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비추는 자비로운 등불, 전등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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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비추는 자비로운 등불, 전등사에서
  • 유광식
  • 승인 2023.05.22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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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일기]
(104) 삼랑성(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전등사 대웅전 앞, 2023ⓒ유광식
전등사 대웅전 앞, 2023ⓒ유광식

 

코로나-19 엔데믹이 공식 선언되었다. 이미 긴장은 가라앉았으나 지난 3년여 시간이 감염병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한 뼈아픈 시기였음은 말할 나위 없다. 최근에는 바이러스 못지않은 전세사기 사건이 전국적으로 표면화되고 그 대상이 서민들에게 몰려 있다 보니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급기야 집 문제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지는 일까지 벌어지니, 이거야말로 국난이 아닐 수 없다. 사기를 일삼는 못된 바이러스 일당이 다시는 발 디딜 수 없도록 제도와 인식이 정의롭게 개선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초여름을 맞이하는 듯 사람들의 옷소매가 짧아졌다. 개인과 사회, 국제 흐름의 안전을 비는 마음으로 멀리 강화도 길상면 전등사로 향했다. 

 

경내 연등 풍경(소원과 건강을 비는 바람이 많다), 2023ⓒ유광식
경내 연등 풍경(소원과 건강을 비는 바람이 많다), 2023ⓒ유광식

 

하필 무척 덥다는 예보가 딱 맞아떨어졌다. 가보지 않았던 새 도로를 씽씽 달려 1시간 만에 정족산(222.5m) 아래에 도착했다. 먼지가 낀 것처럼 미세먼지 예보도 조금 있던 날이다. 가볍게 산채 보리밥을 먹은 후 전등사 동쪽 입구로 향했다. 전국 문화재 구역 입장료가 5월 4일부터 무료화 되었다. 전등사 입장료 4,000원(성인 기준)이 사라졌으니 주차료 2,000원(소형 기준) 정도만 고려하면 된다. 동문으로 향하는 길은 좁고 가파르다. 주변에 연두색 송홧가루가 많이 날린 모양이다. 어디선가 아카시아 향기가 코끝을 건드리니 신록을 걸치는 느낌이었다. 

 

정족산성 동문 밖 풍경, 2023ⓒ유광식
정족산성 동문 밖 풍경, 2023ⓒ유광식
정족산성 동문(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설이 있다), 2023ⓒ유광식
정족산성 동문(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설이 있다), 2023ⓒ유광식

 

강화도 전등사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누구든 학창 시절 혹은 프로그램 일정상 한 번쯤은 와봤을 정도로 잘 알려진 천년고찰 중 하나다. 그런 이유인지는 모르나 이러저러한 공사가 많다. 전에도 그랬지만 이날도 기계음이 온 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것이 귀를 아프게 했다. 석가탄신일이 얼마 남지 않아 사찰 경내에는 소원과 바람을 적은 연등이 대웅전을 중심으로 주렁주렁 많이 달렸다. 오색찬란한 연등 아래 온 세상이 평화로워지는 느낌이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은행나무, 범종, 정족산사고 등 여러 시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몇 번 와보긴 했어도 매 평안을 얻을 수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도 잠시 일상을 벗어났다는 안도와 따듯한 결심을 안고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산성을 한 바퀴 돌고 싶었으나 그러기에는 준비가 부족했다. 

 

경내 풍경, 2023ⓒ유광식
경내 풍경, 2023ⓒ유광식
오래된 느티나무와 연등, 2023ⓒ유광식
오래된 느티나무와 연등, 2023ⓒ유광식
부처님오신날 연등, 2023ⓒ유광식
부처님오신날 연등, 2023ⓒ유광식

 

삼랑성이라고 하는 정족산성에는 왕실의 기록을 보관하는 사고와 왕실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 보각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지난 세기 국난을 피해 옮겨 다니던 기록이 많다. 과거 전등사는 프랑스군을 물리친 양헌수 장군의 업적이 함께 깃들어 있는데, 이때(1866년) 프랑스군이 퇴각하면서 약탈한 의궤 서적(세 권 제외)을 2011년 영구임대 방식으로 돌려받기도 하였다. 한편 최근에는 ‘문화재’ 명칭을 변경한다고 하는데, 결정된 명칭에도 논란이 많은 모양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산사고(복원), 2023ⓒ유광식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산사고(복원), 2023ⓒ유광식
정족산진지(터만 남아 있다), 2023ⓒ김주혜
정족산진지(터만 남아 있다), 2023ⓒ김주혜
시민 휴식처, 2023ⓒ유광식
시민 휴식처, 2023ⓒ유광식

 

전등사에서는 평일임에도 국내 관람객뿐만 아니라 중국 관람객도 볼 수 있었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하루 고요와 마주할 수도 있다. 가을에는 삼랑성 역사문화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코로나 이후 열리는 행사인지라 관심이 고조된다. 한편 경내에서 전시 후 기증한 것으로 보이는 어린왕자 조각상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전등사에는 현대 예술가의 소장품이 많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작가를 발굴, 격려하며 전시를 통해 일반 대중과 함께하는 사찰이 되고자 노력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소나무와 느티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등으로 울창한 산성의, 마치 솥단지 안에 들어앉은 듯한 전등사가 현대 강화의 숨은 등대처럼도 보인다. 

 

언덕을 올라 사찰을 찾은 관람객들, 2023ⓒ유광식
언덕을 올라 사찰을 찾은 관람객들, 2023ⓒ유광식
이영섭 작가의 어린왕자 조각 작품 중 하나, 2023ⓒ김주혜
이영섭 작가의 어린왕자 조각 작품 중 하나, 2023ⓒ김주혜

 

다시금 돌아가는 길 양옆에 연붉은 작약꽃이 활짝 피었다. 일명 함박꽃이라고 하는 작약을 보니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지어졌다. 더운 날에 비밀스러운 자연 폭포에 다녀간다는 마음과 더불어 얼마 후 있을 부처님과의 만남이 기대된다. 부처님도 기분이 좋으셨는지 이번 연도부터는 대체 휴무일이 추가되어 하루 더 쉴 수 있게 해 주셨다. 아무쪼록 모두가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안전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세사기’가 아니라 ‘함께 살기’가 돋아나는 5월, 푸른 자비의 손길이 함지박만 하게 넘쳐나길 빈다. 

 

길가에 수놓인 작약, 2023ⓒ유광식
길가에 수놓인 작약, 2023ⓒ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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