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 / 노무사, 민주노총인천본부 노동법률상담소
“아직도 건설 현장에서는 강성 기득권 노조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
“건설 현장의 갈취, 폭력 등 조직적 불법행위에 대해 검찰, 경찰,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가 협력해 강력하게 단속하라”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하게 단속해 건설 현장에서의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
“노조 기득권은 젊은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하는 약탈 행위”
지난 2월 21일 국무회의와 이후 진행된 추가 보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쏟아낸 말들이다. 국무회의 뒤 대통령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으로부터 건설 현장의 ‘갈취·폭력 등 조직적 불법행위’ 실태와 대책을 추가로 보고받고 “임기 내 건설 현장의 갈취·폭력 행위는 반드시 뿌리 뽑겠다”며 강도 높은 대책을 주문했다.
정부 기관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검·경은 합동으로 ‘건폭 수사단’을 출범시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 각각 타워크레인 조종사 등 특수기술자가 월례비(건설사들이 빠른 일처리를 위해 지급하는 사례비)를 강요하면 면허를 정지하고, 노조가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거나 레미콘·믹서 트럭 운전기사들이 집단 운송거부를 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서 건설노조를 노동조합이 아닌 사업자단체로 몰아세웠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국토부 전담팀 운영, 경찰청 200일 특별 단속(건설노조에 대한 “200일 전쟁”)을 해오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건설노조를 ‘조직 폭력배(조폭)’에 빗대 ‘건폭’이라 하며 불법과 부패 조직으로 매도하고 단속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경찰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을 ‘국민체감 3호 약속’으로 선언하며 지난해 말부터 건설노조의 불법행위를 잡는 경찰관에게 1계급 특진을 내걸고 마구잡이 수사를 벌였다. 지금까지 민주노총 건설노조 사무실 14곳을 압수수색했고, 16명을 구속하고 조합원 1000여 명을 소환조사했다.
경찰은 올해 특진대상자 510명 중 50명을 건설노조 단속 수사 분야에 배정했다(전세 사기 30명, 보이스 피싱 25명). 전세 사기 피해자가 3명째 자살하는 동안 건설노조 탄압과 단속에 더 힘을 실은 것이다.
윤 대통령의 ‘건폭’ 발언이 나온 지 채 석 달도 지나지 않은 5월 1일 노동절에 한 건설노동자가 몸에 불을 당겼다.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해 아내와 중학생 쌍둥이 자녀를 남긴 채 하루 뒤 숨졌다.
고인은 3월 9일 지부 압수수색 과정에서 개인 휴대폰을 압수수색 당하며 ‘피의자’가 됐고, 이후 경찰 수사에 시달림을 받았다고 한다. 고인의 동료들에 따르면 고인은 중학생 쌍둥이 아들, 딸에게는 “아빠 나쁜 사람 아니다”고 하면서도, 경찰 조사받으면서 아들,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제발 공갈협박죄는 좀 빼달라고 했다고 한다.
고인은 유서에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혐의가)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네요.”라고 썼다. “자랑스런 민주노총 조합원”의 정당한 노조 활동을 치졸한 공갈범 취급하는 모욕에 자존심이 처참히 짓밟힌 심정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불법’, ‘폭력’, ‘공갈’, ‘갈취’로 매도하는 것들은 건설사들의 불법이 만연하고 노동자들이 열악한 조건에 시달리는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정당한 투쟁으로 쟁취한 것들이다.
건설산업에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판을 친다. 공사 기간을 줄일수록 각 단계의 하도급 업체가 이익을 보고 최저가 입찰제가 적용된다. 그래서 건설업 사용자들은 안전 규정을 무시하는 등 불법을 저지르고 인력과 인건비를 줄이는 데 혈안이다.
이 때문에 안전조치 미비로 매년 건설노동자 400여 명이 일하다 목숨을 잃는다. 건설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약 7퍼센트이지만, 산재 사망자 중에서는 해마다 50퍼센트 안팎에 이른다. 임금 체불도 비일비재하다. 건설업 임금 체불 규모는 지난해 11월 기준 2,639억 원으로, 2021년보다 285억 원이나 늘었다. 고용불안도 심각하다. 지난해 건설업에 종사한 노동자가 200만 명이 넘는데, 그중 약 80퍼센트가 일용직·비정규직이다. 2019년 기준 평균 근속 1년 미만이 94퍼센트가 넘는다. 3~6개월씩 일을 쉬기 일쑤다.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고용, 휴게실은 고사하고 화장실도 없는 열악한 작업환경, 안전조치 위반과 산재 사고 위험이 넘치는 건설현장을 바꾸려고 건설노동자들은 노조를 조직했고 오랜 투쟁 끝에 조금씩 변화시켰다. 주5일 근무와 하루 8시간 노동을 정착시켰고 휴게실과 화장실 등 작업환경 개선과 안전조치 확보도 이끌었다.
이렇게 건설노조가 건설현장을 바꾸고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할 때 정부는 무엇을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건설사들은 불법으로 이윤 챙기기에 바빴고 정부는 눈감아줬다. 노동자들이 노조로 뭉치고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싸웠을 때만 건설현장이 바뀌었다.
윤석열 정부는 이것을 되돌리려 한다. 건설업 사용자들의 이윤을 보호하려고 건설노동자들이 싸워서 쟁취한 것들을 무너트리려고 한다. 건설노조를 속죄양 삼아 주69시간 노동으로 대표되는 노동개악을 추진하려고 한다.
윤 대통령은 고인이 분신한 당일인 노동절 메시지에도 “노사 법치주의 확립”을 운운했다. 여당은 노조의 채용 요구 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더 나아가 여당은 싱크탱그인 여의도연구원이 지난 5월 9일 개최한 세미나에서 “‘건폭’ 근절 당정(협의회) 계획”, “불법 채용강요, 불법점거 등 근절”, “‘노사 법치주의’로 노동개혁 추진력을 얻어야 한다” 등 노골적인 반노동 정책들을 쏟아냈다. 건설노조를 파렴치범, 범죄집단으로 몰아가는 것을 더 강하게 하고 그에 추진력을 얻어 노동개악을 하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이렇게 집요하고 잔인한 탄압이 고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고인의 유지를 따라 저항하고 싸워야 한다. 온몸을 불사르기 전 고인은 유서에 이렇게 적었다.
“먹고살려고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억울하고 창피합니다.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한 것뿐인데, 윤석열 검사독재정치에 제물이 되어 자기 지지율 숫자 올리는 데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고, 또 죄 없이 구속되어야 하고 대한민국 국민들입니다.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 무고한 국민들이 희생되야 하겠습니까. 제발 윤석열 정권 무너트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