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바람숲 그림책도서관
“어디 들를 만한 데 있을까요?”
책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손님이 다음 여정을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망설이지 않고 알려주는 데가 몇 군데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이다. 공공도서관이 아닌 개인이 만든 도서관이다. 강화군 불은면 덕진로 159번길 66-34에 있는 바람숲그림책도서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다 환영한다.
필자가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을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소식지 《박물관풍경》에 <시간을 달리는 공간>이라는 글을 연재할 때였다. 강화에 멋진 곳이 어디 있을까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 보석처럼 반짝거리던 곳이 바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이었다. 그때가 2014년이었고,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이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딱 10년 전이었다.
그 당시 벅찬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초지대교를 건너자마자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방향을 틀었지만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그때는 변변한 이정표도 없었고, 길가는 물이 가득찬 농수로와 끝없이 펼쳐진 논이었다. 허허벌판. 그나저나 이렇게 시골 한복판에 도서관을 낸 사람들이 제정신일까, 시골 구석에 누가 찾아온다고 도서관을 냈을까. 그때부터는 사람을 찾아 나선 길이 되었다. 시골에 그림책도서관을 낸 사람들이 궁금했다.
그림책을 실컷 볼 수 있다니!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은 2014년 2월에 문을 열었다. 올해로 10년 차에 접어들어서인지 지금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입소문을 타고 알음알음 사람이 많이 찾아온다. 평일에는 단체 예약 손님으로, 주말은 개인 손님이 예약하고 찾아온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오전 10시 30분에 오후는 1시 30분에 손님을 받는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손님들은 세 시간 동안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있다.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은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 입장료 5000원을 받는다. 7년 동안 입장료 없이 운영하던 게 익숙한지라 최지혜 관장과 신안나 국장은 그게 어색했다. 예전처럼 무료 입장으로 돌릴까도 생각했지만 도서관 운영을 좀 더 잘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그림책은 하드커버가 많아 떨어뜨리면 책 모서리가 금방 깨져서 다른 책보다 수명이 짧다. 더욱이 어린이 손님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람숲그림책도서관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결정이었다. 어쨌거나 5000원을 내고 세 시간 동안 그림책을 실컷 볼 수 있다니!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판타지 세상이 열린다.
넓게 펼쳐진 논과 야트막한 산이 있는 곳에
바람숲그림책도서관에는 그림책이 13,000권이나 있다. 4년 전에 증축한 새로운 도서관 건물에 10,000권, 그 건물 아래쪽에 있는 예전 도서관 건물에 3000권이 있다. 예전 도서관 건물은 북스테이와 북카페 공간으로 쓴다. 북스테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밤새도록 그림책 여행을 신나게 할 수 있다. 북카페에서는 피자, 파스타, 빵, 음료를 파는데 맛있기로 이름나 있다.
바람숲그림책도서관 최지혜 관장은 2006년 부평에 세워진 ‘기적의 도서관’ 초대관장이다. 그와 함께 살림을 꾸려가는 신안나 국장은 환경교육센터에서 오랫동안 팀장으로 일했다. 이들은 우연히 만나 마치 필연처럼 도서관을 꾸려가고 있다.
최 관장은 오래전부터 숲속에 그림책도서관을 만들고 싶었다. 숲속 바람, 벌레, 나무와 풀이 있는 곳에 도서관이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그 꿈은 월급쟁이 사서를 하면서 더 굳건해졌고, 어느 날 사표를 내고서 그 꿈은 현실에서 이뤄질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어디가 좋을까, 어디에 자연과 어우러지는 도서관을 만들까, 날마다 꿈을 꾸면서 마땅한 곳을 물색했다. 강원도 양양, 충북 괴산, 지리산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그림책도서관을 열 데를 눈여겨봤다. 그즈음 누군가 강화도는 어떠냐고 물었다.
그래, 강화도가 괜찮을 것 같았다. 그들이 강화도에 탐색하러 오는 날, 눈이 펑펑 내렸다. 넓게 펼쳐진 논과 탁 트인 시야, 도서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야트막한 산이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처럼 편안하고 아늑했다. “그래, 여기가 좋겠다!” 그래서 지금의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이 둥지를 틀게 되었다. 본디 땅과 집은 사람이 고르는 게 아니라, 땅과 집이 사람을 고른다는 말처럼 그들이 그날 본 땅이 그들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눈은 모두에게 서설이었다.
생각지 못한 이야기가 가득한 그림책 세상으로
최 관장은 그의 바람대로 숲속에 그림책도서관을 열었다. 좋은 점도 많지만 힘든 점도 많은데, 그건 도서관을 운영하는 경비가 만만찮기 때문이었다. 월급쟁이로 살 때와 달리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시골에서 개인이 도서관을 만들고 꾸리는 일은 더 이상 무지갯빛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었고, ‘밑빠진 독’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후원하는 분이 늘었고, 이들이 직접 외부 강의를 나가서 돈을 벌어 운영상 부족한 경비를 메우고 있다.
2019년 10월 20일에는 재개관을 했다. 예전 건물이 있는 자리에서 바로 위쪽에 멋진 도서관을 열었다. 국내 최초 그림책전문도서관을 확장한 것이다. 도서관을 가 본 사람은 다들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이 별 어려움 없이 운영되길, 언제까지나 어린이와 어른들이 찾아 맘껏 그림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최지혜 관장과 신안나 국장은 10년째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도서관을 열길 참 잘 했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에 마음을 써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늘 잘 하고 있나, 잘 해야지 하면서 반성하고 각성합니다. 사실 손에 쥔 것 없이 시작했는데 많은 분이 관심을 써 주셔서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휴대폰을 끄고 도서관 아무 데나 자리 잡고 그림책을 읽으면 어떨까. 그림책을 펼치면 온갖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어릴 때 살던 지붕 낮은 마을일 수도 있고, 그 마을 입구에 있던 큰나무 아래일 수도 있고, 얼굴도 가물거리는 할머니가 내 옆에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또 곤충이나 벌레에 관심이 많은 어린이는 그가 궁금해하는 수많은 궁금증이 세밀화로 숙제를 풀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림책이 들려주는 이야기, 도무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가득한 그림책 세상으로 훌쩍 떠나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