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가해해도 대표님은 처벌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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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가해해도 대표님은 처벌 못한다?
  • 김유정
  • 승인 2023.06.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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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칼럼] 김유정 / 노무사, 민주노총 인천본부 공항상담소

 

노무사로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한번은 필연적으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그나마 최근 들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 따른 불리한 처우 등에 대한 시정 신청을 노동위원회에 제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실무적으로 우선 사내에서 조사가 이루어져야 이후의 대응이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피해 노동자들이 좌절을 경험하고 ‘꿋꿋하게 버텨 조사를 진행하느냐’, ‘그냥 포기하고 회사를 그만두느냐’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는 피해 노동자들도 있다. 바로 성희롱 행위자가 회장님, 사장님이라 불리는 법인의 대표들인 경우이다.

현행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제39조 제2항은 ‘사업주가 제12조(직장 내 성희롱의 금지)를 위반하여 직장 내 성희롱을 한 경우에는 1천 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법이 말하는 ‘사업주’는 개인 사업주의 경우 사장님 그 개인이 해당하지만, 법인의 경우 법인 그 자체가 사업주이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표님, 회장님, 사장님은 상급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대표님, 회장님, 사장님은 회사 내부 절차를 통해 조사를 받고 그들보다 낮은 직급의 직원이 내리는 징계를 받게 된다. 대리급 직원이 사장님을 징계한다니. 징계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 경고, 견책의 정도로 징계가 종료된다. 해당 징계가 부적절하다고 노동청에 진정을 넣어도 회사의 경영권 사항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조치를 취할 수 없다. 누가 봐도 말도 안되는 징계이지만, 노동부 감독관 입장에서도 어떤 징계를 내리라고까지 관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조사과정에서 비밀누설이나 불이익한 조치도 없었다면 그대로 절차는 종료된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사업주에 대해 과태료 규정을 둔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 사업주에게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하면 회사 내부적으로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피해 노동자는 직장을 잃을 수도 있는 심각한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이에 2023년 5월 26일 한국여성노동자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남녀고용평등법 제39조 제2항의 개정을 촉구했다. 여성노동자회 12개 단체는 2021년 남녀고용평등법 제39조(과태료) 제2항의 ‘사업주가’를 ‘사업주 또는 법인의 대표자(사업주 또는 법인대표의 「민법」 제767조에 따른 친족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이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의 근로자인 경우를 포함한다)가’로 개정 발의하여 직장 내 성희롱 구제 사각지대를 해소하려 하였다.

하지만 실제 법 개정은 법인대표에 대해 공백을 둔 채 개정되었고, 2021년 11월 12일 송옥주 국회의원을 통한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지금까지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심사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계류되고 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고용평등상담실에 따르면, 2018년 ~ 2021년 7월까지 통계에 의하면 법인대표 성희롱 피해자는 소규모 사업장의 근속기간이 짧은 사회초년생이 많고, 인사권자인 법인대표에 의한 해고 또는 외형상 자발적 퇴사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법인대표의 성희롱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인해 발생한 불리한 처우 비율은 89%로 나타났다. 이는 최고 인사권자인 법인대표에 의한 성희롱이 단지 성희롱 피해 그 자체를 넘어, 피해 노동자의 노동권·생존권 박탈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회사 안에서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지고 처벌이 이루어져 피해 노동자가 이전과 같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아마 남녀고용평등법도 그런 사회를 꿈꾸며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동료들 간에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행위자가 ‘대표’라면, 즉각적인 조치가 이루어져야 제대로 된 피해자 보호가 가능하다.

여성단체, 노동단체에 찾아오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했을 피해 노동자들에게 회사로 돌아가 조사를 받고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지켜줄 법이 여기 있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남녀고용평등법에 제대로 된 개정이 선행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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