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허문 덕에 달을 먼저 볼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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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허문 덕에 달을 먼저 볼 수 있지 않은가!”
  • 최원영
  • 승인 2023.06.0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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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107화

 

즐거움과 슬픔은 삶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일 겁니다. 즐거움만으로 살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절반의 삶에 불과할 뿐입니다. 힘들고 아픈 일들 역시 우리 삶의 절반을 차지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지는 않을까요.

 

《행복한 고집쟁이들》(박종인)에 나오는 ‘팔 없는 화가’로 유명한 석창우 화백의 일화에서 스스로를 긍정하는 태도가 행복한 삶을 이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984년 10월 29일, 오후 12시 30분, 전기기사이던 그가 감전됐다. 의뢰받은 곳의 전기시설을 점검하다가 2만2,900V 전기에 감전된 것이다. 결국 발가락 두 개를 잘랐고, 두 팔은 어깻죽지부터 잘라냈다. 29세 젊은 가장이 1년 반을 병원에서 죽은 듯이 살았다.

그는 말한다.

“그때 두 팔과 헤어졌고 아버지한테는 낚시하는 데는 조금도 불편함이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3년 연애 끝에 결혼한 아내는 “당신이 이렇게 됐으니 이제는 내가 일해야지 뭐!”라고 말할 정도로 낙천적인 여자였다. 아내가 이렇게 편안하게 대해주니 어느 날부터 ‘이거 별거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비장애인들은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집중이 어렵다. 그런데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으니까 남보다 더 오래 연습할 수 있었다. 남들이 3시간 하면 나는 10시간을 학원에서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이 글을 접하면서 저는 제가 석창우 화백의 부인이라고 상상해봤습니다. ‘과연 저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라고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류시화 시인은 돌아가신 법정 스님을 회고하며 그분의 추억을 담은 책인 《산에는 꽃이 피네》(법정)에 이런 글을 실었습니다.

문명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그러나 자연은 사람을 소생시켜 준다. 거듭나게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 때 사람은 시들지 않고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어떤 선사는 법정의 오두막을 두고 이렇게 노래한다.

“벽이 무너져 남북이 트이고 추녀가 성글어 하늘이 가깝다.

쓸쓸하다고 말하지 말게. 바람을 맞이하고 달을 먼저 본다네.

집이 다 허물어지고 낡아서 바람을 맞이하고

달을 먼저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거다.

집이 낡아 추녀가 벗겨진 지붕 사이로 하늘이 보이자,

사람들이 와서 을씨년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사는 말한다.

“쓸쓸하다고 말하지 말게. 집이 허문 덕에 달을 먼저 볼 수 있지 않은가. 스스로 택한 청빈은 단순한 가난이 아니라 삶의 어떤 운치다.”

이렇게 자신의 힘든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살아가는 석창우 화백의 아내와 ‘스스로 택한 청빈은 단순한 가난이 아니라 삶의 운치다’라고 하는 스님을 글에서나마 접할 수 있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남편이 감전 사고로 인해 일하지 못하게 되자 아내는 선뜻 “당신이 이렇게 됐으니 이젠 내가 일하면 되지 뭐.”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남편의 기를 살리는 아내, 그리고 남이 보기엔 을씨년스러운 오두막에 앉아 중생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노스님의 거룩함이 하루하루를 아등바등 살아가는 저에게는 위로가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회초리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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