[1908년11월에 창간된 소년 잡지는1911년5월 통권 23호로 종간된 월간 계몽지이다. 최남선이 18세에 독자를 상대로 본격적으로 판매한 잡지로서 처음에는 혼자서 집필과 편집, 발행까지 도맡아 시피하였으며 14호에 이르러 이광수, 홍명희가 글로 가담하였다 3권 8호에 발매금지로 정간 당했으며 1910년 3개월 후에 속간되었다.]

13회에 걸치도록 혼자 글을 쓰고 편집해서 잡지를 만들어 냈다는 기록이다. 

목록 뒷장에는 다음호인 2권의 목록이 전면을 꽉 차도록 글자의 크기로 강약을 넣어가며 소개하고 있다. 한쪽씩 넘기니 일제 복을 입은 일본으로 간 황태자와 이등박문의 사진이 있고, 나이야가라 폭포가 있고, 페터 대제 사진이 있다. 다시 속표지가 재연되며 다음 장에 ‘海에게서 소년에게’가 2,3,4 세 쪽을 분홍색 태극무늬의 테두리 윗선과 물길 무늬의 아랫선 사이로 초록의 글들이 가슴을 치며 들어선다.

1단 전면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체시로 잘 알려져 있는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게재했다.

 

海에게서 소년에게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따린다, 부슨다, 문허 바린다,

泰山갓흔 놉흔뫼, 딥태갓흔 바위ㅅ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까디 하면서,

따린다 부슨다, 문허버린다,

텨,,,,,,,ㄹ썩, 텨,,,,,,,ㄹ썩, 텩, 쏴,,,,,,,

 

 

그러므로 2단,3단, 4단에서 바다는 세상에 자랑으로 서있는 군상들이나 모리배들은 자신에 상대가 될 수 없다고, 5단에 자신의 짝은 하늘이라며 6단에서 저 세상 저 사람들 모두 미우나 담 크고 순정한 소년들 나의 품에 안기라고 바다는 소년들에게...... 사랑의 품으로 다가 선다.

 

‘갑동이와 을남이의 대화에서는 쉬운 말로 자연계를 소년들의 지적욕구를 풀어내고 봉길이 지리공부에서는 일본지리학자 고또가 우리 한반도의 지형을 옹그리고 있는 토끼로 비유한데 대하여 호랑이를 한반도 지도그림으로 지면을 통해 당당한 반론을 폅니다.’

 

대한제국의 왕이 일본천왕에게 알현하는 일에 유학생 대표로 반대 운동을 한 죄로 일본대학에서 퇴학당한 최남선이 중고 인쇄기계를 일본에서 들여와 혼신을 다해 빚어낸 한국 최초의 잡지가 '소년'이다.

그리고 1919년, 최남선은 기미 독립선언서 초안을 썼다. 그러나 그가 출옥 후 일찌감치 변절하여 해방에 이르기까지 뚜렷한 친일 행적을 보였으니, 1908년 '소년'과 그 잡지의 창간 시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의 천재적 문학성이 더욱 통탄스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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