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오일장에서 만나요” - 2·7일 강화읍장, 4·9일 온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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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오일장에서 만나요” - 2·7일 강화읍장, 4·9일 온수장
  • 김시언
  • 승인 2023.04.25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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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이야기]
(20) 강화 오일장

 

“강화 오일장에서 만나요!”

22일, 장날이다. 봄나물이 뭐가 나왔을까 궁금해 가 보기로 했다. 강화읍 오일장이 서는 날은 마을 앞 버스정류장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노인들이 단정한 차림으로 군내버스를 기다린다. 그들은 장날에 맞춰 병원 진료도 보고 장도 본다. 필자가 사는 마을의 할머니들은 장날이 되면 마음이 들뜬다고 했다. 한번 나갔다 와야 필요한 먹거리도 사고, 무엇보다 사람들 구경을 하고 오면 힘이 난다고 했다.

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 세 분을 태웠다. 할머니들은 각각 은행도 가고 미용실도 가고 병원도 간다고 했다. 그들은 각자 일을 마치고 장이 열리는 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처럼 시골에서 장날은 단조로운 일상을 잠시 벗어나는 탈출구이자 숨통 같은 구실을 톡톡히 한다. 현재 강화는 강화읍장과 온수장이 열린다.

 

 

2·7 오일장, 강화읍장

오늘 필자가 살 물건은 봄나물이다. 지난주에 왔을 때도 봄나물이 많이 나왔고, 이번에도 뭔가 새로운 게 나와 있을 것 같았다. 날이 따뜻하고 포근해서인지 상인들도 많이 나왔고, 물건을 사거나 구경하는 사람도 많았다. 주차장도 복잡하고 길도 복잡했다. 여기저기 기웃대다가 할머니들이 뜯어오거나 캐온 나물을 몇 가지 샀다.

참죽나무에서 나오는 가죽나물, 오가피, 질경이, 세잎국화. 담배나물(개망초)은 살까 말까 망설이다 사지 않았다. 담배나물은 어렸을 때 집에서 많이 먹어본 나물이라 무조건 사고 싶었지만, 집 앞에 어린 순이 많이 나오는 걸 봐서 직접 따 먹기로 했다. 인간은 채취하는 걸 천성적으로 좋아하는구나, 뭐 이런 시답잖은 생각도 했다.

강화읍장은 날짜의 끝날이 2일과 7일에 오일장이 열린다. 장이 서면 ‘장꾼’들이 물건을 갖고 나오고, 강화에 사는 할머니들이 곡물을 비롯해 나물류를 갖고 나온다. 장꾼은 전문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흔히 장꾼을 ‘장돌뱅이’라고도 했으나 이는 홀대해 부른 이름이었다. 예전 같으면 장꾼들은 지게에 물건을 가득 싣고, 또 그 위에 물건을 올리고 나왔겠지만 요즘은 자동차로 움직인다. 자리를 잡고 물건을 내리는 광경을 보면 손이 아주 빠르다. 이들 가운데에는 오일장을 순회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는 아직 장이 열리는 곳이 여럿 있는데, 2·7, 3·8, 4·9, 1·6, 5·10장 등 날짜의 끝날에 맞춰 열린다.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난전을 펼치고

강화읍장은 전문으로 장사하는 ‘장꾼’도 많고, 시골에서 곡물이나 채소를 들고 나온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많다.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주로 난전(亂廛)을 펼친다. 난전은 허가 없이 그냥 좌판을 펼쳐 놓은 걸 말하는데,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자리를 잡기 위해 첫차를 타고 나서기도 한다. 난전은 장사할 자리를 어지럽게 잡았다는 뜻이다.

물건을 팔러 온 사람과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 뒤섞여 강화읍장은 시끌벅적하고 활기차다.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들은 강화에 사는 사람도 많고, 장날에 맞춰 오는 도시 사람도 많다. 장날에 물건을 꼭 사러 오기도 하고 그저 눈요기를 하러 오기도 한다. 장에서 만난 50대 후반인 분은 서울 송정역 근처에 사는데 한 달에 세 번 정도는 온다고 했다. “3000번 광역버스를 타고 와요. 한 시간 정도 오면 이렇게 필요한 것도 사고 구경도 하니 얼마나 좋아요. 날마다 심심하게 지내는데, 장날 오는 게 나한테는 아주 특별한 일이에요.” 그는 표고버섯과 나물 몇 가지를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서울 사는 친구들이 꼭 장날에 맞춰 와.”

장날에 친구 모임이 있는 사람도 있다. “서울 사는 친구들이 장날에 맞춰 와. 저절로 모임이 됐지.” 강화에 사는 어떤 분은 장날에 친구들을 만난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친구들이 올 때 장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강화 경치 좋은 데도 한 번 돌다 보니 저절로 모임이 됐다.

예전에 우리네 장날이 그랬다. 장날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무슨 물건이 새로 나왔나 가 보기도 했다. 또 중매나 혼사 이야기도 오가기도 했다. 옛이야기에 보면 장날 이야기가 참 많다. 나무땔감을 해서 장에 나가기도 하고, 장날에 나갔다가 사람들과 한잔하기도 하고, 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를 만나기도 하고, 날이 어두워져 불이 켜진 집에 갔다가 꼬리 아홉 달린 여우도 만나고…. 이처럼 장날은 우리 삶과 오랫동안 함께했기 때문에 그 안에서 구수한 이야기도 함께 살아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장, 화도장은 사라지고

1970년대만 해도 강화도에는 네 군데 오일장이 섰다. 내가면 고천리 내가장, 길상면 온수장, 마니산 주차장 입구 화도장, 읍내장이 활발했다. 하지만 교통이 편리해지고 도시에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내가장과 화도장은 사라졌다. 2001년 8월에 완공한 초지대교가 생기기 전까지는 온수장이 활발했다. 김포에 사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강화군 초지나루에 닿으면 온수장이 가깝기 때문이었다. 온수장은 현재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다. 4·9장인데 날짜가 맞는다면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초지대교가 생기던 해에 필자가 강화도 장을 찾은 적이 있다. 내가장과 화도장을 찾았을 때 각각 트럭 한 대씩 있었다. 내가우체국 앞 공터에 옷을 잔뜩 실은 트럭이 있었고, 할머니 한 분이 손녀한테 줄 아동복을 골랐다. 또 화도버스정류장에는 그릇과 빗자루 등을 잔뜩 실은 트럭이 음악을 틀어 놓고 있었다. 20여 년 전 광경이었지만, 그때도 장이 활성화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장은 살려야 한다고 해서 여러 사람이 노력했는데 결국 없어졌다고 한다.

 

 

다음 장날이 기다려진다

장날 빼놓을 수 없는 게 먹거리다. 국화빵, 찐옥수수, 어묵, 꽈배기 등등이 장이 열리는 한복판에 있다. 어물전 옆쪽에는 한잔 걸칠 수 있는 음식점이 열리는데 인기가 꽤 좋다. 게다가 장이 열리는 옆에는 상설시장인 풍물시장이 있어 먹거리가 참으로 다양하다. 풍물시장 2층에는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는 식당가다.

봄이라 장날이 더 활기찼다. 장 구경을 하고 나오면서 구석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파는 ‘나물종합세트’를 한 바구니 더 샀다. 할머니는 산과 들에서 뜯거나 캐 온 나물을 잘 다듬어 내놓았다. 아직 봄바람이 차지만 주머니에 천 원짜리 몇 장 들어오면 손자 손녀에게 용돈도 쥐어주고 맛있는 음식도 해먹일 수 있단다. 그날 저녁, 할머니들이 다듬어 놓은 나물 몇 가지 덕분에 겨울을 이겨낸 봄나물을 실컷 맛볼 수 있었다. 다음 장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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