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공촌동 도시공유 텃밭과 조은상 주인
꽃가루가 흩날리는 건조한 어느 날 봄, 전화 한 통이 왔다.
“오늘 어르신들과 텉밧 수업이 있는데 보러 올래요?”
서부교육지원청이 있는 공촌동의 하천 옆 산책길에 아기자기한 텃밭이 하나 있다. 텃밭 입구에는 공구가 있는 비닐하우스가 한 채 있고, 안쪽에는 나무틀로 테두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 40여개 정도가 있다. 얕은 텃밭상자 안에는 상추, 고추, 쑥갓, 치커리, 토마토 모종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텃밭상자들 사이로 군데군데 구절초, 패랭이꽃, 장미, 남천나무, 수수꽃다리(라일락) 등의 예쁜 꽃이 고개를 내밀고 반겨 주었다.
도착하니 약 15명 정도의 60~70대 어르신들이 모여 텃밭 주인장의 설명을 들으려던 참이었다. 인사를 하고 뒤에 서서 함께 설명을 들었다.
“우리 얼마 전에 상추랑 치커리 심었는데 수확하는 방법 기억하시죠? 잎채소는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야채가 맛이 없어요. 싱거워요. 그리고 고추는 물을 줄 때 흙이 튀지요? 고추는 탄저병에 잘 걸리는데 습도가 높은 여름에 생기는 병이예요. 고추에 탄저균이 생기지 않게 물을 위에서 주지 말고, 흙부분에 살짝 주셔요. 그런데 대파와 가지는 물을 참 좋아하니까 흠뻑 주셔도 돼~”
설명을 어르신들 눈높이에 맞게 재미있게도 하신다.
곧이어 고춧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지지대 설치 방법을 알려주신다.
이 어르신들은 서구보건소 치매안심센터 치매정신돌봄과 김다솜 주무관이 모시고 온 치매 고위험군의 노인 가족들이었다.
“조은상 회장님이 저희 치매안심센터와 협업해서 14개의 텃밭상자를 무상으로 대여해 주시고 있어요. 2년째 10가구 정도의 어르신들이 비정기적으로 월 2~3회 정도 여기 와서 작물도 심고 가꾸는 시간을 가지고 있지요.”
설명을 들은 어르신들이 지지대를 열심히 설치하고 계셨는데, 그 중 한 쪽에 서서 지켜 보시던 윤은실(70)님은 “나는 몸이 안 좋아서 일은 못해요. 하고 있는 사람은 남편이구요. 치매 고위험군 진단을 받았어요. 근데 이렇게 바깥에 나와서 저런 걸(작물, 꽃, 나무 등) 보기만 해도 너무 좋아요. 얼마나 좋은데요”
[실버농부의 기억텃밭]이라는 팻말 앞에서 텃밭 주인 조은상씨와 만났다.
개인 사업도 하며 서구 연희동 주민자치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서구보건소 치매안심센터 외에 서구 다문화지원센터와도 협력하여 7가정의 다문화가족들에게도 텃밭가꾸기를 지원하고 있다. 센터로부터는 거름이나 작업도구 등을 제공받는다고 한다.
그는 일반 텃밭처럼 왜 돈을 받고 분양을 하지 않을까? 조은상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랐어요. 충남 태안이 고향인데 부모님 농사를 많이 도왔죠. 생전에 고생을 많이 하신 어머니가 참외를 그렇게도 좋아하셨는데, 어릴 때는 참외가 너무 귀해서 잘 못 드셨지. 지금은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어르신들 보면 부모님이 많이 생각나요.
몇 년 전부터 우리 동네 어르신들과 이런 활동을 하고 싶어서 도시농부 수업도 듣고 자격증도 땄어요. 늙어가는 동네 어르신들이 가끔씩 바깥 활동을 하면서 몸도 움직이고 가족들과 시간도 보내고 농작물도 키워 수확해서 드시는 걸 보면 나도 보람있고 참 좋아요.”
마을에서 어르신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 도시농부는 땀을 흘리면서도 연신 즐거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