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하고 후련함 - 냉모밀의 장인정신을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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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하고 후련함 - 냉모밀의 장인정신을 맛보다
  • 유영필
  • 승인 2023.05.24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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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유영필 약사의 인천 맛집 탐방]
(2) 남동구 만수동 '모밀지기'
 인천 남동구 만수동에서 「성수약국」을 운영하는 유영필 약사의 맛집 탐방을 매월 연재합니다. 맛집 홍보가 아닌, 필자가 실제 오감으로 맛보고 현장에서 겪은 인상 깊었던 맛집을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써나갑니다.

 

인천 남동구 만수동 '모밀지기' -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2년 전 이맘때쯤, 날은 점점 더워지는데 왠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머리에는 천근의 추가 나를 짓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이런 날은 시원한 냉면이 그리워서 집사람이 찾아낸 「모밀지기」라는 곳에 가보기로 했다.

남동구 만수동 문일여고 앞 「모밀지기」의 첫인상은 맛집이라기보단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가벼운 분식집 느낌이었다. 가격도 너무 저렴한 거 같기도 해서 별 기대없이 그냥 한 끼 때운다는 심정으로 냉모밀하고 통만두를 시켰다.

먼저 통만두가 나왔다. 만두 열 알이 나왔는데 가격이 3000원! 하도 싸다는 느낌 때문인지 별 기대는 안 하고 간장에 찍어 한입에 넣었는데... 어라? 입안에 고기육즙이 팍 터지면서 야채의 향과 같이 어우러져 나의 혀를 깜짝 놀라게 해주었다. 마치 그 옛날(1970년대) 신포시장에서 사먹던 만두가 생각났다. 아마 나이 50넘은 인천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어떻게 이 가격에 이런 맛이 나오는거지? 라는 의심이 들 때쯤 드디어 메인 메뉴인 냉모밀이 나왔다. 슬러쉬를 연상케 한 냉면육수에 가늘게 찢은 양짓살과 얇게 채로 썰은 무와 배, 오이, 그 위에 삶은 계란 반쪽과 이 집 특유의 양념이 얹어져서 나왔다. 젓가락으로 휘휘저어 골고루 섞은 후 메밀 면발을 한입 베어 물었더니 이 또한 ‘우와!’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했다. 면발의 쫄깃함과 구수함, 육수의 시원함과 개운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육수는 마치 내가 고등학교시절 영어 100점을 맞고 속이 후련해하던 그 기분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아무튼 주인께 최근 들어 다른 식당, 아니 모든 물가가 다 오르는데 왜 인상을 안 하냐고 여쭤봤더니 ‘그래도 먹고 살아요.’ 하시면서 순박한 웃음을 지어보이셨다. 또 여기는 학교 앞이니까 라면하고 김밥을 추가하시면 더 장사가 잘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사모님께서 “사장님은 절대로 자기가 직접 만든 음식이 아니면 팔지 않으려고 해요.”라고 하신다. 

장인정신의 향기가 났다. 그러고 보니 육수만 하더라도 양지 사골육수에 직접 만든 동치미 국물을 배합한 후 다수의 한약재를 섞어서 만든다고 하니 가히 그 정성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은 가격의 음식에 이토록 정성이 들어간다는 것에 그저 놀랍고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모밀지기의 통만두와 냉면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더 가게 되었다. 추운 날에는 온모밀을 먹었는데 쑥갓, 얇게 저민 표고버섯, 숙주나물이 고명으로 얹어져 있었다. 냉모밀과는 다르게 면의 부드러움과 국물의 따스함과 고소함이 어우러져서 추운 날의 쓸쓸한 마음을 온화하게 해주었다. 이곳은 주인 부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새삼 이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모밀

 

위치 : 인천 남동구 구월로372번길 83

영업시간 : 매일 11:00 – 20:30 (20:00 마지막 주문)

동절기(10~3월): 매월 둘째, 넷째주 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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